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어보(魚譜)를 아십니까?
우리나라 최초의 어보(魚譜)를 아십니까?
  • 정기석
  • 승인 2024.11.2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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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석 칼럼] 정약전의 ‘자산어보’보다 11년이나 앞서, 1803년에 저술된 우리나라 최초의 어보가 따로 있다. 방어 · 꽁치 등 어류 53종(연체동물 포함)과 갑각류 8종, 패류 10여 종 등 수산물을 소개하고 있다.

각종 이명(異名)·형태·습성·맛 등을 비롯, 이용법·어획법·유통 등의 문제도 언급하고, 특히 풍류를 겸한 관찰이었던만큼 말미에 ‘우산잡곡(牛山雜曲)’이라는 칠언절구의 자작시도 첨가한 게 이채롭다.

현재 이 책의 실물은 연세대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이 탄생한 경남 창원시 율티마을에 가면 그 특별한 책 이야기만 들을 수 있다. 조선후기 어느 실학자가 신유사옥에 휘말려 유배된 마을이다. 그 실학자, 그러니까 그 책의 저자가 2년여 유배생활을 했던 집은 이제 흔적조차 없다. 오래 전 공단이 들어서면서 안밤티마을 ‘우소헌’ 집터마저 사라진 것이다.

이제는 그 실학자의 후손도, 유배의 흔적도 마을에 남아있지 않지만, 율티마을 사람들은 그 사실만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 책의 저자가 그들의 고향에 머물렀다는 역사적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한국 최초의 어보가 그곳에서 탄생했다는 문화적 사실에 뿌듯한 자긍심을 품고 있다.

율티마을 사람들만 기억하는 ‘어보’

그런데, 율티마을 사람들이 그토록 귀하게 여기는 그 어보의 존재를 아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그보다 늦게 저술된 정약전의 자산어보는 교과서에도 등장하고 영화로도 제작되고 저자의 흑산도유배지는 문화유적지로까지 지정되었음에도 말이다.

이 책을 집필한 우소헌은 물론 낚시를 하며 창포만의 물고기를 관찰하던 고저암과 개구리바위 등 저자의 흔적을 알려주는 안내판 조차 하나 세워져 있지 않은 것과 극명히 비견된다. 지역성의 차이일까, 지역주민들의 문화의식 차이일까. 아니면 지역정치인들의 인문학적 소양과 품격 차이일까. 안타까울 뿐이다.

다행히, 율티마을 사람들은 지난해부터 이 책을 기리는 축제를 스스로 열기 시작했다. 어촌계를 중심으로 지역의 국회의원도 초청하고 도의원, 시의원도 불러서 250여명의 시민들이 마을광장에 모여 큰 행사를 치렀다. 그 어보를 주제로 펴낸 여러 책들도 전시하고, 그 어보에 기술된 조리법대로 모시조개와 바지락을 재료로 와각탕 음식 시식회도 가지고, 갯벌체험 프로그램도 창포만 습지 갯벌에서 펼쳤다.

그날, 율티마을에서 나서 자라고, 율티마을 앞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는 이상율 어촌계장은 “진전면의 자랑인 이 물고기 도감을 전국적으로 알릴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정말 기쁘게 생각한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이처럼 율티마을의 자랑이자 자산인 이 어보는 저자인 담정(藫庭)김려(1766~1821) 선생이 1801년 천주교도 박해로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진동면 앞바다 진동만(옛 진해현 우해)에 유배와 저술한 우리나라 최초의 어보로 공인되었다.

김려 선생은 2년 6개월 동안 기이한 물고기, 갑각류, 패류 등 72종을 형태와 습성을 기록하고 이용법, 어획법, 유통과정 등을 세밀히 조사·관찰해 1803년에 최초의 어보를 완성한 것이다.

그동안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이 유배지 흑산도에서 1814년에 저술한 ‘자산어보’가 한국 최초의 어보라고 잘못 알려진 것이다. 율티마을에서 탄생한 이 어보가 자산어보보다 11년이나 앞선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자산어보나 이 어보나 저자가 유배 생활 중에 듣거나 관찰한 내용을 정리한 실학사상의 결과물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둘 다 신유사옥이라는 천주교박해로 인해 유배당한 사연도 같다. 다만, 자산어보는 중·고교 교과서에도 실렸고, 영화로도 만들어 잘 알려진 반면, 이 어보는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특히, 이 어보는 글의 말미에 어촌 생활상을 표현한 시(詩)가 우산잡곡(牛山雜曲)이란 이름으로 39수가 실려 있어 자산어보에는 없는 인문적, 사료적 가치도 따로 지니고 있다. 김려선생은 각박하고 혹독한 유배생활 중에도 탁월한 시적 감수성을 발휘, 어촌풍경, 어로현장, 어민생활 등을 잘 묘사해 시로 승화시킨 것이다.

모든 국민이 기억해야할 ‘어보’

물론 지역 차원에서는 그 귀중한 역사적 저작물, 문화적 컨텐츠의 가치를 방치한 것만은 아니다. 그 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문화콘텐츠로 활용하려고 2015년부터 마산문화원에서는 매년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하고 7권의 자료집까지 발간했다.

일단, 학술심포지엄을 통해 문화지도 제작, 물고기 탐사길, 캐릭터 개발, 음식 발굴 등을 제안했다. 뿐만 아니라 관련 바다예술제를 열어 낚시대회, 뮤지컬, 연극, 물고기 체험행사 등을 열고 관련 음식을 홍보하고 판매하면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강조하고 역설했다.

창원시에서도 ‘관련 그림책’ 발간, ‘관련 음식 특화거리’ 조성, ‘와각탕 축제’ 등을 벌였다. 또한 마산박물관과 창원문화재단의 ‘관련 기획전’, 마산대학의 ‘관련 레시피’ 개발, MBC경남의 ‘괸련 기획보도’ 등이 이어졌다.

이러한 지역의 노력으로 이 어보에 대한 지역민들의 관심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이 부족하다. 관련 문화컨텐츠와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하는 한편, 한국 최초의 어보 탄생지라는 가치와 위상에 걸맞게 관련 박물관 또는 기념관을 세울 필요도 충분하다.

마침 이같은 지역민둘의 열망과 의지를 모아, 오는 26일 마산합포구청에서 이 한국 최초의 어보 탄생의 배경과 의미를 기리는 포럼이 열린다. 이 자리에는 이 어보를 기억하는 지역민들 뿐 아니라, 김려 선생의 후손인 12만여명의 연안 김씨 대종회, 그리고 천주교박해를 추념하는 18만여명의 마산교구의 신도회 등에서도 참여, 이 어보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와 의미를 더불어 되새기고 되살릴 예정이다.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 1801년 신유사옥에 연루된 김려 선생이 율티마을에 유배, 1803년 늦가을에 탈고한 한국 최초의 어보이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정기석(tourmali@hanmail.net)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 연구위원

경상국립대 창업대학원 6차산업학과 비전임교원

前 국회정책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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