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저격수'로 알려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진보적 경제학자이며 사회운동가이다. 20년 가까이 재벌체제 감시와 비판활동을 이어왔다.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정책을 수행할 적임자로 평가받았다. 취임 이후 대기업 지배구조 개편 등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가 '재벌 저격수'라는 별칭과 달리 합리적이고 소통이 가능한 인물이라는 시각도 있다. 재벌개혁도 급진적이고 무조건적 개혁보다는 점진적이고 시장 안정을 깨뜨리지 않는 쪽으로 신중하게 접근하는 편이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재벌들의 일감몰아주기를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경제민주화의 시작은 재벌개혁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갑의 횡포’ 근절이라는 시각이다. 지난 2월 대기업집단의 자발적 소유 지배구조 개선 사례를 발표했다. 현대차, SK, LG, 롯데 등이 발표한 구조개편안을 제시하며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 개선을 종용했다.
현대차그룹이 3월 말 순환출자 해소방안을 내놓으면서 삼성그룹만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그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삼성그룹도 변화를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정책을 앞장서 이끄는 막중한 과제를 담당한다. 이번 정부에서도 재벌개혁에 실패하면 한국 경제에 미래가 없다는 절박한 심정을 내걸고 있다. 그가 강한 개혁의지를 내걸고 취임해 대기업 순환출자 고리 해소와 가맹사업 필수품목 원가공개 등 여러 성과를 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재벌개혁 속도가 더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그는 시장의 압력을 통해 자발적으로 예측가능한 개혁을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개혁 요구와 실제 추진 사이의 괴리를 계속 설득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벌 저격수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게 유연함을 갖고 있는 것이다.
때마침 김 위원장의 ‘친정’ 격인 참여연대에서 재벌개혁의 속도가 더디다는 비판이 나왔다. 참여연대는 10일 “우리 역사상 재벌의 ‘자발적 노력’으로 개혁이 이루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심화되고 있는 경제력 집중 문제 및 재벌의 우월적 지위 남용과 각종 불공정행위가 만연한 상황에서 기업의 자발적 노력만으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 ‘공정한 경제질서 구현’이라는 본연의 책무 완수에 대한 어떠한 의지도, 책임감도 찾아볼 수 없는 공정위의 태도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앞으로 공정위는 향후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사익편취 문제 해결 등 근본적 재벌개혁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촉구했다.
김위원장이 재벌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재벌개혁의지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사실상 김상조 위원장을 향한 참여연대의 재벌개혁 압박이다. 한 때 한솥밥을 먹었던 참여연대의 옛 동지로부터 ‘욕’을 먹는 것은 그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민단체와 정부부처 최고책임자 간에는 그만큼 이상과 현실 사이의 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해 한 재계 모임에 참석한 뒤 장관모임에 늦게 갔다가 “재벌들을 혼내주고 왔다”고 발언, 혼쭐이 난 적이 있다. 장관급 공정위원장이 아니라 시민단체 대표 같은 표현을 했기 때문이다. 막중한 자리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리고 정책을 영향을 받는 집단이나 사람들로부터 예상치 못한 저항과 도전을 이겨내야 한다.
재계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합리적이고 소통이 가능한 인물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실제로 문재인 캠프 합류 뒤 공약 가운데 출자총액제 부활, 기존 순환출자 해소 등이 빠지는 등 재계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재벌개혁 문제는 경제력 집중을 막고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재벌개혁의 분명한 원칙 아래 급진적이고 무조건적 개혁보다는 점진적이고 시장 안정을 깨뜨리지 않는 쪽으로 신중하게 접근하는 편이다. 그는 그동안 재계에 협조를 구하며 재벌개혁을 독려해 왔다. 앞으로도 중심을 잘 잡아서 조만간 친정인 참여연대를 방문, 개혁에 따르는 저항과 애로사항을 한번 설명하는 게 좋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