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석 칼럼] 한국의 농촌지역개발사업은 문제가 많다. 한마디로 하향식, 관주도, 토건형 모델로 설계되고 시행되기 때문이다. 1970년대 국가 주도의 물리적 환경개선 위주 개발지향적 ‘새마을운동’으로 촉발된 태생적 한계마저 안고 있다. 1980년대 들어 농촌정주생활권 개발, 농공단지 조성, 소도읍 활성화 등에 이어, 1990년대 농지제도 폐지, 개발제한구역 해제 등으로 농촌지역 난개발의 흑역사로 점철된다.
200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국토균형발전, 상향 공모식 농촌지역개발사업 등의 전향적 , 혁신적 정책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현장은 정책과 제도를 따라가지 못한 게 사실이다. 우선 중앙정부에 예속된 유사·중복 사업의 주체 간 갈등과 시행착오가 근본적인 문제점이다.
2000년대 이후 농식품부를 비롯해 농진청, 행안부, 문화부, 국토부 등의 각종 농촌지역개발 유사·관련사업이 중복적으로 양산되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부처 간 헤게모니 다툼, 중앙과 지방의 불협화음, 행정과 주민의 갈등만 야기하며 파행과 시행착오의 사례가 난무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개발’이라는 토건적, 전시행정용 제도와 사업의 관성과 관행, 정책 체계와 패러다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앙정부 예산에 의존하다보니 타율적인 단기사업 위주로 추진되는 시행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역 현장에서는 지자체장의 교체 등 외부 환경 변화에 따라 연속성이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중장기적인 비전과 전략이 부재한 상태로 단위사업 형태의 단기사업만 소모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사업비를 대부분 중앙정부에 의존하면 지역별로 독자적, 자율적인 사업의 계획이나 추진은 어렵다. 출렁다리나, 둘레길이나, 복합문화복지센터나, 송어잡기체험축제처럼 기존사업이나 타 지역의 유사사례를 모방하고 답습하는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사례가 만연할 수 밖에 없다.
‘한국형 농촌지역개발사업’은 예정된 실패 중
이처럼, 이른바 ‘한국형(식) 농촌지역개발(사업)’ 문제는 정책모델 설계의 오류라는 태생적이고 본질적인 사업모델의 한계를 안고 있다. ‘마을만들기’등 농촌지역개발사업의 취지와 목적을 ‘산업적인 농촌관광지화’ 또는 ‘상업적인 생태공원화’ 등 물리적인 성과물 조성사업과 동일시하고 있다. 그래서, 하드웨어 조성 위주의 토건사업에 집중했다.
그 결과, 외부인(도시민 체험객, 선진지 견학단, 공무원 시찰단 등)의 구경거리나 체험거리에 불과한 신원미상, 정체불명의 조악한 관광지, 공원 등이 전국 도처의 마을과 지역에 무차별적으로 산재되었다. 사실상 개점휴업, 유휴시설로 전락되는 사례가 다반사다.
또, 상부의 비전문 행정조직과 외부의 상업적 용역업체가 주도하는 예산시혜성 사업목적과 전시행정용 사업평가 위주의 ‘토건식, 관광용, 도시형 관제 농촌지역개발’ 사업시스템도 불안하다. 상부의 평가용, 외부의 소비용 ‘마을만들기’에 경도, 내부인(원주민, 귀농인, 출향인 등)의 생활과 생존을 보장하지 못한다. 지역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사회적이고 생태인 마을살이 또는 마을살리기’로 사업의 계획, 추진 시스템을 재정립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업을 책임질 운영주체가 불분명하거나 부재한 것은 실패의 핵심병인이다. 마을공동체사업 등 농촌지역개발사업의 성패는 곧 사업의 3대 책임주체인 ‘행정, 주민, 전문가’의 자세와 역량의 정도로 결정된다. 그런데, 행정은 사업에 임하는 진정성과 지원역량이 미흡한 편이다. 주민은 사업에 대한 이해도와 내발적 역량이 부족한 편이다. 이런 행정과 주민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지원하는 역할의 전문가 집단은 전문역량과 책임의식이 미비하다.
특히, 행정의 정책 오류 또는 실패가 가장 큰 문제이다. 농촌지역개발사업 문제의 가장 유력한 발원지는 해당정책을 개발하고 예산을 집행하는 ‘행정’이라 할 것이다. 사업의 권리와 책임을 온전히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식품부 등 중앙정부나 각급 지자체 등 행정은 농촌지역개발사업의 본질적, 궁극적 목적과 목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거나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순하고 단기적인 생활기반 및 환경 개선사업 위주의 개별단위 물리적 토건사업에 치중하고 있다. ‘농촌지역사회의 지속발전가능한 재생 및 농촌지역주민의 삶의 질 향상’이 이 사업의 목적과 목표가 아니던가.
더욱이 중앙이나 지역이나 행정 하부에서는 건축, 농정, 도시, 주택 등 각 부서마다 사업이 분산 추진되고 있다. ‘행정 칸막이’로 인한 비효율과 불통의 여지가 상존하는 구조에 빠져있는 것이다. 사업의 총괄·기획 기능과 전담부서가 부재한다는 말이다. 행정에서 위원장 등 일부 주민을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경우도 다발하기도 한다.심지어 행정편의를 우선하다 마을주민 간 갈등과 공동체 붕괴 빌미까지 제공하는 지경이다.
주민 등 사업운영주체 사이의 사회적 자본부터
지역주민들도 준비와 학습과 훈련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농민 등 농촌지역 주민’들이 미처 농촌지역개발사업의 사전 이해와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관련 사업에 선정되고 지원되는 경우가 흔하다. 마을이든, 지역이든 지역개발사업으로 성장하여 자립할 수 있으려면 최소 몇 년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그동안 주민은 사업에 대해 상부의 행정이나 외부의 지원조직과 협력하고 협업해서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학습하고 훈련해야 한다. 일회적이고 기계적인 주민역량강화 프로그램으로는 역부족이다.
심지어, 행정과 주민이 풀지 못하는 문제를 대신 해결해야할 ‘전문가’의 역할과 성과는 행정과 주민의 요구와 기대에 크게 미달한다. 더욱이 2004년 이후 단일사업 최대 100억원 규모의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이 시행되면서 농촌지역개발관련 전문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난립, 전문가의 개념과 관련 컨설팅시장이 교란되는 양상마저 목격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외부의 용역전문가들에 의뢰,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지역주민 스스로 마을사업의 기획과 관리와 운영을 책임질 수 있도록 주민전문가(마을사업가)부터 양성해야 한다. 주민전문가가 일종의 주민직영 자조·자치 중간지원조직이라는 공적 조직을 거점으로, 사설 전문용역시장이 수행한 제반업무를 거의 대체할 수있어야 한다.
이같은 법, 정책, 제도의 개선이나 전환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건 사회적 자본이 다. 무엇보다 농촌지역개발사업의 성공적 추진 및 성과를 위해서는 농촌지역사회 및 농촌마을공동체 안에 내재·축적된 사회적 자본의 여부 및 정도가 관건이다.
농촌지역사회 및 농촌마을공동체 내부에서 공동체 구성원끼리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고 연대하며.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나누는 한편, 공동체의 규범과 관계망을 형성, 강화함으로써 농촌지역 공동체의 문제 해결과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는 유무형의 자산으로서 ‘사회적 자본’의 생산과 축적이 마을 안에, 지역 내부에 선행되어야 한다.
‘지역주민 기본생활소득’과 ‘지역공동체사업 공동자치기금’으로
이처럼, 현행 지역단위 공모사업 보조금 지원방식의 지역개발 정책과 사업의 효과와 성과는 부진하고 불확실한 게 확실하다. 지방소멸 및 인구감소 위험 대응, 국토균형발전 취지 및 목적의 지역개발 또는 지역활성화라는 목적과 가치를 위한 전향적으로, 혁신적인 정책의 변화가 요구된다. 우선, 예산집행 패러다임부터 보다 효과적이고 합리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가령, 농촌 등 지역개발사업 관련 각 중앙부처의 해당예산의 조정 또는 재편을 통해 ‘지역주민 기본생활소득’ 직불제를 도입하자. 재원 조성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를 들어, 2023년도 전북 진안군의 농촌지역 개발 관련(농업·농촌 분야, 국토 및 지역개발 분야 등) 예산은 1,311억원으로 총예산 5,184억원의 25.5% 점유하고 있다. 농업·농촌 분야 1,165억원으로 총예산의 22.5%, 국토 및 지역개발 분야는 156억원우로 총예산의 3%를 차지한다.
2023년 4월말 현재 진안군 전체주민수는 24,664명으로 주민 1인당 월 300천원을 ‘지역주민 기본생활소득’으로 지급하면 연간 887억원이 예산이 소요된다. 이는 진안군 연간 총예산의 17.1%에 해당된다. 기존의 농촌지역개발 관련 예산과 대비하면 67.2% 정도이다.
지역주민 개인 단위로 지급되는 기본생활소득 외에, 지역(마을)공동체단위로 ‘지역공동체사업 공동자치기금’도 따로 조성, 지원할 필요가 있다. 마을공동체 복지(공동돌봄 등) 증진, 공동체 시설 유지·관리, 마을 경관·환경 보전·관리, 마을 역사·문화 자산 보전·관리 등에 공동기금이 쓰인다.
예를 들어, 진안군의 경우 기본생활소득 지급액의 10% 해당액을 별도 적립한다면, 887억원의 10% 해당액인 88억원이 책정된다. 이는 진안군 총예산의 1.7%, 농촌지역개발 관련예산의 6.7%에 불과한 금액이다. 개인별 기본생활소득과 지역공동체별 공동자치기금의 합계는 976억원으로 진안군 연간 총예산의 18.8% 정도이다.
지역 소멸을 막고 지역을 되살리기 위한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관련 정책이나 해당 사업이 없지 않다. 필요한 예산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단지, 행정부, 입법부 등의 주요 결정권자들이 지혜로운 결심과 용기있는 결단을 주저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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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기석(tourmali@hanmail.net)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 연구위원
경상국립대 창업대학원 6차산업학과 비전임교원
前 국회정책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