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휘갑칼럼>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 놓아도 한 가지 음식만 먹으면 편식이다. 우리 역사교육이 바로 이 꼴이다. 현재 고등학교의 한국사 교과서는 무려 8가지나 있다. 그야말로 역사교과서의 진수성찬(?)이다. 검인정교과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바로 역사교육의 다양성을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는 국정교과서 1종뿐이었다가 2014년부터 검인정 역사교과서 체제로 바뀌면서 무려 8종이 쏟아져 나왔다. 각 고등학교는 이 8종중에서 하나만을 선택해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따라서 학생들은 다른 7종의 교과서 내용은 알 수도 없고 오로지 자신이 배운 역사가 전부인 줄 안다. 여러 종류의 검인정 역사교과서가 나올수록 오히려 역사교육이 편협해지고 왜곡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다양한 검정교과서가 학생들의 역사인식을 풍성하게 한다는 주장은 얼핏 그럴듯하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허구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교과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독립 운동가이고, 자유민주주의국가를 건설한 대통령이라고 기술 한다. 반면에 어떤 역사책은 이승만 대통령의 독립운동이나 건국대통령으로서의 공적은 모두 빼버리고, 오직 독재자, 부정선거의 원흉, 심지어 친일파앞잡이 등으로 기술한다. 어느 교과서는 유관순열사를 대표적 독립운동가로 기술하는데, 아예 이름조차 올리지 않은 교과서도 있었다. 천안함 폭침도 누구 소행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심지어 대한민국의 건국을 빼버린 교과서도 있다. 역사교과서가 이런 식으로 다양하다보면 어떤 교과서를 채택했느냐에 따라 학생들이 우리나라 건국대통령도 모르고 유관순 열사가 누군지도 모르고 학교를 졸업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기게 된다.
검인정교과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교과서의 다양성을 장점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자기들과 견해를 달리하는 검정교과서는 기를 쓰고 반대한다. 우파적 시각에서 기술됐다는 이유로 교학사가 발행한 한국사교과서 채택을 극렬하게 반대한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이들의 노림수는 학생들을 위한 다양성이 아니라 자기들 생각대로 학생들에게 역사인식을 심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결국 전국 2300여개 고등학교 중에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겨우 2개 학교만 남게 됐다.
수학이나 물리 생물 등 정답이 하나인 교과목은 교과서 저자의 기술방법에 차이가 있더라도 교육내용은 같다. 이런 과목은 검인정교과서가 더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교과서는 기술방법에 따라 내용이 확연히 다르다. 애국자를 역적으로 만들 수도 있고, 역적을 애국자로 둔갑시킬 수도 있다.
다양한 역사교과서는 국토가 넓어 지역별로 역사와 전통이 크게 차이 나고, 국민의 이념적 갈등이 상대적으로 적은 국가에서는 별 문제 될 게 없다. 그러나 우리처럼 국민통합이 절실한 경우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특정 정치이념으로 과거사를 재단하거나 정치적 견해에 따라 역사적 사실의 해석이나 평가를 꿰맞추는 것은 다양성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학생들에게 왜곡된 역사를 편식시켜 역사와 국가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혼란시킬 뿐이다. 역사교과서의 다양성은 대한민국헌법 내에서 대한민국의 국민 된 입장에서 다양함이어야한다. 좌우의 이념이나 역사관의 차이도 이 테두리 내에서 기술돼야 할 것이다. 한국사가 진정한 대한민국 국사여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교과서에서 문제되는 부분은 주로 근 현대사 부분이다. 역사해석에 이해관계가 걸린 사람들이 많고, 한편 이념적이나 감성적으로 편향된 사람들은 주장을 쉽사리 굽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국민으로서 함께 대한민국 역사를 기술한다는데 동의한다면 접점이 있다.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사람은 대한민국역사를 쓸 자격이 없다.
어른들의 이념에 따른 상이한 역사인식을 학생들에게까지 대물림해서는 안 된다. 역사인식에 편차가 크더라도 서로가 토론하고 상의해서 공통분모를 찾아야 한다. 어른들이 못하겠다고 애들에게 떠밀면 안 된다. 공통분모를 반영해 국정교과서로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이승만 대통령은 독립운동가와 건국대통령으로서 이러이러한 공적을 남겼으나 반면 3.15부정선거 등 과실도 있었다라고 기술하면 될 것이다.
왜 역사교육을 하는가.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과 국가관을 심어주고,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키우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역사교과서는 대한민국 헌법정신에 부합되고, 역사적 사실의 기록을 넘어 국가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을 함축하고 있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검인정 역사교과서는 역사의 편식과 왜곡을 가져올 뿐 역사교육 목적에 부합하기 어렵다. 국정교과서체제로 가야한다.
#이 칼럼은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의 '선사연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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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초빙교수
(전)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원장
(전) 공정거래위원회 정책국장, 사무처장, 상임위원
(전) 경제기획원·통계청 과장/국장, The World Bank Econom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