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후 재벌기업의 변칙적인 부당거래 근절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생명보험업계 랭킹 2위인 한화생명(대표 차남규 부회장)에서 일감몰아주기 관련 의혹이 불거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한화그룹이 최근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통해 일감몰아주기 논란 해소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주력 금융계열사인 한화생명에서 일감몰아주기 관련 의혹이 사실로 판명된다면 김상조 위원장이 주도하는 재벌 변칙부당거래 해소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25일 관련업계와 소식통들에 따르면 한화생명이 그룹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기 위해 연차휴가 사용촉진제도를 악용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한 법의 허점을 노려 공시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화생명은 연차휴가를 장려하면서 직원들에게 그룹의 다른 계열사인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상품권을 지급해 왔다는 것이다.
한화생명, 일감몰아주기 의혹으로 공정위에 ‘미운 털’ 박힌다면 김승연 회장의 지배구조 개선작업에 '찬물' 끼얹을 수도
특히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3남인 김동선 전 한화건설 팀장이 물려받을 핵심 계열사라는 평가가 많았다는 점에서 한화생명이 한화호텔앤드리조트에 일감을 몰아주면서 성장에 일조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재계에서는 최근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지배구조와 관련해 꾸준히 제기돼 왔던 논란들을 모두 털고가려는 모습에 주목한다. 한화는 지난 달 31일 한화S&C와 한화시스템의 합병 계획을 발표, 일감몰아주기 논란의 핵심에 섰던 한화S&C와 김승연 회장의 아들 3형제와 지분 관계에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 이러한 참에 한화생명이 일감몰아주기 의혹으로 공정위에 ‘미운 털’이 박힌다면 김 회장이 추진하는 지배구조 개선작업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김상조 위원장은 최근 취임 1년 기자간담회에서 “일감몰아주기는 편법적 경영권 승계에 이용될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소상공인의 거래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근절될 필요가 있다”고 피력한 바 있다. 따라서 한화생명의 섣부른 일감몰아주기 의혹이 김 위원장의 코털을 건드려 화를 입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없지 않다는 것이다.
한화그룹에 따르면 한화생명은 2015년부터 휴가를 쓰는 직원들에게 7만원짜리 한화호텔앤리조트 상품권을 제공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한화생명의 직원수가 3753명이다. 이를 고려하면 1인당 최대 105만원, 연간 40억원에 이른다. 다만 실제로는 연간 15억원씩 지난 해까지 3년동안 약 45억원이 들어갔다는 것이 한화생명의 설명이다. 한화생명의 리조트 상품권 지급이 법의 사각지대를 활용한 꼼수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금액은 한화호텔앤리조트의 매출로 잡힌다. 이곳의 최대주주는 (주)한화로 김승연 회장을 비롯한 김동관, 김동원, 김동선 등 삼형제가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다. 업계에서는 한화호텔앤리조트가 김승연 회장의 삼남인 김동선 전 팀장이 물려받을 핵심 계열사로 꼽는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한화생명이 내부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대기업집단(총자산 5조원 이상) 소속 회사는 특수관계인과 자본금 5% 또는 50억원 이상 내부거래를 진행할 경우 미리 의사회 의결을 거치고 이를 공시하도록 돼 있다. 한화생명과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간 거래 금액은 50억원을 넘지 않아 공시 의무는 없다.
한화그룹, '법 사각지대’서 꼼수 부린 것 아니냐 지적..."한화호텔앤드리조트, 김동선 물려받을 계열사" 알려져 의심 충분
하지만 현재 정부가 대기업의 내부거래 논란을 정조준하면서 기업들은 활발한 자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법 사각지대’ 안에서 꼼수를 부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법한 대목이다. 더욱이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김 전 팀장이 물려받을 계열사로 언급된다는 점에서 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해 보인다.
한화호텔앤리조트 최대주주는 ㈜한화로 지분율 50.62%(584만4847주)를 보유 중이다. 이어 한화케미칼이 48.70%(564만1429주), 천안북일학원 0.42%(4만8184주) 등이다. ㈜한화는 김 회장이 22.65%(1697만7949주·보통주)의 지분율을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김동관·동원·동선 세 아들이 각각 4.44%(333만주), 1.67%(125만주), 1.67%(125만주)를 가지고 있다.
한화그룹은 이미 수년 전부터 태양광, 화학은 첫째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금융은 둘째인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 건설은 셋째인 김동선 전 팀장이 나눠서 맡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공공연했다. 하지만 김 전 팀장은 폭행 사건 등 잇단 구설수에 휘말리면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고, 일각에서는 한화건설 대신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김 전 팀장이 물려받을 핵심 계열사로 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이런 가운데 한화생명이 직원들에게 상품권을 제공한 해부터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매출이 올랐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의 매출액은 2014년 1조46억원에서 이듬해 9718억원으로 감소했다가 2016년 1조584억원, 2017년 1조901억원으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 점이 공정위 등 관련당국이 이를 일감몰아주기의 여파로 판정, 한화그룹 지배구조 개선작업의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조심스럽게 나온다.
이에 대해 한화생명 홍보실 관계자는 “이를 일감몰아주기라고 볼 수 없다”면서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매출이 1조원 이상 넘는 회사다. (한화생명이 상품권을 구입하는 금액은) 매출의 0.2~0.3%에 불과해 영향이 거의 미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한화생명 측, "일감몰아주기 아니다” 해명...공정위, 일종의 한화그룹 ‘내부 거래’로 파악하지만 위법여부는 신중한 입장
이어 “직원 복지 차원에서 (한화호텔앤드리조트)상품권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한화생명은)연차휴가사용 촉진제도를 적용하고 있어 연차를 쓰지 않아도 직원들에게 보상할 의무는 없다. 휴가시 휴양소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매출액 증가와 관련해서는 “리조트 리모델링으로 인해 매출이 급감소했다가 리모델링이 끝나서 다시 매출을 회복한 것이며, 승계구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한화생명의 상품권 구매와도 관련이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는 한화생명의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상품권을 지급에 관해 조사관 파견 여부 등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이를 한화그룹의 일종의 ‘내부 거래’로 파악하고 있지만 위법여부에 대해선 아직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재벌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공정위의 주된 타깃도 일감몰아주기 근절에 있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겨냥한 기업에는 한화그룹도 포함된다. 김승연 한화 회장의 아들 3형제가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한화 S&C 등도 올 초 현장 조사를 받았다.
최근 취임 2년을 맞은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기업집단국을 신설하고 재벌가의 세금없는 부의 편법승계 수단으로 꼽혀 온 일감몰아주기 근절을 위해 감시를 강화해 왔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한화그룹 역시 올 3월 공정거래위원회가 그룹에 전반에 대한 현장조사에 착수한 이후 경영기획실 해체 등 내용을 담은 쇄신안을 발표하면서 규제 당국의 과녁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쓰고 있으나 이번 한화생명 사태로 말미암아 그 의지가 퇴색한 인상”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만일 한화생명의 이번 일감몰아주기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그룹 차원에서 공약한 지배구조 개선의지가 꼼수 또는 공염불에 그치고, 공정위로부터 철퇴를 맞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