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특검에서 드러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재산의 대부분은 선대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상속재산이 아니고 이 회장이 마련한 비자금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이 회장차명재산에 대한 재수사는 물론 당시 특검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정치권에서 대두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건희 차명계좌 과세TF’는 “2008년 조준웅 특별검사팀이 밝힌 이건희 차명재산 4조5000억원은 비자금으로 판단된다”며 이 회장 차명재산에 대한 재수사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이 회장의 차명재산 전액을 상속재산으로 판단해 ‘봐주기’수사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는 조준웅 특검에 대해서도 수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삼성이 특검이 끝난 후 벌어진 재판 등에서 오너일가의 유불리를 따져 특검의 판단과는 정반대로 '상속재산이 없다'고 주장한 것은 삼성이 법 위에 군림하는 듯한 적폐라는 점에서 적폐청산 차원에서도 이번 차명재산의 비자금부분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다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민주당 ‘이건희 차명계좌 과세 TF’, “2008년 조준웅 특별검사팀이 밝힌 이건희 차명재산 4조5000억은 비자금으로 판단" 발표
민주당 TF는 4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중간보고를 통해 당시 특검은 이건희의 4조5000억원 규모의 차명재산을 선친인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상속받은 것으로 판단으나 조사결과 차명재산의 대부분이 상속이후에 형성됐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TF위원인 이학영 의원은 “차명재산 4조5000억 중 삼성생명 주식이 2조3000억으로 가장 큰 규모인데 TF가 보유경로를 추적해보니 이 중 20%만 상속받은 것이고, 80%는 1988년부터 1990년 사이에 형성된 자산”이라고 밝혔다. 다시말해 이 재산은 비자금일수도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 의원은 당시 특검은 1994년 이후의 보유 경로만 파악해 상속재산이라는 판단을 내렸는데 이는 특검 수사가 대단히 미흡했거나, 아니면 고의로 밝히지 않은 ‘봐주기’수사일 수도 있다는 진단을 내리고, 특검에 대한 수사를 실시해야한다는 입장임을 밝혔다.
차명재산의 대부분이 비자금이라는 것은 당시 특검이 이 회장에 대한 횡령과 배임혐의를 들여다 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아닐 수 없지만 삼성이 차명재산의 상속재산문제와 관련, 수시로 말을 바꿔온 점도 주목된다.
삼성, 특검수사 종결 후 "이 회장 차명재산은 상속재산이 아니다" 번복..동일 사안 놓고 말 바꾸는 등 '법 위에 군림하는 막강재벌' 과시
당시 특검이 이 회장의 차명재산의 전액이 상속재산이라는 판단했을 때 삼성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특검의 판단을 전적으로 수용했다. 삼성은 당시 여러 증거자료 제출로 조준웅 특검팀에 대해 차명재산 전액을 상속재산으로 판단토록 유도했다는 후문도 없지 않았다. 삼성 측은 상속세 소멸시효 등을 감안해 차명재산 전액을 상속재산으로 판단토록 하는 것이 세금상에서 훨씬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을지 모른다.
더욱이 특검이 차명재산의 상당부분을 상속이후에 비자금조성으로 형성된 것으로 판단할 경우 이 회장이 횡령이나 배임혐의 등으로 걸려 중벌을 받을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주도면밀한 삼성이 간과할 리가 만무하다.
그러나 특검이 막을 내린후 삼성은 이 회장 차명재산은 상속재산이 아니라고 주장을 펴 특검의 판단을 완전히 뒤집었다. 이 회장 측은 특검이 끝난 지난 2012년 친형인 고 이맹희 CJ그룹 회장 간의 상속재판에서 “현재 이건희 명의로 돼 있는 주식 중에는 상속 개시 당시의 차명주식이 남아 있지 않다”고 주장했고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였다. 상속재산이있다고 할 경우 그 상당부분을 이맹희 회장 등에 빼앗길 수 있는 불리한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우려한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말하자면 삼성은 차명재산이라는 동일한 사안에 대해 위법성이나 세금의 유불리 등을 감안해 차명재산의 상속재산 여부에 대해 말을 바꿔 온 셈이다. 삼성은 특검의 판단을 하루아침에 뒤집은 것을 보면 '법 위에 군림하는 막강재벌'임을 여실히 보여줬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런 적폐를 도려내 법을 제대로 지키는 삼성이 되도록 하기위해서는 차명재산의 비자금여부와 특검의 '봐주기'수사에 대해 철저한 진상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해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