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한 사람과 책임지는 사람
잘못한 사람과 책임지는 사람
  • 조휘갑
  • 승인 2014.10.09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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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갑칼럼>우리나라에서는 대형 참사가 날 때마다 사건에 대한 민·형사적 책임보다는 정치적, 도의적 책임자를 속죄양으로 만드는 일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정치권이 앞장서고 언론 사회단체 사이비전문가까지 가세하여 사건을 이런 식으로 몰아간다. 이래서 본질규명과 재발방지책수립은 뒷전으로 밀리고 사고 낸 사람과 책임지는 사람이 따로따로이기 일쑤다.

  세월호 참사는 직업윤리 붕괴가 문제의 핵심이다. 사고 발생이나 구조 부실은 모두 최소한의 직업윤리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고책임자들에게 민
·
형사 책임을 묻는 것은 검찰의 몫이다. 재판결과에 따라 책임을 질 것이다. 검찰수사가 못 미더울 때는 특별검사가 조사한다. 재발방지대책은 각 부문별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과학적인 원인조사와 제도 및 운영상의 모든 문제점을 하나하나 밝혀내는 조사를 거쳐 수립한다. 선진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정치권이 끼어들어 오로지 정치적으로 책임질 자를 찾는데 온힘을 쏟는다. 그 대상도 주로 장관 등 고위직에 있는 사람을 겨냥한다. 높은 사람을 공격할수록 뉴스를 잘 타고 정치 공세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장관이 사표를 내면 다음엔 대통령 책임이라고 한다. 대형 사건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따지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무턱대고 책임질 지위를 높이다보면 왜 책임지는지 조차 모호하게 된다.

  그간 정치권은 세월호참사의 책임을 물어 청와대 안보실장, 안전행정부장관 교육부장관 그리고 경찰청장을 사임하게 했고 국무총리와 해수부 장관을 사임 직전까지 몰고 갔다.

  책임을 제대로 졌다면 책임지고 물러나는 사람은 당연히 반성을 해야 한다. “만약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러나 물러나는 사람이 “나 아닌 누가 이 자리에 있었더라도 사고가 터졌을 것이다”, “내가 재수 없이 당했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책임질 사람을 잘못 고른 것이다. 속죄양을 만들어 억지로 책임을 지우고 사건을 마무리하는 것은 미개한 짓이다. 정작 책임진 사람은 반성할 것이 없고, 반성해야 할 사람들은 책임에서 벗어난다면 공정하지 않은 사회다.

  이번 세월호참사를 책임진 장관들은 어떤 반성을 할까?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 장관은 그 자리에 임명된 지 겨우 한두 달에 불과했다. 아직 업무 파악도 제대로 안 됐을 때다. 사임시키기보다는 사고를 제대로 수습하고 철저한 재발방지대책 수립의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더 바람직했다는 생각이다. 해양부장관은 팽목항을 지키며 유족을 위로한 공로로 유임됐으나 안전행정부장관과 교육부장관은 정치공세 속에 정신없이 물러났다. 이들은 시간을 되돌리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으리라고 반성할까? 자기가 잘못했기보다는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누군가 세월호 참사의 총대를 메야하는데 그것이 자기였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인재들을 아끼지 못하고 소모품처럼 취급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한편 장관의 사표를 일선 실무자들은 면죄부로 착각할 수 있다. 책임지고 물러나는 사람은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아래 사람은 책임이 없다”며 겉으로는 대인(大人)다운 말을 한다. 그러나 현장의 관리 감독과 확인 점검 업무는 대부분 일선 소관이다. 인
·허가도 국·
과장 전결일 경우가 많다. 거의 모든 일이 실무선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대부분의 책임은 일선실무자들에게 있다. 그럼에도 책임이 자꾸 윗선으로 올라가니 중간관리 층을 포함한 일선 실무자들은 나와는 관계없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큰 사고도 하나같이 일선 현장의 사소한 잘못에서 비롯된다. 세월호도 누군가 ‘탈출하라’는 소리만 질렀어도 참사까지는 안 됐을 것이다.

  분명한 책임과 신상필벌은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사건의 정치화가 지나치다보면 결국 책임이 모호해지고 사회에 공정성이 무너진다. 책임을 묻고 진상규명을 하는 것은 반성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만들어 국가발전의 밑거름으로 삼자는 것이다. 수많은 생명이 희생된 대참사를 교훈삼지 못하고 터무니없는 의혹이나 제기하며 정치적 책임을 씌울 속죄양을 만드는데 집착하는 한 선진사회는 꿈도 꿀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 이러한 잘못된 행태에 휩쓸리거나 관망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이 칼럼은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의 '선사연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필자소개

     조휘갑 ( wkapcho@hanmail.net ) 
    사단법인 선진사회만들기연대 이사장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초빙교수

    (전)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원장

    (전) 공정거래위원회 정책국장, 사무처장, 상임위원

    
(전) 경제기획원·통계청 과장/국장, The World Bank 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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