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직공직자가 퇴임 후 억대 연봉을 받으며 대기업에 불법 취업하는 ‘검은 거래’가 공정거래위원회에만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주요 권력기관들에 대한 전수 조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독립적 반부패기구를 신설해 공직윤리 점검 업무를 전담하게 해야 한다고도 요구했다.
시민단체 참여연대는 31일 논평에서 “공정위가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도 재벌 대기업의 불법행위는 애써 외면하거나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던 것은 고위 간부들이 퇴임 후 피관기관에 재취업하는 검은 거래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대기업과 대형 로펌 등은 공정위 퇴직 간부들에게 고액 연봉의 일자리를 마련해 주고 공정위는 이를 대가로 해당 업체들의 뒤를 봐주며 공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어 “재취업한 퇴직 공직자 수와 비율은 해마다 늘어 2017년에는 93.1%를 기록했다”며 “공정위 사례에 비추어 볼 때 조사·고발권을 가진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국세청 등 주요 권력기관과 그 곳의 퇴직자들에 대해서도 전수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직자윤리법상 취업제한 제도 부실...'관피아' 적폐 이제는 끊어내야 한다”
공직자윤리법상 취업제한제도가 부실하다며 이에 대한 개선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참여연대는 “재취업 시 심사를 받아야 하는 2급 이상 고위 퇴직자들 가운데 취업이 승인된 사례가 2015년 35.7%에서 2016년 72.1%로 급증했다”며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 자체가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또 “형식적으로 운영돼 온 공직자윤리위의 취업심사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며 “공직자윤리위에 외부 인사 참여를 늘려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추고 공직윤리 업무를 독립적 반부패기구에 맡겨 퇴직 공직자 취업제한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마지막으로 “세월호 참사의 원인 중 하나는 ‘해피아’(해수부+마피아)라고 일컫어진 민간기업과 관리·감독 기관 간 비리의 고리였다”며 “공정한 경제와 사회 질서에 해악을 미치는 비리의 고리를 더는 용인해선 안 된다. 관피아 적폐를 이제는 끊어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 퇴직 간부들이 대기업에 재취업할 수 있도록 도운 혐의를 받는 정재찬(62) 전 위원장이 구속됐다.
허경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30일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청구된 정 전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허 부장판사는 “범죄 혐의가 소명됐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인정된다”고 밝혔다. 같은 혐의를 받는 김학현(61) 전 공정위 부위원장도 함께 구속됐다.
퇴직자 '특혜 재취업' 정재찬 전 공정위원장-김학현 전 공정위 부위원장 구속
2014~2017년 공정위에 재직한 정 전 위원장과 김 전 부위원장은 퇴직자 명단을 관리하며 재취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민간 기업을 압박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이 파악한 불법 재취업 사례는 10건을 훌쩍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조직적인 취업 알선이 사무처장→부위원장→위원장으로 보고됐다고 의심하고 있다.
김 전 부위원장은 이밖에 2013년 공정위에서 한국공정경쟁연합회 회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스스로 취업 심사를 제대로 받지 않은 공직자윤리법 위반 혐의와 대기업 계열사에 자녀 채용을 청탁한 뇌물 수수 혐의도 받고 있다.
함께 영장이 청구된 신영선(57) 전 부위원장은 구속을 피했다. 허 부장판사는 “피의사실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고, 현재까지 수사 경과 등에 비춰 구속 사유 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신 전 부위원장은 2014~2017년 공정위 사무처장을 지냈다.
정재찬 전 공정거래위원장 등은 4급 이상 퇴직자 명단을 관리하며 퇴직자 10여명을 공정위 관련 단체나 민간 기업 등에 재취업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혐의 등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