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환승 칼럼] 파괴성 기술이란
파괴성 기술(disruptive technology)란 기존의 기술로 만든 사물들을 없애버리는 기술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MP3의 등장은 음반과 CD를 없애버렸으며, 전기자동차의 등장은 엔진을 사용하던 기존 자동차 사업을 새롭게 개편하고 있어서
신생업체인 테슬라는 저명한 자동차 기업 5개를 모두 합해도 시가총액이 더 크다는 소식이다.
평면 TV는 브라운관 TV를 사라지게 했으며, 대형 TV의 등장은 기존의 작은 화면 TV들을 고물상으로 보내는 중이다.
제품의 수명에 맞게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지면 충분히 제품을 사용한 후에 폐기하게 되지만, 급격한 기술 혁신은 아직 수명이 한참이나 남았음에도 폐기하게 되어 지구촌 차원에서 자원의 낭비 효과를 가져오는 문제가 있다.
스마트폰의 교체 주기를 보면 현재 스마트폰은 가전제품보다도 비싼 가격에 구입하지만 몇 년 못가서 새로운 제품으로 교체해야 하는 점을 고려하면 가장 비싼 가전제품이라고 볼 수도 있다.
파괴성 기술I: 마법의 도구 스마트폰
벼룩시장으로 유명한 서울의 동묘 주변에 가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 가득하다.
휴대폰과 같은 전자제품의 수명이 짧아서 폐기물 처리 문제도 심각하다.
의류와 신발, 가구 등 아직 사용할 수 있지만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제품들은 폐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으나, 전문 수거업체에 의해서 개발도상국에 헐값으로라도 보내져서 다행스럽기는 하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우리의 생활을 극도로 편리하게 만들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도 영상 통화와 회의를 할 수 있으며 일상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많은 업무를 스마트폰 하나로 언제 어디에서나 처리할 수 있으니 마법의 도구와 다름없다.
경조사 축의금을 보내거나, 은행 업무, 각종 세금 신고와 납부, 연락과 일정관리 등을 신속하게 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 사라지게 만든 사물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GPS에 의해서 조정된 가장 정확한 시계, 지도, 사전, TV, 오디오, 랜턴, 전자계산기, 책, 라디오(세계 전체), 나침반, 다이어리, 주소록, 위성수신 위치표시기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에 휴대용 의료기기 장치로 만보계, 산소포화도 측정기, 혈당측정기, 심박수 측정 등의 기능이 추가될 예정이다.
과거에 대학에 입학하면 구입하는 사전, 전자계산기와 다이어리 수첩, 주소록 등이 필요없으며 강의에서 다루는 교재를 가방에 넣으면 상당한 무게로 부담스러웠으나 오늘날의 대학생들은 태블릿 한 개만 가방에 넣어다니면 된다.
모든 책들은 스크린으로 필기하면서 학습하며 SNS를 통해서 세계의 모든 정보와 강의 영상 교육마저 수강할 수 있다.
파괴성 기술II: AI
AI의 등장은 더 많은 사물들을 파괴하고 있어서 충격적이다.
그러나 AI가 파괴하고 없애는 것은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았기에 기존에 존재하는 사물이 아니라는 점이 더 흥미롭다.
스위스의 장인이 만들었던 서명하는 기계, 음악을 작곡해주는 기계, 시와 소설을 써주는 기계, 말만 하면 바로 만화와 그림을 그려주는 기계, 그리고 생각한 것을 알려주면 동영상을 만들어 주는 기계들이 AI가 파괴하는 사물들이다.
이런 사물들에는 셜록 홈즈와 같이 상황을 분석하고 그림 퀴즈와 수수께끼를 풀어주는 SW, 즉흥적으로 음악을 작곡해서 연주해주는 피아노, 모든 분야에 대한 전문가 컨설팅을 해주는 인형, 심심풀이로 농담과 말동무가 되어 주는 장난감 등을 추가할 수 있다.
AI가 파괴하는 사물들은 아직 세상이 나오지 않았던 터라 폐기물 처리와 같은 문제는 없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AI가 파괴하는 것은 지금까지 인간만이 할 수 있었던 일
춘추전국시대 맹상군은 3천명이 넘는 특기자들을 데리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도 전문직의 종류가 이렇게나 많았을까 하는 의문도 들지만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특기자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만일 세상에 전지전능한 만물박사가 있다면 그래서 누구나 이러한 분을 조수로 둘 수 있다면 전문영역의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될 것이다.
지금 출현한 AI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수많은 특기와 전문영역을 모두 잘 해내는 능력을 가져서 지금까지 전문직으로 대우받던 직종이 한순간에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일로 변화하게 만들고 있으니 전문직 종사자들은 참으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초지능 AI의 출현이 두려운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겨졌던 일들을 대신한다는 점이다.
일에는 하고 싶어하는 일과 하기 싫어하는 일로 구분된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지만 선호는 있다.
그래서 인간은 하기 싫어하는 일을 시키기 위해서 노예 계급을 두어서 일을 맡기면서 계급제도를 합리화했다.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기계와 로봇의 등장은 하기 싫어하는 많은 일을 대체하여 노예 계급을 더 이상 필요없게 만들었으며 평등이라는 새로운 사회 질서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AI는 인간이 하고 싶어하는 일조차 대체할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영화를 제작하고 연기하는 배우들의 예술 활동과 법률적 판단, 의학적 판단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직종에는 의사결정 자문역, 신제품 개발, 발명과 연구, 디자인, 변호사, 판사, 의사, 호텔리어, 비서 등 통상 고급스런 일자리를 포함하고 있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서는 직종에 따라서 신분이 구분되며 아랍에미레이트에 가면 많은 허드렛일을 외국 노동자들이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내에서도 외국노동자들이 산업수련생이라는 명목으로 현장에서 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AI와 인간의 일자리 공존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사물의 발명은 인류의 생활을 편리하게 할 뿐아니라 하기 싫은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여성 평등은 여성을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하게 만든 세탁기와 밥솥, 청소기, 설거지 기계 및 냉장고 등 가전제품의 역할이 컸다.
제빵기, 전자렌지, 에어프라이어에 이어 곧 주방 로봇은 메뉴만 알려주면 조리를 해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허리를 숙이고 반죽을 화덕에 붙여서 구워야 하는 사마르칸트 빵의 맛은 물론 아닐 것이다.
AI를 거부할 수는 없다. 우리가 만든 피조물에 의해서 우리는 일자리를 넘기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새로운 일자리가 없으면 일을 하지 않는 방법도 있다.
끝없는 여가와 레저, 취미활동의 한가로운 삶이 싫증나는 사람들은 텃밭농사와 같이 취미로 일을 할 것이다.
마라톤과 서핑, 설산 등산 등 위험을 무릅쓰는 스포츠들은 매니아들이 스스로 찾아서 하듯이, 중요한 것은 인간은 더 이상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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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용환승(hsyong@ewha.ac.kr)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졸업, 대학원 공학박사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연구원,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전문위원
한국정보과학회 부회장, 한국소프트웨어감정평가학회 회장
현 이화여자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