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서 칼럼] 개인적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낙선을 예상했다. 그리고 기대했다. 제3자 시각에서 그것이 인류 공통의 보편적, 상식적 가치기준에 부합하고, 미국 유권자들도 그런 기준에 맞게 투표할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캐릭터부터가 ‘비호감’으로 각인돼 있다. 좌충우돌에 예측불허, 고집불통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부도덕한데다 화합‧포용‧배려라는 덕목에서는 기준미달이다.
이 같은 ‘비호감’이 트럼프에 적대적인 미국 주류 언론들의 비판적 보도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일정 부분 사실일 수는 있다. 그러나 부정적 측면을 상대적으로 부각시키기는 했을지언정 팩트 자체를 과장하거나 왜곡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미국의 비판적 언론들은 이른바 ‘트럼피즘’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불안감을 계속해서 지적해왔다. 미국 사회의 대립과 분열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트럼프는 이번 대선 기간 중에도 ‘내 편’이 아닌 ‘네 편’에게는 혐오와 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거짓말과 가짜뉴스를 남발한다는 비판도 받았다. ‘사법리스크’도 심각했다. 트럼프는 4개 사건에 91개 혐의로 기소돼 있는 상태다.
민주당 해리스 후보를 지지했던 미국 유명 방송인 오프리 윈프리는 “넌센스가 아닌 존엄과 상식이 있는 투표를 하자”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유권자 과반은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선택했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미국 우선주의’가 존엄과 상식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결과적으로 트럼프의 이런저런 문제점들은 양해 또는 묵인해주었다. “그래서 어쨌다구”라는 식으로 외면‧방관해 버린 것이다.
트럼프의 패배를 예상했던 사람들에게 선거 결과는 당혹스럽고 충격적이었다. 투표 직전 나온 상당수 전문기관들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트럼프의 압승으로 끝났기에 그 강도는 더욱 컸던 것 같다. SNS 등에는 “미국이 달라졌다”는 실망의 소리도 잇따랐다. ‘손해’를 무릅쓰고라도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나침판’ 역할을 하던 과거의 미국이 아니라는 것이다. 1위 초강대국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이익 극대화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미국이 정상 궤도를 벗어나 비정상의 길로 나서고 있다는 전문가 등의 지적도 제기됐다.
‘미국 우선주의’가 비정상?…‘약육강식’ 국제정치에선 보편적 현상
하지만 트럼프의 당선이 불만스럽다고 그가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까지 비정상으로 보는 것은 무리다. 국제 정치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고, 영원한 이익만 있다는 것은 불편하지만 인정해야 할 원칙이다. 나라간 관계는 궁극적으로 옳고 그름이 아닌 힘에 의해 결정된다고도 한다. 정글의 법칙인 약육강식은 국제정치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전 세계가 긴장하며 앞으로 몰아칠 ‘트럼프 스톰’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힘을 바탕으로 한 막무가내식 압박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 복귀를 걱정했던 유럽의 정상들도 경쟁적으로 축하메시지를 보내며 ‘트럼프 코드’에 맞추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의 공화당은 이미 상원과 하원에서 과반을 차지했다. 트럼프로선 대내외 정책 추진에 거칠 것이 없어진 것이다.
트럼프 2기가 우리에게 기회일 수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일단은 악재 투성이다. 안보문제로는 주한미군 철수 논란, 방위비 분담금 10배 인상, 김정은과의 핵 관련 ‘빅딜’ 가능성 등이다. 경제적으로는 미국의 대폭적 관세 인상과 그에 따른 수출경쟁력 하락,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 미중 경쟁 격화에 따른 對중국 무역 피해 등 만만한 것이 없다. 우리 국민 다수가 트럼프에 부정적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윤석열‧트럼프 조합 ‘찰떡궁합’일 수도…‘자해적’ 정치 상황이 가장 큰 문제
상황이 이런 만큼 용산 대통령실도 트럼프 쪽과 ‘케미’를 맞추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일 트럼프 당선자와 12분간 전화통화를 갖고 이른 시일 내에 날짜와 장소를 정해 회동하기로 합의했다. 두 사람의 ‘뚝심형’ 스타일로 미루어 윤석열‧트럼프 조합이 의외로 찰떡궁합일 수도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당선인과 가까운 많은 분들이 용산에 여러 차례 왔었는데, 그들은 ‘윤 대통령과 트럼프의 케미가 좀 맞을 것’이라고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제는 정치다. 여야의 파행적 대결이 구조화하면서 정치실종, 정치 상실의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이나 남았는데 야당은 퇴진을 외치며 두 주 연속 장외집회를 가졌다. 대내외 비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입법 활동은 완전히 뒷전이다.
냉정하게 보면 한국의 국익을 생각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존중받는 국가로 가치를 인정받고 국익을 지켜내려면 실력을 갖춰야 한다. 실력이 없으면 국익도, 동맹‧우방 관계도 흔들릴 수 있다.
당장 과제는 트럼프 2기 정부로부터 실력을 인정받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쓰나미를 몰고 올 수도 있는 ‘트럼프 폭풍’에 대한 효율적인 대응이 필수적이다. 민간 대기업 가용자원까지 총동원하는 등 정상, 비정상 수단을 가리지 않는 태세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빌미를 주고 약점을 잡히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당연히 이를 총체적으로 지휘할 국가적 리더십이 절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김건희 리스크’ 등에 얽혀 심각한 ‘내상’을 입었고, 지지기반은 허약해진 상태다. 지지율은 17%까지 추락했다. 윤 대통령을 옭아맨 ‘자해적’ 정치환경은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눈앞에는 예측이 어려운 ‘변칙의 대가’ 트럼프라는 거대한 장벽이 갑자기 들어섰다. 과연 제대로 넘어설 수 있을까. 트럼프 낙선을 기대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다. 한숨은 나오고, 걱정은 커지고 있다.
<필자 소개>
-서울이코노미뉴스 부회장
-전 서울이코노미뉴스 대표, 주필
-전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실장
-전 서울신문 편집담당 상무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 편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