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환승 칼럼] 괴물(怪物)과 더불어 살아온 인간
인간은 상상력이 뛰어난 동물이다. 역사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허황된 괴물을 상상하고 여러 가지 신화와 전설을 만들면서 살아왔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알게 된 오늘날에도 괴물 이야기는 계속 영화의 주제가 되고 있다.
현대의 과학기술은 상상과 그래픽 속에서 보는 것이 가능하던 괴물들을 AI와 로봇 기술로 모두 실현할 수 있는 시대가 되기도 했다.
괴물이란 평소에 접하지 못하는 기이하고 괴이(怪異)한 생명체를 뜻하는 단어로 처음보는 물체는 모두 괴물이라 할 수 있다.
원숭이 무리에게 바다의 게를 놓아주면 크기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두려워서 피한다고 한다. 털이 없는 게가 옆으로 기어가는 게 원숭이에게는 낮설고 괴이하기 때문이다.
기원전 4세기에 쓰여져 동양의 신화라고 알려진 산해경(山海經)에는 400마리의 괴수가 등장한다.
영화 파묘에 등장하는 일본의 요괴 누레온나(濡女)는 사람의 얼굴을 한 뱀으로 산해경 해외서경의 헌원국에 사는 괴물로 “오래 살지 못하는 사람이 800살이며 사람의 얼굴에 뱀의 몸을 하고 꼬리가 머리 위에서 말려져 있다”고 표현되어 있다.
그리스 신화에도 많은 괴물이 등장하고 있으며, 헐리우드 영화에는 늘 다양한 괴물이 주인공이 되곤 하며 근래에는 외계에서 온 생물로 바뀌고 있다.
국내 드라마 “도깨비”에는 900년을 사는 저승사자와 “별에서 온 그대”에서는 외계에서 온 주인공이 있으니, 괴물을 소재로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가진 창작 컨텐츠 만들기가 쉽기 마련이다.
최근에는 괴물 대신에 휴머노이드 로봇이 종종 등장하기 시작하고 있다.
괴물은 사실 없다
오랫동안 미스터리처럼 전해오던 이야기로 영국 스코틀랜드의 네스호에는 괴물이 살고 있다는 괴담이 있었다.
고대 공룡과 비슷한 사진으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으나 최근에 관광객들을 많이 오도록 하기 위해 조작한 것이라고 밝혀졌다. 그동안 여러 차례 측정장비를 동원해서 샅샅이 조사한 결과 찾지 못했었다.
현재 네플릭스에서 1위를 하고 있는 작품은 ‘괴물’이다. 이 작품은 1989년에 베벌리 힐스에서 부모를 살해하여 35년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메넨데즈 형제(당시 나이 21세, 18세)의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지구에 인류가 모르는 괴물은 실제로 없으며, 있다면 오직 괴물로 변한 인간과 앞으로 인간이 만든 인공 괴물만이 있을 뿐이다.
황제, 왕, 절대권력자가 곧 인간 괴물
1651년에 토마스 홉스가 쓴 책 리바이어던(Leviathan, 레비아탄)에는 국가를 수많은 사람들로 구성된 괴물의 개념으로 묘사했다. 리바이어던 단어 자체가 구약의 욥기에 나오는 바다에 사는 거대한 괴수를 뜻한다.
국가는 하나의 거대한 인체에 해당한다는 개념 외에도 사람의 구조가 역시 기계와 같다는 생각. 즉 심장은 엔진이나 구동장치로 모든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개념은 훗날 과학사학자로 하여금 “인공지능의 아버지”라고 부르게 했다.
절대권력을 가진 중국의 황제가 선정을 하면 좋은 일이지만 폭정을 하는 순간 인간은 괴물의 희생이 될 뿐이다.
명나라의 초대 황제인 홍무제는 5만명을 죽였다. 대상은 명나라 창업의 일등 공신들이었다. 또 학자들을 싫어한 그는 문자의 옥(文字之獄)으로 과거 자신의 흑역사인 탁발승과 황건적을 연상시키는 ‘광(光)’ '독(禿)' ‘승(僧)’ ‘적(賊)’을 금기어로 지정하여 이 글자가 포함된 상소문이나 서적이 발견되면 모두 처형했다.
명의 영락제는 조선의 공녀로 간 현인비 권씨가 독살당하자 관련자 2,800명을 처형하기도 했다.
국가를 인간이 모여서 만든 일종의 괴물로 보고 국가권력에 의해서 희생되는 힘없는 개인을 그리는 영화들이 다수 제작되었으며, 역사 속에서 이와 같은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벌어지는 젊은 군인들의 희생은 절대권력을 가진 괴물 지도자에 의해서 전쟁이라는 형식으로 3년째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괴물 도깨비
우리에게는 상상의 동물로 용과 봉황 그리고 경복궁 앞에 서 있는 해태가 있다. 그리고 괴물로는 도깨비를 들 수 있다.
도깨비 이름은 다리가 하나뿐인 독각귀(獨脚鬼)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도깨비 외관은 키가 크고 튼튼한 몸에 약간 험상궂은 얼굴이지만, 괴물이 아니고 대체로 평범한 인간의 모습일 뿐이다.
단 그가 늘 휴대하고 다니는 호리병과 방망이가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방망이로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마법의 도구이다. 성격은 장난꾸러기로 사람에게 도움을 주거나 보물을 나누어주며 해치지는 않는 친근한 존재로 여겨진다.
통상 알고 있는 뿔 달린 도깨비는 오니라고 부르는 일본의 도깨비가 가지는 특징이라고 한다.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 나오는 대사에서 “네 눈 앞에는 이제 피범벅이 되어 으르렁거리는 짐승 한 마리가 서 있을 거다. 눈이 뒤집혀 아무도 알아보지 않는 악귀 하나가 서 있을 거다! 나는 이제 괴물이다”라는 부분이 있다.
평범한 인간이 괴물로 변신할 수도 있다.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에서는 분신술 등 다양한 도술을 부릴 줄 아는 사람으로 등장하며, 1663년 허목이 쓴 ‘삭낭자전’에는 괴인으로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삭낭자는 바둑을 잘 두었는데 고수와 두거나 하수와 두거나 간에 단지 한 집만을 이겼으므로, 세상에서 한 집 승부가 난 바둑을 가리켜 ‘삭낭자와 바둑 두는 법’이라 하였다. 나이를 물으면 스무살이라고 하며 늘 한결같은 모습을 수십년간 유지한다. 새끼를 꼬아 만든 망태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그 속에서 잔다. 그래서 삭낭자라고 부른다.”
AI가 괴물이고 위험한 이유
AI가 괴물인 이유는 인간의 지능보다 뛰어난 초지능을 가졌기 때문이다.
2차원에 사는 사람이 3차원에 사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듯이, 초지능 괴물은 지능을 가진 인간이 이해하고 통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핵무기의 대량 살상능력 만큼 AI도 지구를 통제 가능한 힘과 영향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괴물이다. 평범한 인간도 AI라는 괴물을 소유하는 순간 괴물이 된다.
2024년 9월4일 미국 조지아주에서 16세 중학생 소년이 자동소총으로 총기를 난사해서 교사 포함 4명이 죽고 9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문제는 괴물과 같은 인간에게 AI가 맡겨지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현재는 초거대 기업만이 AI를 개발하고 소유할 수 있으나 초기 대형컴퓨터에서 가질 수 있는 성능보다 뛰어난 컴퓨팅 능력을 오늘날 개인의 스마트폰으로 휴대하듯, 머잖아 누구나 초지능 AI를 소유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
총기 휴대와 마찬가지로 AI를 개인이 소유할 것이냐의 문제를 논의해야 할지 모른다.
실현 가능한 빅브라더가 현실로 다가온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애플, 아마존 그리고 테슬라 등 세계 10대 기업들은 초거대 AI를 앞장세워 팍스 아메리카나를 가능하게 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엔비디아의 H100 GPU 10만개를 사용해서 만든 ‘콜로서스’ 시스템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이는 세계 최대의 AI 시스템으로 30억달러(약 4조원)가 투자되었으며, 곧 H200 GPU 5만개를 사용해서 두 배로 확장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10억달러 투자로 만들어진 OpenAI의 GPT 영향력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그는 세계 최고의 AI를 만들겠다는 야망으로 글로벌 AI 서비스를 독점하는 데 성공한다면, 머스크가 만든 제국은 어느 국가도 건드릴 수 없는 언터처블(untouchable)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미국에는 강력한 독점금지법이 있기는 하지만 미래는 어떻게 변화할지 모른다.
한 개인에게 절대적 힘이 주어지는 것은 위험하여 인류가 도입한 민주주의는 권력 분산이 핵심이다.
물론 AI가 현대의 괴물일지라도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사물에 불과하다. 인류에 유용한 괴물이 될지 인류에게 해악을 끼치는 괴물이 될 지는 오직 사용하는 인간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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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용환승(hsyong@ewha.ac.kr)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졸업, 대학원 공학박사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연구원,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전문위원
한국정보과학회 부회장, 한국소프트웨어감정평가학회 회장
현 이화여자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