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31일 이재용 경영승계 뇌관 의혹의 정점에 서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바) 재감리 안건 심의에 돌입했으나 '분식회계'를 둘러싸고 금융감독원과 삼성바이오간 공방이 이어지면서 결론은 차기 회의로 미뤄질 전망이다.
지난 7월 증선위가 검사(檢事) 격인 금융감독원에 고의 분식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부족하다며 재감리를 명령한 지 3개월 만이다. 증선위는 앞으로 한두차례 심의를 진행한 뒤 늦어도 내달엔 최종 결론을 낼 방침이다.
증선위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금감원의 ‘삼성바이오 재감리 안건’을 심의했다. 금감원이 증선위에 제출한 재감리안은 삼성바이오의 고의 분식 혐의를 뒷받침하기 위해 문제의 핵심인 2015년 회계장부 뿐 아니라 2012~2014년 회계장부까지 추가로 검토해 작성한 수정 보고서다. 기존에 낸 조치안과 마찬가지로 과거 회계장부 검토 내용을 반영하더라도 삼성바이오의 고의 분식이 인정된다는 게 골자다.
쟁점은 삼성바이오가 2012년 미국 바이오젠과 합작 투자해 세운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에 대한 회계처리의 적정성이다. 삼성바이오는 에피스 설립 당시 바이오젠에 콜옵션(주식매수 청구권)을 주는 이면계약을 했으며, 2015년엔 당초 종속회사(자회사)였던 에피스를 관계회사로 변경했다.
금감원, "삼성바이오가 고의 분식회계 통해 2조7,000억 평가이익 장부에 반영"
금감원이 현재 제시하는 고의 분식회계 근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삼성바이오가 바이오젠에 콜옵션을 부여한 만큼 2012년부터 자회사 아닌 관계회사로 보고 회계를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삼성바이오가 2015년 지배력 변화가 없는데도 에피스를 관계회사로 바꿔 시가평가를 해 기업가치를 부풀렸다는 것이다. 삼성바이오는 이를 통해 2조7,000억원의 평가이익을 장부에 반영했다.
다만 증선위가 이러한 금감원의 판단을 수용할 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국제회계기준(IFRS)에선 기업이 실제 의도가 있었는지를 따지는 등 분식회계 판단 기준이 까다로운 탓이다.
증선위가 삼성바이오를 상대로 5차례나 심의를 하고도 공시 누락에 대한 고의성만 인정한 채 재감리를 명령한 것도 이런 이유가 일부 작용했다. 따라서 금감원이 삼성바이오의 분식 의도를 증명할 자료를 얼마나 확보했는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금감원은 2011년부터 적자에 허덕이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상장 직전인 2015년 자회사 회계 처리 기준 변경으로 갑자기 1조9000억원의 흑자를 기록한 과정에 고의적인 분식회계가 있었다고 판단하고 지난 5월 중징계를 의결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2년 미국 바이오젠과 합작해 설립한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전환하면서 이 회사의 지분가치를 장부가액(2900억원)에서 시장가액(4조8000억원)으로 바꾼 게 뚜렷한 근거 없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에 증선위는 두달여에 걸친 논의 끝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바이오젠에 부여한 콜옵션(삼성바이오에피스 주식) 등의 공시를 고의로 누락했다고 결론내리고 담당 임원 해임권고와 감사인 지정, 검찰 고발 등의 제재를 의결했다.
증선위, 내달 최종 결론 내 제재 수위 확정해도 결과 따라 마무리까진 시간 걸릴 듯
그러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부당하게 변경했다는 부분에 대한 판단은 유보한 채 금감원에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한 재감리를 요구했다. 분식회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2015년 회계변경 부분 외에 2012~2014년 회계처리 부분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또 금감원 조치안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5년 자회사 회계 처리 기준을 변경한 것을 지적하면서도 종속회사와 관계회사의 두 가지 방법 중 어느 것이 맞는지를 제시하지 않아 위법행위가 특정되지 않았다고 증선위는 지적했다.
금감원은 이같은 증선위 지적을 수용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2~2014년 회계처리에서도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관계회사로 분류했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맞서 삼성바이오로직스 측은 2012~2014년에는 바이오젠이 보유한 '50%-1주'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낮았기 때문에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로 처리한 것은 정당하다는 주장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증선위가 내달 최종 결론을 내고 제재 수위를 확정해도 심의 결과에 따라 실제 사안이 마무리되기까진 시간이 꽤 걸릴 전망이다. 이미 삼성바이오는 공시 누락을 분식으로 본 증선위 1차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소송 중엔 제재 집행이 중지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오늘 회의에서 결론이 나지 않고 다음번에 회의를 추가로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회의 종료 직전에 다음 일정에 대한 의견을 모아 다음 증선위 날짜를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바이오 관계자 역시 "오늘 회의가 길어져 밤 늦게까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전날보다 2.64% 내린 38만7500원에 장을 마쳤다.
참여연대 "삼바는 어떤 경우에도 4조5천억 이익을 장부에 계상하는 것 불가능” 주장
한편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전날 발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관련 제2차 Q&A’에서 삼바가 에피스를 처음엔 종속회사로 착각해 회계처리를 하다 뒤늦게 관계회사로 인식했다면 기존 장부를 소급해 정정하면서 ‘지분법’으로 회계처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분법’은 회계처리 방식의 하나로 피투자회사의 순자산가액 변동만을 반영하며 평가 당시의 시장가격을 적용해 산출하는 ‘공정가치’는 반영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렇게 회계처리의 오류를 정정하더라도 삼바가 보유한 에피스 지분에 대해선 대규모 평가이익이 발생할 수 없다고 경제금융센터는 지적했다.
경제금융센터는 “삼바가 바이오젠과의 콜옵션 계약을 체결한 사실을 고의로 누락한 뒤 2015년에 가공의 지배력 변경 사유를 만들어 낸 것”이라며 “2015년에 지배력 판단을 변경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삼바는 어떤 경우에도 4조 5천억 원의 이익을 장부에 계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삼바의 분식회계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으로 경영권이 승계되는 과정에서 저질러진 범법행위 의혹이다. 따라서 국민들의 재벌개혁 요구에 부응해 엄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