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왕과 대통령은 같은 지도자.. 태평성대 치세-덕목 참고해야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논어 안연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공자가 말하기를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 즉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어버이는 어버이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고 대답했다. 간단하지만 이 여덟 글자는 그야말로 ‘멋진 군주론’의 정수를 담고 있다. 그러나 고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여기에 해당하는 군주를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옛날 임금들은 임금답지 못한 모습과 행동을 보이면 거센 비판을 받아야 했다. 임금이 임금다운 것, 그것은 나라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 중의 원칙이었다. 동시에 임금으로 태어나 임금 자리에 앉아 임금 노릇을 하는 사람의 의무이여 책임이자 곧 사명이었다. 지금은 임금이 없는 시대이다. 왕조시대 잘났던 임금을 추억하는 것은 무모한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임금’이라는 고유명사를 지칭하는 대상은 이미 없어졌다 하더라도 ‘임금이나 다름없는’,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할 지도자는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한다. 임금이 사라졌다고 해서 리더와 리더십이 실종한 것은 아닐 것이다.
리더십은 리더의 도덕성과 품성 또는 현실적인 문제 해결능력으로 대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리더십은 리더의 도덕성과 품성을 중시하느냐, 아니면 현실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중시하느냐로 대별한다. 예컨대 인의와 예로써 장수들을 감화시키며 무리의 구심점을 이루었던 삼국지의 유비와, 엄격한 상벌(賞罰)과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개인적 역량에 힘입어 삼국을 통일했던 조조의 리더십이 그렇다. 배우고 생각하며 실천하는 모습의 도덕적 지도자를 칭송하는 이황의 성왕론(聖王論)과,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에 능한 군주를 옹호하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君主論)의 차이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만 현대의 지식정보화 사회를 맞이해서 리더에게 국가적 특성과 외부환경의 변화를 감안한 현명한 대처 능력이 더욱 더 필요하다.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각 영역이 끊임없이 변화와 발전,분화를 거듭한 까닭이다, 지금도 정치판에서는 악화한 경제상황을 놓고 민생이 파탄났다는 여아 간의 공방이 오간다. 노무현 대통령 말기인 지난 2007년 2월에도 그랬다. 당시 노 대통령은 '민생파탄' 주장에 대해 "무조건 노 대통령 때문에 쫄딱 망했다고 하는데 앞으로 국민들에게도 쓴소리를 하겠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민생파탄이라고 얘기하는데 파탄이 아닌 때는 언제였으며, 언제보다 얼마나 나빠졌냐 (국민들에게) 개별적으로 물어보고 싶다"고 되받아쳤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을 제왕의 도리에 빗대 '간신배를 멀리하라. 인의 장막을 거둬라'고 하는데 오늘날 군왕 시대의 논리가 맞냐"면서 "직언을 받을 사람은 왕인데 제일 사람은 국민이다. 시민에게 직언할 수 있어야 언론의 도리"라고 덧붙였다. 말하자면 노대통령은 국정의 모든 책임을 군왕에게 돌리는 이른바 군왕책임론에 반기를 든 셈이다. 언론에게 시민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당부성 주문까지도 했다.
여야 바뀌어 공수(攻守) 위치 교대
세월이 흘러서 벌써 8년이 지났다. 지금은 이명박 정권을 거쳐서 박근혜 정권이다. 여당이 야당되고 야당이 여당된 지 8년이 흘렀다. 대통령이 나오고 집권여당이 되면 공격자에서 수비자로 포지션이 바뀐다. 정권을 잡은 덕분에 국정에 대한 책임을 지는 탓이다. 여야가 바뀜에 따라 공격자와 방어자, 즉 공수(攻守)의 위치가 뒤바뀌는 것이다. 노 대통령 당시 경제파탄 논란은 지금 주어만 바꾸면 그때나 지금이나 여야 간에 누가 누군지 모를 정도로 상황이 흡사하다. 그래서 ‘역사가 돌고 돈다’고 하는 지도 모른다.
메르스 파동으로 국정혼란이 거듭되고 있다. 지난 해 세월호 사태라는 풍랑을 겪은 국민들은 왜 똑같은 국가적 재난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냐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당국, 그리고 여야 정치권을 한데 묶어서 원망하며 비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속이 많이 상할 것이다. 사태 초기부터 정확한 상황파악과 대처방안을 보고받았더라면 지금처럼 방미까지 연기하며 곤경을 겪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또 대통령 자신이 미리 선제적 대응조치를 내릴 수도 있었을 텐테 그렇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되돌아 봐야 한다.
대통령의 타고난 업무스타일 때문인지 아니면 청와대 비서실 내부의 소통시스템 문제인 지를 찬찬히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 원래 왕조시대에도 만사를 왕이 혼자 챙기는 만기친람(萬機親覽) 체제 아래서는 신하들이 왕이 시키는 일만 할 뿐,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일을 하지 않는 법이다. 메르스사태 초기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을 따질 것은 따지고, 정책실패 사례연구(case study)를 해서 앞으로 똑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군왕 품 넓고 신하 지혜로웠던 시절엔 나라 부강
문득 지난 해 중장년 시청자들을 열광케 했던 KBS 드라마 '정도전' 최종회가 생각난다. "왕은 하늘이 내리지만 재상은 백성이 낸다. 그래서 재상이 다스리는 나라는 왕이 다스리는 나라보다 백성에 더 가깝고, 더 이롭고 더 안전한 것이다." 이방원(후일 태종)에 의해 죽음을 맞는 정도전의 모습은 사뭇 비장했다. 하지만 그의 말까지 옳은 지는 잘 모른다. 학계에는 조선왕조 500년 역사가 민본주의에 입각한 신권(臣權)정치가 있었기에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다는 해석도 있다. 반면 왕권(王權)과 신권의 책임소재 불분명이 조선을 약체국가로 전락케 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 논란은 현세에도 지속되고 있다.
군왕론이냐 재상론이냐.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지금은 민주화-산업화를 넘어서 정교하고 복잡한 정보화 시대이다. 왕조시대에 세월호나 메르스 사태와 같은 국가적 위기를 겪었다면 현재보다 더 위기를 맞았을 것이다. 왕조시대에는 그나마 난파선을 구조할 장비도 없었고, 현대적 방역체계도 전혀 갖춰져 있지 않았던 때인 탓이다. 다만 우리는 역사에서 분명히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군왕의 품이 넓고 신하들이 지혜로웠던 시절에는 나라가 부강하고 백성이 편안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시대가 달라졌지만 군왕이나 대통령이나 국가지도자 또는 리더라는 측면에서는 같다. 비록 우리가 왕조시대를 사는 것은 아닐 지라도 태평성대 시절 군왕의 치세와 덕목을 참고하는 것은 뭔가 분명히 교훈을 줄 것이다.
<필자 소개>
금융소비자뉴스 발행인(언론학 박사)
한국언론인연합회 임원
(전)세종대/가천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전) 동아TV 대표이사 사장
(전) 서울신문 베이징특파원/경제과학부장/정치부장/편집부국장
(전) 서울신문 베이징특파원/경제과학부장/정치부장/편집부국장
* 저서 : 언론국제화의 마피아들(공저/나남,1995년)
* 논문 : 디지털 다채널 시대 - 채널브랜드 이미지가 광고효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박사학위, 세종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 논문 : 디지털 다채널 시대 - 채널브랜드 이미지가 광고효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박사학위, 세종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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