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갑 칼럼] 2022년 한국의 봄은 어떤 이에게는 잔인한 계절이 되었고, 어떤 이에게는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봄날이 되었다. 선거를 전후하여 선거에 대해 대화를 나누어 보면 대답을 다 듣지 않아도 그 친구가 무슨 말을 할지 예측이 되었고, 그 예측이 어긋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TV 시사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이다. 출연자들의 발언 내용도 예측이 되었고, 그 예측 역시 틀릴 경우가 많지 않았다. 왜 그런가?
인간은 자신의 과거 직간접 경험을 통해 신념 체계를 구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를 논하기 때문이다. 소위 가방끈이 긴 사람, 축적된 지식이 많을수록 어떤 주제에 대해서나 즉문즉답하듯이 거침없이 바로 해답을 내놓는다. 그런데 궁금하다.
2020년대 지금 한국 사회가 과거의 경험을 통해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해답을 구해도 괜찮은 것인가? 인간의 신념 체계 구성에서 20대의 경험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한다. 그렇다면 40대 이상 연령층의 신념 체계에 영향을 미친 시기는 20세기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확인되다시피 한국 정치에 대해 상반된 신념체계를 드러낸 5, 60대 연령층의 20대는 1970년대와 80년대이다.
1970년대와 80년대는 독재체제 하에서 민주화를 이루고, 농업 사회에서 벗어나 근대 산업 사회로 진입하는 것이 과제인 시기였다. 이 시기 한국은 미국과 서유럽의 사례를 열심히 따라 배웠고, 소련과 북한의 사례를 우리의 미래로 설정한 이도 있었다.
그리고 가까운 일본의 경제 성장 성공 사례를 벤치 마칭하기 바쁜 시기였다. 이때의 화두는 “다른 나라는 어떻게 했지?”였다. 이 시기를 거쳐 1990년대에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룩하였다.
50, 60대와 대화를 나누면 이들의 말속에 1970년대와 80년대의 경험이 곳곳에서 배어 있다. 그리고 그들이 이룩한 민주화와 산업화에 대한 자부심도 동시에 묻어 나온다. 이들 세대의 자부심을 누구도 탓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한국 역사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기 때문이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긴 모든 것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하자
이번 선거에서 20대 연령층 남자는 40, 50대 연령층의 선택과 20대 연령층 여자는 60대 이상 연령층의 선택과 각기 다른 선택을 했다. 선거 후 50, 60대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20대들을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 세대를 비난하는 이들까지 있다.
이들 20대 연령층은 지금 21세기에 20대 청춘을 보내고 있다. 한국의 21세기는 20세기와 다르다. 한국의 양대 정당을 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으로 나누는 것이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이들 양대 정당을 구태여 진보, 보수 정당으로 나눈다면, 지금의 20, 30대 연령층은 이 양당이 집권하는 시기에 청년으로 살았다.
21세기 한국 정치는 보다 나은 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고 이를 이루어나간 시기였지만 타도해야 할 군부 독재 권력이 존재하는 시기는 아니었다.
그리고 한국 경제는 선진국 반열에 진입하고 있고, 한류로 상징되는 한국의 문화는 세계 사람들이 공유하는 보편문화가 되고 있는 시기이다. 이처럼 2, 30대 연령층과 40대 이상 연령층이 성장 과정에서 경험한 한국 역사는 차이가 있다. 이 차이가 이들의 신념체계를 다르게 형성한 것이다.
대통령 선거 전 ‘20대와 30대에 듣는다.’라는 컨셉트로 젊은 대학원생과 집담회를 가진 바 있다. 이 중 한 20대 여학생은 21세기의 한국 사회에서 외국은 더 이상 동경의 대상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여러 지표가 20세기와 다르기에 한국의 발전 모델을 구태여 외국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2, 30대의 주장은 당당한 데 그치지 않고 어려운 과제를 우리 사회에 던지고 있다.
이제 한국 사회는 20세기처럼 다른 나라가 어떻게 했는가에서 해답을 찾을 시기는 지났다. 우리 스스로가 해답을 찾아 떠나는 외롭고 힘든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이 여정은 지금까지 우리가 금기시 여긴 것은 물론 당연하게 여긴 모든 것에 대해 ‘왜?’ ‘과연 그러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서 출발하고, 세계와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미래상을 제시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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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진 갑(전 경기대 교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