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에 걸려 넘어지는 게 아니라 돌뿌리에 걸려 넘어진다.
태산에 걸려 넘어지는 게 아니라 돌뿌리에 걸려 넘어진다.
  • 윤영호
  • 승인 2024.10.06 10:44
  • 댓글 0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돌뿌리는 자기 선악(善惡)을 품고 있지 않은 객관적 실체...지위여하에 관계없이 누구나 걸리면 넘어지는 것

[윤영호 칼럼] 시시비비의 중심에서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된 정치권 인사들을 치명적으로 발목 잡거나 넘어지게 하는 것은 비젼의 빈약함이나 전략의 부재 같은 대외명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감정에 도취되거나 순간 모면을 위해, 한 순간 생각 없이 내뱉은 자기 말이나 무모한 행동입니다.

치킨게임을 하느라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극단의 대결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자명한 사실을 잊고 있으며, 지금 이런 말이나 이런 행동을 하면 향후 공적으로 나타나는 결과가 어떨 것이라는 인과의식(因果意識)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비단 정치인 뿐이겠는가? 허세에 기반하는 모든 공인이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끝나지 않는 경기, 막을 내리지 않는 공연은 없는데도 말입니다.

무대 위에 서게 되면 사소한 모습도 관중석에서는 더 잘 보입니다. 현재의 모습 뿐만 아니라 과거의 모습까지 함께 보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무대위에 서는 공인은 안 보일 것 같은 속옷을 잘 입어야 합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자의 든 타의 든 겉옷을 벗어야 하는 때가 오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크게 조명되고 노출된 자리는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불안정한 자리가 될 수가 있습니다. 자신을 넘어뜨리는 것은, 먼 곳 태산이 아니라 지금 서 있는 발 밑 돌뿌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공했지만 그로 인해 조만간 더 큰 불행으로 이어지는 사례를 우리는 역사속에서 반복적으로 경험해 왔습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출세하여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던 사람들의 명성도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면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돌뿌리는 사람차별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돌뿌리는 있는 그대로의 팩트입니다. 돌뿌리는 자기 선악(善惡)을 품고 있지 않은 객관적 실체입니다. 그러기에 지위여하에 관계없이 누구나 걸리면 넘어지는 것이겠지요.

유명인사들도 자기 앞가림을 하지 못해 엉뚱한 곳에서 추락

고귀한 인격을 갖기 위해서 우리는 ‘덕(德)을 쌓는다’고 말 하지 ‘덕을 숙지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덕이나 역사나 교훈을 공부하는 이유가 단순히 그런 것들에 대한 앎에 그친다면 박물관에 가서 그 곳에 다녀갔다는 '인증샷'만 찍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어요?

성경이나 불경, 또는 고고한 철학을 막론하고 득도(得道) 한다는 참 의미는 과거 가르침의 기록이지만 나의 내면에서 현재로 살아서 작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단순히 기록된 내용 숙지나 그것에 대하여 개관(槪觀)을 섭렵(涉獵)하는 것은 논문 쓸 때나 필요한 것이지요. 

한 순간도 정지되지 않고 움직이는 우리네 삶 속에서 지금 이순간 나의 언어로 의역되어 내게 작용하지 못한다면 나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단순한 과거 지식에 대한 책장 속의 인쇄물일 뿐입니다. 살아있는 내 인격의 일부가 되어있지 못하고 그저 개념 알음알이 나 스펙 한 줄 더 넣기 위한 과정이라면 득도(得道)가 아니라 한낱 독도(讀道) 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태산에 버금 할 정도의 권위와 화려한 스펙에 빛나는 유명인사들도 자기 앞가림을 하지 못해 엉뚱한 곳에서 추락하는 것을 우리 역사 속에서 수도 없이 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똑같은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보면,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그저 돌 뿌리에 걸리면 넘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만고의 진리입니다.

높은 학식이나 지위나 권위나 성스러움으로 감히 범접할 수 없어 보였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물에 빠졌을 때 허우적거리는 본능의 모습은 똑같습니다. 그 순간 그 자리에서는 철학도 인격도 양심도 실종되고 없습니다. 아무리 인격수양이 된 사람이라도 침해 한 방 걸리면 일 순간 딴 사람으로 변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과욕은 만악(萬惡)의 시작이며 객기(客氣)는 넘어짐의 앞잡이

그러므로 돌뿌리를 경계하는 삶의 지혜는 아무리 강조하고 아무리 반복해도 과하지 않습니다. 살아가면서 순간 순간 그런 것들이 늘 기억나지도 않고, 기억난다 할지라도 남에게만 해당되는 것처럼 내게는 무감각하기 때문입니다. 순간 순간 나를 절제시키거나 고양시키도록 작용하는 득도(得道)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욕으로 뵈는 게 없으면 소경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물불을 가리지 못하면 불속이나 물속으로 그냥 뛰어들 수 밖에 없는 것 이니겠어요? 

과욕은 만악(萬惡)의 시작이며 객기(客氣)는 넘어짐의 앞잡이 입니다. 제 눈을 멀게하고 자승자박(自繩自縛)하는 질병입니다. 이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감정이 아니라 이성, 주관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인식에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분별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현생 세상에서 만은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기억과 분별의식이 사라지는 것이 바로 침해이니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돌뿌리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어떤 사실에 대한 분별의식에 깨어 있어야 할까요?

●누구나 백세를 다 살아도 876,000시간 숨쉬다가 훅~ 가는 한시적 존재라는 사실.
●자식에게 과도한 재물을 남겨주어도 세상이 그걸 그냥 놔두지 않는다는 사실.
●말년의 과욕이 평생 업적과 명예를 한 순간 날려보낸다는 사실.
●죽은 시체의 모습은 인간이나 다른 동물이나 똑 같다는 사실.
●넘어졌을 때 부끄러운 모습은 정치가나 성직자나 교육자나 평민이나 다 똑같다는 사실.
●세상사람은 유명한 사람이 넘어지는 모습을 더 흥미롭게 본다는 사실.
●악한 모습이 선한 모습보다 더 강하게 기억된다는 사실.
●나도 넘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참 지혜라는 사실.
●소풍 가서 더 놀고 싶어도 해가지면 돌아와야 하듯, 오늘 시절 인연이 다하면 내일 아침 눈뜰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윤영호<yhy321321@gmail.com>

(사)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한국공감소통연구소 대표/더뉴스24 주필

전 HCN지속협 대표회장

전 ㈜ 한림MS 기획상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서울이코미디어
  • 등록번호 : 서울 아 03055
  • 등록일자 : 2014-03-21
  • 제호 : 서울이코노미뉴스
  • 부회장 : 김명서
  • 대표·편집국장 : 박선화
  • 발행인·편집인 : 박미연
  •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58, 1107호(여의도동, 삼도빌딩)
  • 발행일자 : 2014-04-16
  • 대표전화 : 02-3775-4176
  • 팩스 : 02-3775-41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미연
  • 서울이코노미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서울이코노미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eouleconews@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