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와 한글
AI 시대와 한글
  • 신부용
  • 승인 2024.06.04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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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용 칼럼] 인공지능(AI)이란 종전의 컴퓨터 기술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이 만든 공식(프로그램)에 의해 해답을 찾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처럼 학습하고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추리하고 논증해 해답을 찾고 결정을 내리는 능력을 말합니다.

AI가 최근에는 보고 듣고 기억한 내용을 글은 물론 말과 그림이나 동영상으로 표현하는 기능까지 갖출 정도로 진보했습니다. 상당수 분야에서 이미 인간을 초월했고, 로봇이 자기들끼리 모의해 인간에게 도전하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AI는 엄청난 자본과 기술, 그리고 전문 인력에 의해 개발된 후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고 있으나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 같은 거대 미국 기술 기업들만의 경쟁이 되고 있습니다. 일개 민간 기업이라고 얕봐선 안 됩니다.

미국의 시가 총액 2위 기업인 애플이 우리나라 증시 시가 총액의 1.5배가량이라니 이들 기업의 위력을 쉬이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중국이 막강한 국력을 동원해 그 뒤를 쫓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나머지 국가들은 이들이 이룩해 놓은 기술을 따라 하거나 응용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 후발 주자들의 경쟁에서는 미국과 언어가 같거나 비슷한 라틴계 나라들이 유리합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로 자타가 인정하는 한글을 갖고 있지만 우리말이 영어와 달라 AI 주도권 경쟁에서 밀리고 있습니다.

AI가 인간을 흉내 내는 기술인데도 인간의 말소리를 가장 잘 모사하는 한글은 아직 AI 세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마도 AI 개발자들이 한글의 말소리 모사 기능을 알지 못했거나, 한글의 기능이 이들의 주의를 끌 만큼의 매력을 갖추지 못한 것이 원인이 아닌가 합니다.

한글의 말소리 모사 기능이 다른 문자에 비해 우수한 것은 사실이나 과학기술에 적용할 만큼 정교하지는 못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한 예로 p와 f, r과 l 등을 구별하지 못하는 결함이 있는 문자를 무작정 자랑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한글의 용도를 높이려면 무엇보다 그 기능을 훈민정음 수준으로 복귀시켜 놓는 게 선결 과제입니다. 그렇다고 훈민정음으로 돌아가자고 할 수도 없습니다. 다행히 이 문제는 이 연재의 6번과 7번 글에서 제안한 ‘한글20’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한글20은 훈민정음의 기본 자음과 모음을 각각 10개로 하고, 이들의 합자를 무제한 허용함으로써 세상의 모든 발음을 변별력 있게 표현할 수 있는 문자 체제입니다. 기본 자음 10개는 주시경 선생의 발상이고, 기본 모음 10개는 필자의 주장입니다. 공교롭게도 기본 자모가 10개씩이므로 각각 0~9까지 번호를 배정하면 모든 인간의 말소리를 0~9까지의 숫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훈민정음 시대에 쓰였던 ‘ᄛᆃ’는 [40.56.]으로 표기돼 영어 ‘row’의 발음과 일치하고, ‘ᄒᅶ’는 중국어 ‘好’의 발음이며 [9.25.]으로 씁니다. 여기서 자음 4, 0, 9는 각각 ㄹ, ㅇ, ㅎ이며 모음 2, 5, 6은 각각 ㅏ, ㅗ, ㅜ에 해당합니다. 모음은 앞뒤에 ‘.’을 찍어 구분했습니다.

이런 수치 표현은 유니코드보다 간단할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발음을 숫자로 대치할 수 있으므로 발음의 표준화 등 언어기술면에서 많은 활용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현존하는 293개의 문자는 모두 특정 언어의 말소리를 표기하는 기술들입니다.

말소리는 모두 음파로 이뤄지기 때문에 음파를 모사하는 글자가 하나만 있으면 이들 293개의 문자를 모두 대체할 수 있습니다. 한글20이 바로 음파를 모사하는 글자입니다.

한글20이 AI 개발 단계에서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앞으로 여러모로 용도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한 가지 예는 모든 언어의 어휘를 0~9까지의 숫자로 표기할 수 있으므로 이들을 하나의 데이터베이스에 수록해 놓으면 발음이나 발음표기로 모든 언어의 어휘를 검색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전이 하나로 통합되는 것입니다.

또한 가지각색의 문자 대신 숫자로 표기함으로써 저장량을 크게 줄이고 계산 시간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마침 AI가 ‘전기 먹는 하마’로 드러나면서 각국은 발전 용량과 송전 시설을 대폭 보강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챗GPT4는 매개변수를 1조 개 이상 사용하는 반면 이보다 한 단계 발전된 챗GPT-4o(‘4 옴니’)는 100억~1,000억 개만 쓴다지만 AI 이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 전력 수요는 어마어마하게 커질 것입니다. 이에 따른 에너지 절약 압박이 한글20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깁니다.

앞으로 AI는 우리 생활에 더욱 폭넓고 깊게 파고들 것이고, 그에 비례해 인간과의 대화도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만개하는 AI 시대를 맞아 모든 언어의 말소리를 모사하는 한글20의 기능이 크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이 칼럼은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의 '선사연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신부용 (shinbuyong@kaist.ac.kr)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 운영이사

필자는 서울공대 토목공학과를 나와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교통공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유치과학자로 귀국하여 한국과학기술원(KIST)에서 교통연구부를 창설하고 이를
교통개발연구원으로 발전시켜 부원장과 원장직을 역임하며 기틀을 잡았습니다.
퇴임후에는 (주)교통환경연구원을 설립하여 운영하였고 KAIST에서 교통공학을 강의하는 한편
한글공학분야를 개척하여 IT 융합연구소 겸직교수로서 한글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저서로는 우리나라 교통정책, 지방자치단체의 교통정책, 도로위의 과학, 신도시 이렇게 만들자,
대안없는 대안 원자력 발전,
중국인보다 빨리 배우는 신한위 학습법 등 여럿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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