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 정종석 발행인
  • 승인 2016.06.28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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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노무현식 개혁도 실패..새 '시대정신' 읽어야

 
지난 1997년 외환위기 후 집권에 성공한 김대중 대통령은 재벌개혁에 나선다. 김대중 정부는 취임 초기에 "우리나라에 재벌이란 말이 더 이상 없도록 하겠다"며 강도 높은 재벌개혁을 공언했다. 이어 2003년 노무현 정부도 재벌개혁을 외치며 출범했다. 하지만 두 정권은 정치적 면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재벌개혁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소득과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들 두 정권의 경제개혁은 사실상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대표적인 실패 사례는 재벌개혁의 상징인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다. 출총제는 30대 재벌그룹이 회사 자산의 일정액 이상을 사용해서 다른 회사의 주식을 매입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이들의 ‘문어발식 확장’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다. 5공화국 전두환 정권 때 공정거래법에 규정한 출총제 규정을 폐지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국정을 장악한 때인 1998년 2월이다. 이른바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의 위기극복의 명분으로 삼은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개혁적인 정권이 재벌개혁을 원위치시켜 놓은 것이다.
 
출총제 폐지로 인한 문제점이 다시 불거지자 김대중 정권은 2001년 4월 이 규정을 부활시켰다. 하지만 그 해 11월 출총제의 예외를 대폭 인정함으로써 이 규정을 사실상 무력화시켰다. '경제하기 어렵다'는 재벌들의 압력을 못 견딘 탓이다. 이에 대해 노무현 당시 민주당 상임고문은 "정부가 재벌과 한나라당의 집요한 공세에 굴복했다"는 비판성명을 냈다. 하지만 뒤 이어 등장한 노무현 정부의 재벌개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대 정권, 취임 초 재벌개혁 외치다가 재벌압력 밀려서 슬그머니 꼬리 빼

 
해방 후 우리나라 정권들은 이상하게도 재벌개혁만큼은 쉽사리 성공하지 못했다. 정치개혁에는 나름대로 과감한 제스처를 취했으면서도 재벌개혁에는 항상 소극적인 편이었다. 재벌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것이 정치권의 오래된 모습이었을까. 취임 초 입버릇처럼 재벌개혁을 외치다가도 재벌들의 압력에 밀려서 슬그머니 꼬리를 빼고 정치개혁마저 실패로 돌아간 것이 우리나라 정권들의 흑역사이었다.
 
지난 20일부터 사흘간 이어진 20대 국회 첫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여야 3당은 일제히 경제,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촉구하며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행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는 “경제민주화를 통한 포용적 성장을 바탕으로 경제양극화를 해소하자”고 주창했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으로 생긴 소득격차를 해소해 내수를 확보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재벌 대기업에 호의적이었던 새누리당도 재벌개혁 필요성 자체에는 동의하는 분위기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여당 원내대표로는 이례적으로 재벌의 불법·편법적 경영권 세습 방지를 강조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도 재벌 대기업의 하청업체 기득권 포기 등을 통해 재벌을 개혁하자고 제안했다. 안 대표는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면 우리 공동체는 무너진다”며 “국회에서 로드맵을 마련해 본격적으로 논의하자”고 말했다.
 
여야 3당 대표가 새 국회 첫 대표연설에서 재벌개혁을 최대 과제로 제시한 만큼 20대 국회에서 재계가 개혁입법을 피해가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또 이러한 움직임이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재계는 회의적인 반응이다. 국내 대기업 관계자들은 개혁이나 분배가 필요하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일부 기업의 사례를 대기업 전반의 문제처럼 몰아붙여 비판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한다.
 

재벌들 "저성장시대에 경제활성화 뒤로 하고 분배논의는 앞뒤가 바뀐 것” 주장

 
현재 경제상황을 외면한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내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지난 수십년간 한국 경제를 발전시켜 온 것은 대기업 중심의 경제체제다”며 “특히 수출감소와 내수부진이 지속되는 저성장시대에 경제활성화를 뒤로 하고 분배를 논한다는 것은 앞뒤가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물론 3당 대표의 연설은 내년 말로 다가온 차기 대통령선거에서 정권획득을 위해 서민의 표를 노린 ‘재벌 손보기’ 행보라는 측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내년 12월 20일로 예정된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약 1년 6개월 앞두고 여야가 각각 정권 재창출과 정권 탈환을 위해 저마다 민심잡기에 나설 것이다. 앞으로는 진보 진영이든, 보수 진영이든 유권자중 중도층을 잡지 않고는 대권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여야가 모두 민생을 먼저 챙기는 행보를 하는 것도 모두 정권장악을 위한 것일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공감하는 국민들이 많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법 테두리 안에서 책임경영을 하는 성실한 기업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재벌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편견과 선입견을 갖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 굴지의 대표적인 재벌가에서 보라는 듯 불법 및 편법 승계가 판치고 있다.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재벌 2, 3세들이 편법 상속, 불법적 경영권 세습을 통해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또 탈법, 편법적인 부의 세습,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불법적 부의 증식, 무분별한 사업확장으로 인한 골목 상권 침해는 반드시 규제되어야 할 대기업의 비정상적 행태다.
 
경제민주화를 외치며 등장한 박근혜 정부 역시 집권 이후 재벌개혁을 등한시했다. 경제개혁연구소가 지난 해 8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집권 3년차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 이행은 42%에 그쳤다. '경영진의 불법행위에 대한 집단소송제 도입',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행위를 규제할 공정거래법 개정', '신규 순환출자 금지 등 재벌 지배구조 개선' 등은 아예 진척이 없다. "국가경제가 '재벌의 인질'이 됐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내년 대선 시대정신이 비로 재벌개혁"..여야 대선 후보들, 꼭 유념해야

 
경제력이 재벌에 집중되면서 국가경제의 재벌 의존도는 더 커졌고, 이에 정치권력은 마냥 재벌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때만 되면 ‘경제살리기’를 명분으로 재벌들을 적극 비호했던 역대 정부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으며 철저한 사회적 감시가 필요하다는데 공감하는 국민들이 많다. 내년 대선의 시대정신이 바로 재벌개혁에 있다고 하는 주장은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고려가 멸망한 것도 조선이 나라를 일제에 넘겨준 근본적인 배경에는 모두 국부의 편재와 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자리한다. 노비 뿐 아니라 토지까지 거의 다 권문세족의 수중에 들어가서 서민경제는 물론이고 국가경제까지 마비될 정도가 된 것이 고려 말과 조선 말의 경제사회상이었다. 지금의 양극화 현상이 그 시대에도 극심했던 셈이다.
 
다음 정권은 역대 정권의 실패를 거울로 삼아서 집권하자마자 처음부터 재벌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타협의 여지를 두지 않고 과감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정치개혁을 세게 하고 경제개혁을 약하게 하는 역대 정권들과 달리, 새 정권은 초반부터 정밀한 설계도 아래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초(超) 고강도’로 전개, 경제적 지배세력이 기득권을 무기삼아 개혁을 무산시킬 여유를 주지 않아야 한다.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여야 유력 대선후보들에게 이 점을 유념할 것을 강력히 당부한다.

<필자 소개>

 
   
 
   정 종 석
 (elton2023@hanmail.net ) 
 
언론인/자유기고가(언론학박사)
한국언론인연합회 부회장
(전)세종대/가천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전) 동아TV 대표이사 사장
(전) 서울신문 베이징특파원/경제과학부장/정치부장/편집부국장
 
* 저서 : 언론국제화의 마피아들(공저/나남,1995년)
* 논문 : 디지털 다채널 시대 - 채널브랜드 이미지가 광고효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박사학위, 세종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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