[용환승 칼럼] B클래스도 뜰 수 있는 시대
과거의 소수 방송국 체제에서는 탑클래스 연예인만이 TV에 출연할 수 있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는 노래가 있을 정도로 방송 권력은 대단했다.
오늘날 SNS와 오디션 프로 등을 통해서 실력은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많은 연예인들을 접하게 된다. 미스터트롯 프로에서는 현역부라는 이름으로 오래도록 활동을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현역 가수들을 출연시켜서 시청자들에게 소개하고 있어서 유익하다.
인터넷의 등장은 누구나 매스미디어를 소유할 수 있는 시대로 만들었으며 많은 SNS 스타를 탄생시키고 있다.
가수 싸이는 B클래스 가수가 세계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 사례의 하나다. 그가 만든 ‘강남스타일’은 유투브에 올린 것이 홍보의 전부였으나, SNS의 스타가 진정한 스타가 되는 등용문이 되었다.
세계적 아이돌 가수 그룹 BTS도 마찬가지로 SNS 마케팅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네플릭스 컨텐츠인 흑백요리사는 B클래스의 위력을 잘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 탑클래스에 속하는 백쉐프 요리사들과 네티즌들에게 유명한 B클래스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흑쉐프들의 대결에서 최종 우승자는 흑요리사였다.
이 결과는 많은 쉐프 지망생들에게 희망을 주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은 인터넷 미디어의 최고 수혜국
실제로는 한 국가로 제한된 TV 방송보다 전 세계로 실시간으로 생중계도 가능하기에 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유투브와 틱톡 그리고 네플릭스와 같은 OTT 미디어는 기존 방송의 영향력을 넘어서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컨텐츠는 이런 미디어를 통해서 세계로 전파되어 글로벌 한류 현상을 만드는 중이다.
그동안 “조용한 아침의 나라” 한국은 재능은 있었으나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스타였다. 그러나 인터넷과 OTT 미디어에 한류 컨텐츠가 결합되면서 한국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코로나 사태는 이를 증폭시켰다.
드라마와 K-POP으로 시작되어 점차 음식과 한글, 한옥 등으로 퍼지고 있다. 오징어 게임II로 지금은 공기놀이와 “짝짓기 게임”이 “빙빙 돌아라” 동요와 함께 한창 인기를 끄는 중이다.
앞으로도 퍼낼수록 채워지듯 한류의 가능성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온돌이라는 주거문화와 집에서 신발을 벗는 것, 쇠 젓가락 식기, 판소리와 한국어, 맑은 물과 아름다운 산 등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는 새로운 미디어 기술의 최고 수혜국가가 되고 있다.
C클래스 컨텐츠의 탄생
C클래스란 최고의 품질에 해당하는 탑클래스(A클래스)와 그 다음 단계인 B클래스가 있는 가운데 이 두 가지에도 속하지 않는 하위등급을 의미한다.
최근까지 세계는 A클래스에 속하는 제품이나 연예인 만이 인기를 누리며 성공가도를 달렸다. 인터넷 시대에 와서는 B클래스 등급의 제품과 연예인들도 설자리가 생겨서 도처에서 큰 활약을 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생성 AI를 사용해서 디자이너가 한 달여간 고민해야 하는 디자인을 뚝딱하는 순간에 만들 수 있다.
전혀 문외한일 지라도 음악, 소설, 글, 만화, 그림 등 모든 컨텐츠에 해당하며 지금은 영상까지 생성할 수 있다. 곧 소설을 입력하면 각본과 배우 및 연기와 OST가 포함된 2시간짜리 영화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누구나 영화감독이 될 수 있고 컨텐츠 산업을 혁신시킬 것이다.
생성 AI를 이용해서 만들어지는 컨텐츠를 우리는 C클래스로 분류할 수 있다. A, B클래스와 달리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대중화된 개념으로 다이소처럼 친근하고 평범하다.
C클래스는 주로 AI와 로봇 등 기계에 의해서 만들어지므로 M(Machine)클래스로 부를 수도 있다. 컴퓨터로 생성하는 가상인간(virtual human)과 휴머노이드 로봇도 C클래스로 볼 수 있다.
유명 가수의 목소리와 외양을 흉내 내는 ‘너훈아’ ‘방쉬리’ ‘노철수’ ‘주용필’ 등의 짝퉁 가수들도 분류한다면 C클래스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C클래스의 첫 특징은 방대한 수량
C클래스 컨텐츠의 특징을 두 가지로 들어보면 첫째는 수량이 방대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수량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A클래스는 오랜 기획과 제작기간이 필요한 반면 C클래스는 거의 실시간으로 생성되어 대량생산도 가능하다.
몸집이 작은 쥐도 이길 수 있는 아무런 저항수단을 가지지 못한 토끼가 지금까지 생존하는 이유는 막강한 번식력에 있다. 애완용으로 데려간 토끼가 불어나 호주 대륙을 석권해서 문제가 심각해진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C클래스의 최고 강점은 무수히 많이 대량으로 생산된다는 것이다. 질을 능가할 수 있는 충분한 양이 최강의 장점이며 생존력의 비밀인 것처럼 저렴하게 일회용 컨텐츠로 사용될 수 있는 C클래스도 가능하다.
오늘날 다이소에 가면 일회용으로 사용하기 아까운 많은 제품들이 저렴하게 판매되고 있다. 소비자는 명품 1개 구입해서 오래 사용하는 것과 일회용 제품을 구입해 사용하는 것의 장단점을 생각해야만 한다.
제작이 어려운 도자기 컵과 식기들이 저렴하게 대량생산되어 파격적인 가격으로 진열되고 결코 품질이 최고는 아니지만 사용하는 데 무리가 없어서 인기를 끌 수 밖에 없다.
C클래스의 두 번째 특징은 품질보다 내용
C클래스의 두 번째 특징은 질적 완성도보다는 내용이 가지는 시사성과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컨텐츠를 스스로 제작하는 많은 유투버들도 C클래스로 분류할 수 있다. 전문 스투디오를 갖추어 질적 수준을 높인 컨텐츠도 있지만 내용을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간단하게 만드는 컨텐츠도 많다.
공무원 시험준비 대상자에게 역사 강의로 유명한 전한길 강사는 탄핵정국에 선관위에 대한 지적을 한 영상이 270만회 이상의 조회를 기록하고, 댓글만 12만개가 달려서 주목을 받고 있다. 그의 영상은 품질면에서는 전형적인 C클래스에 속하지만 그 내용이 설득력을 가지고 있어서 인기인 것이다.
C클래스 컨텐츠들은 지극히 냉정하고 공정하게 평가되고 있다. 브랜드 마케팅으로 거품이 끼어 있지 않고 오직 SNS의 조회수로만 평가받는다.
실질을 숭상하는 내용과 내면의 마음이 가치를 인정받는 것과 비슷하다. 복면가왕이나 미스터트롯의 ‘현역부X’는 블라인드 뒤에서 오직 가창력만으로 승부를 하며 평가단도 특정인에 대한 선입견 없이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인간에게 어려운 C클래스 컨텐츠라도 AI에게는 쉽다
벨기에의 서북부 도시 브뤼헤(Bruges)의 그루닝 미술관(Groenings Museum)에는 제라드 다비드(Gerard David)가 1498년에 그린 “캄비세스 왕의 재판”이란 제목의 그림이 걸려있다.
당시 시의회의 요청으로 그렸다는 데, 내용은 공정한 재판을 얻기 위해 페르시아의 캄비세스 왕이 명령했던 부패한 판사의 살가죽을 벗기는 잔혹한 그림이다.
로봇은 사람이 작업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사람 대신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져서, 우리는 화성 탐사 로봇을 보내고 유해가스가 있는 지하관로 탐사나 심해저 탐사에 로봇을 보낼 수 있다.
로봇과 유사하게 AI가 가지는 장점의 하나는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아주 쉽게 대신한다는 점이다.
사람의 가죽을 벗기는 장면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며 사실적으로 그림으로 표현하는 일은 거의 고문에 가까운 일일 수 있다. 이러한 그림은 공감능력을 가지는 사람에겐 어렵지만 AI에게는 내용과 무관하게 모든 그림이 평등해서 특별히 어렵지 않다.
감정이 없는 AI에게는 최고의 미인을 묘사하는 일과 같을 뿐이다.
아직 AI가 만든 컨텐츠가 탑클래스는 아니다. 저자가 손을 보고 다듬으면 완성도가 높아지지만 아직은 첫돌이 지나지 않은 아이에 불과하다.
그래서 사람보다는 떨어지는 C클래스로 분류했다.
그러나 AI는 진화의 속도가 빨라서 C클래스 컨텐츠가 B와 A를 능가할 때가 올 것이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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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용환승(hsyong@ewha.ac.kr)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졸업, 대학원 공학박사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연구원,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전문위원
한국정보과학회 부회장, 한국소프트웨어감정평가학회 회장
현 이화여자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