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은 노른자위 땅을 얻고 한전은 '돈벼락'을 맞았다. 또 서울시는 수천억원대의 세금수입을, 정부는 공기업의 재무구조 개선효과를 각각 보게 됐다. 그러나 소액주주를 비롯한 투자자들은 10% 안팎의 손실로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인수가 발표된 뒤 이틀간 현대차 시가총액은 5조원 증발했다. 현대차 컨소시엄이 써 낸 금액이 감정가의 3배에 해당했기에 시장이 깜짝 놀란 것도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실제 10조원이면 연산 30만대 능력의 완성차공장 10개를 지을 만한 돈이다.
한전부지 입찰을 앞두고 시장에서는 “현대차그룹이 낙찰을 받지 못하면 임원 몇 명은 문책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정몽구 회장의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지난 18일 현대차그룹이 한전 터를 낙찰받은 뒤에도 똑같은 ‘문책’ 이야기가 떠돌았다. 이번에는 “너무 높은 가격을 써냈다”는 게 이유다.
정 회장은 19일 임원회의에서 “다들 고생했다”며 이런 억측을 일축했다. 하지만 현대차의 한전 터 인수 과정을 놓고 무성히 오간 말의 의미를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다.세계 자동차업게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친환경차 개발, 자동차 연비 개선, 원-엔 환율 변수에 대한 대처 등 현대차는 큰돈을 써야 할 곳이 많다. 인터넷에선 “한전 터를 사는 돈이면 자동차회사 5개를 살 수 있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도 다 확보할 수 있다”거나 “터뿐만 아니라 한국전력까지 사는 걸로 착각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돌았다.
그러나 현대차가 더 걱정해야 할 것은 '불통 논란'이 아닐까 싶다. 현대차그룹은 ‘오너의 결단’과 ‘회장님의 뚝심’이 경영의 핵심 동력으로 작동한다.따라서 그룹의 불투명한 의사결정에 대한 우려가 이전보다 더 커졌다는 우려이다. 만일 상식을 넘어선 입찰금액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뤄졌는지가 잘 알려지지 않은 점은 장기적으로 현대차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나라 땅을 사는 것이라 마음이 가벼웠다”는 정 회장의 말에 대해 “한전 지분은 정부가 51%를 갖고 있을 뿐이고, 외국인도 28%나 갖고 있다”는 반박이 나온다.
그동안 현대차는 ‘(오너)회장님의 결단’으로 고비를 많이 넘겼다. 기아차 인수와 미국공장 건설 등 ‘오너의 뚝심’이 성공으로 이어진 전례가 있다. 하지만 매번 중요한 결정에서 정 회장의 눈치만 본다면 그룹의 미래에도 부정적이다. 보안이 중요했던 사안임을 고려하더라도, 낙찰자 발표 이후까지 현대차의 중요임원까지도 “알 수 없다”, “우리도 놀랐다”고 답했을 정도다. 얼마나 소통이 안되는지 짐작된다.
물론 삼성이 뒤늦게 후회한다는 얘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매번 앞서가던 삼성이 현대차에 뒤진 것은 자존심의 문제라는 자성론이 있다는 후문도 있다. 그렇다면 정 회장의 말대로 100년 뒤에 가서 '위대한 베팅'이라는 후대의 칭송을 받을 수도 있다.
이와 별개로 중요한 것은 최고경영자부터 직원까지 정보를 공유하면서 더 큰 가치를 이끌어내는 선진 외국의 경영방식이 주는 교훈이다.현대 첨단기업들은 최고 CEO와 말단 직원까지 소통을 통해 성장하고, 이것이 기업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다시 한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