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호 칼럼] 일 할 때도 열심히 하고, 놀 때도 열심히 노는 사람을 우리는 적극적인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자기 체력과 능력 속에서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그는 주어진 자기 함량에 대해 가동률이 높은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부럽기도 하고 슈퍼맨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장소에 따라서 자기 정체성이 모호해지거나 상호 모순된 행동이 극단으로 양립된다면 이는 분열된 자아(自我)입니다.
직장을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한 곳으로만 여기게 되면, 고용된 근로자는 회사에서 잘리지 않을 만큼만 일하려 합니다. 적게 일하고 많이 받아야 현명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자기 사업장을 돈벌이의 장으로만 생각하는 사업주라면 필요한 근로자가 회사를 그만두지 않을 만큼만 월급을 주려 합니다. 일을 많이 시키고 임금을 적게 주어야 유능한 사업가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이기적인 사람이 회사가 아닌 교회나 사찰 등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임금을 착취하거나 일할 시간에 농땡이 치던 바로 그 사람이 그 곳에서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나 자비의 화신인 부처의 모습인 것이지요. 장소에 따라서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모습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 모습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일는지도 모릅니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극명하게 구분되어 있는 것이지요.
조건이 바뀔지라도 감사하는 심정으로 일할 수 있다면
약삭빠른 정치인이나 모사꾼들은 악마가 되는 장소와 천사가 되는 장소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이를 활용합니다. 청탁할 일이나 이권이 있을 때, 천사나 보살들이 모인 성지에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천사 표 또는 보살 표 로비를 하게 되면 성공확률이 큰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선거철이 되면 여러 곳을 등록하며 예배나 법회를 순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종교가 같다면 묻지 마 지지를 하고, 종교가 다르다면 묻지 마 배척을 하는 극단적 견해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이지요.
우주에는 동서남북의 구분이 없듯, 하늘은 이웃을 장소에 따라 구분하지 않습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내릴 때, 사람을 구분하여 비를 내리지 않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말씀하실 때에 그 이웃은 장소에 따라 이웃과 원수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장소 뿐만 아니라 시간도 마찬가지겠지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경전의 말씀을 실천함에 있어서 기뻐하고 기도하는데 모든 장소와 모든 시간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를 실천할 사람은 이 지구상에 없을 겁니다.
장소가 변할 지라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고. 조건이 바뀔지라도 감사하는 심정으로 일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경전을 실천하는 방법이 아닐까요? 삶과 기도가 따로국밥이 아니라 한덩어리이기 때문입니다. 설거지나 집안청소를 할 때 그것을 일로 생각하면 스트레스지만, 수행으로 생각하면 자기정화의 시간입니다. 노동으로 생각하면 괴로움이지만 운동으로 생각하면 즐거움 아니겠어요?
극한의 의료갈등과, 여야 대치 상황도 정상 회복되기를
추석 연휴가 곧 시작됩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라고 하는 말씀 속에는 경전 못지않은 가르침과 행복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떨어져 있던 가족과 이웃이 만나고 화해하며 정을 나눌 수 있는, 민족 고유의 전통문화입니다. 이웃을 돌아볼 수 없을 만큼 유난히도 심했던 폭염도 한가위 명절을 기점으로 점차 줄어들 것으로 기대됩니다.
극한으로 치닫던 의료갈등과, 바늘조차 들어갈 수 없을 만큼 걍팍했던 여야 대치 상황도 정상으로 회복되기를 기원합니다. 불화했던 가족 간의 갈등과 오해도 역지사지 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오랜 시간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도 한 순간 버림받는 부모가 늘어나는 완악한 이 시대에 ‘갑’은 부모가 아니라 자녀입니다. 시간은 노인이 아니라 젊은이들 편이니까요. 오늘 베풀 수 없으면 영원히 줄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한가위 명절은 화평이 회복되는 기회~! 이를 역행하는데 사용하는 것은 순리를 역행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고아나 실향민이 아니면서도, 살아있는 가족이나 이웃을 만나기 싫어서 천사와 보살이 모이는 장소나 기도원만 찾아 나 홀로 하늘과 독대하려고만 한다면 하늘이 만나줄까요? 베풀어야 할 이웃과 뺏아 야할 이웃이 따로 있나요? 정말로 천국과 극락, 지옥과 아수라장이 되는 장소가 따로 있나요? 그렇다면 문제해결은 오히려 간단합니다. 온 백성이 그런 장소로 옮기면 간단할 테니까요. 천국이나 극락은 장소가 아니라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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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사)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한국공감소통연구소 대표/더뉴스24 주필
전 HCN지속협 대표회장
전 ㈜ 한림MS 기획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