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易經)에는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余慶)이요, 적악지가필유여악(積惡之家必有余惡)란 말이 나온다. 즉 선을 쌓는 집에는 반드시 경사가 남을 것이요, 악을 쌓는 집에는 반드시 악을 남길 것이라는 뜻이다.
한진그룹 일가 세 모녀의 각종 의혹에 관한 수사가 가속화된 가운데 세간에서는 조양호 회장 일가의 잇딴 ‘갑질’을 놓고 혀를 내두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면서 “돈도 많은 사람들이 왜 거꾸로 돈의 노예로 살면서 애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줬는지 그저 안타깝다”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필자도 사람이 한 세상 살면서 왜 그렇게 덕을 베풀기는 커녕 모질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든다.
경찰이 마침내 한진 조현아-조현민의 어머니인 이명희(69) 일우재단 이사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해 이번 사건으로 첫 구속자가 나올지 주목된다. 조현민 전 전무가 '물벼락 갑질' 혐의로, 조현아 전 부사장이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불법 고용한 혐의와 밀수 혐의로, 이명희 이사장은 자택 직원 등을 수시로 폭언하거나 폭행한 혐의로 각 수사기관에 1차례 이상 출석해 조사를 받은 바 있다.
세 모녀 가운데 구속영장 심사를 받은 사람은 아직 없다. 앞서 경찰이 조현민 전 전무에 대해 폭행과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영장 청구권을 가진 검찰이 이달 4일 경찰의 신청을 반려하며 불구속 수사를 지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 안팎에서는 조 전 전무의 사례와 달리 이 이사장의 구속영장은 검찰의 문턱을 넘어 법원에서도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조 전 전무의 혐의가 2건이었고 이 가운데 폭행 혐의는 피해자의 명시적 의사에 반해 처벌(기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인 것과 달리 이 이사장은 7개의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이 이사장에게 적용된 특수상해·상해·특수폭행·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운전자 폭행·상습폭행·업무방해·모욕 혐의 중 친고죄인 모욕을 제외한 6개는 피해자 의사와 관계없이 처벌할 수 있는 혐의인 탓이다.
이런 가운데 국민연금이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일탈행위에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한다. 오너가의 윤리적 일탈을 막는 제도적 장치 마련 등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한진그룹 오너가의 관세포탈 등 탈세 혐의 보도가 이어져 국민들의 우려가 지속되는 가운데 국민연금이 대한항공 2대 주주로서 우려를 표명하고 나선 것이다. 조만간 기금운용본부가 공개서한을 발송하거나 경영진을 면담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 3차 회의에서 “국민의 자산을 지키고 장기 수익률 제고를 위해 대한항공 경영진이 의미 있는 조치나 실질적인 해결방안을 조속히 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은 지난 4월 대한항공 갑질 사태가 논란이 된 직후 비공개서한을 통해 대한항공에 개선 대책을 요구했었다.
당시 대한항공은 문제가 된 임원은 조치를 했고 나머지 내용은 수사 중이라 밝힐 수 없다는 소극적인 답을 보냈다. 박 장관은 “오너가의 윤리적 경영이 가능한 제도적 틀 같은 내용이 담길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런 내용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향후 공개서한을 통해 관련 제도 마련을 요구할 전망이다. 결국 한진그룹과 대한항공은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회사와 오너일가 모두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타격과 이미지추락이 불가피한 형편이다.
조현민 전 전무의 구속영장을 신청한 뒤 폭행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고 이는 영장 신청이 검찰이 반려한 원인이 됐다. 반면 이명희 이사장은 구체적인 혐의내용을 볼 때 이 같은 반전이 일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세간에서는 재벌총수 부인이 첫 구속되는 사례가 될지 주목한다. 수사당국의 한진오너 일가에 대한 전방위 수사 가속화 속에 거듭 ‘적선지가 필유여경‘의 이미가 읽혀진다.
“적선하는 집안에는 반드시 경복이 남아 있다.착한 일을 계속해서 하면 복이 자신 뿐만 아니라 자손에까지도 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