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내려보낸 권력실세들 책임져야
문화는 어느 시대나 권력에 속한다. 원래 ‘4대 천왕’이란 말이 유행한 곳은 1990년대 홍콩이었다. 지금은 우리나라 한류가 중국대륙을 휩쓸지만 20여년 전 만 해도 홍콩영화와 홍콩스타가 한국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적이 있었다.필자는 지난 1991~1992년 중문대학에서 중국어 연수를 하기 위해서 1년 동안 홍콩에 체류한 적이 있다. 그때 홍콩을 주름잡던 연예계 ‘4대 천황’은 유덕화, 장학우, 여명, 곽부성이었다. 당시 그들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로 대단했다. 한국에도 아직까지 그들 이름이 알려져 있다.
1980년대 홍콩에서 알란탐과 장국영은 수려한 용모와 가창력, 연기력으로 홍콩의 연예계를 장악한다. 하지만 알란탐의 퇴조와 장국영의 은퇴(나중에 자살), 그리고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등을 계기로 새로운 스타군이 떠오른다. 홍콩의 연예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자 이를 만회할 목적으로 매스컴과 연예계가 합동으로 이들 4대 천왕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성공한 것이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에도 이들은 중국의 4대 천왕이 되어서 아시아 스타로 약진한다.
중국에 '연예계 4대 천왕'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금융계 4대 천왕’이 존재한다. 바로 대형 금융지주사 회장들이다. 국민-신한-하나-우리금융지주를 말한다. 최근 우리금융지주 대신 농협금융지주를 꼽는다. 지난 해 정권교체 후 시련을 겪은 사람들이 많지만 금융계에서는 이명박 정권 때 ‘4대 천왕’들이 곤경에 처했다. 금융당국이 2008년 이후 전직 4대 금융지주 회장들의 비리,부실 의혹을 집중적으로 조사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어윤대 전 KB금융, 김승유 전 하나금융, 이팔성 전 우리금융, 라응찬 전 신한금융 회장 등이 시험대에 올랐다. 이들은 지난 정부에서 MB맨으로 ‘금융계 4대 천왕'으로 불렸던 인사들이다. 한때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금융계를 쥐락펴락했던 인사들이 정권이 바뀌자 ’추풍낙엽‘의 신세가 되는 것을 보고 금융계 인사들은 많이 놀랐을 것이다. 과거 5,6공화국 정권이 바뀌자 당시 ’금융계의 황제‘로 불렸던 이원조 전 은행감독원장이 검찰에 불려나가 다치는 모습을 연상하듯이 말이다.
최근 KB금융 내분사태를 보면서 ‘4대 천왕’이 연상되는 것은 바로 현재의 금융지주 회장들의 막강한 권한과 정치권력과의 함수관계가 예사롭지 않은 까닭이다. KB금융 사태는 금융지주체제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던진다. 이 사태가 단지 임영록 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 두 사람의 성격이나 경영철학의 차이에서 빚어진 게 아니다. 금융지주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위상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지주회사와 은행으로 이원화된 지배구조의 틀이 결국 내분사태를 일으키고 말았다.
특히 임 회장이나 이 행장은 원래 KB금융맨이 아니다. 두 사람 모두 외부 출신이다. 이런 점이 금융지주체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KB금융 내분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마치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두 수장은 권력투쟁을 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금융지주체제가 그런 권력투쟁을 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민은행은 그동안 금융지주 전체의 80% 이상이 되는 수익을 내왔다. 전국에 5천여 개 점포가 있다. ‘소매금융 최강자’이자 ‘리딩 뱅크(leading bank)’로 자리매김을 했다. 다른 금융지주의 은행에 비해 은행장이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다. 곧 금융지주체제에서 1인자와 2인자의 갈등이 벌어질 수 밖에 없었다. 임 회장과 이 행장은 취임 이후 KB금융 안에서 줄곧 ‘세력경쟁’을 벌여왔다. 임 회장은 금융지주 회장이라는 자리를 무기삼아 국민은행까지 영향력을 뻗치려고 했다. 이 행장은 독자적 의사결정권을 고수하기 위해 맞섰다.
주목할 것은 이번 KB사태가 '주인없는 회사'가 잉태한 비극이란 점이다. 여기에 두 사람의 영향력 싸움이 뇌관 역할을 했다. 따라서 주전산기 교체도 사실상 언제 터질 지 모를 시한폭탄이었다는 분석이다. 국민은행이 2001년 주택은행과 합병 이후에 내부 채널갈등이 심화된 것도 회장과 행장의 주도권 싸움의 토양이 됐다. 국민은행은 1만7천여 명의 직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노조가 3개나 된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임원진은 두 갈래 채널로 나뉘어 경영진이 바뀔 때마다 각자의 파벌을 만든 다음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줄서기를 했다.
KB내분사태가 확산된 것은 수뇌부가 모두 ‘낙하산’이라는 점이 한몫을 했다. 임 회장이나 이 행장 모두 ‘KB정통맨’이 아니라 외부출신이었다. 회장이 타고내려 온 줄과 행장의 줄이 서로 달라 시너지효과는 커녕 서로 소가 닭을 보듯 했다. 각자 믿는 ‘배경(빽)’이 따로 있었다. 그래서 서로가 위계질서나 존경심, 협동심 따위는 처음부터 아예 없었고, 서로가 자신이 먼저 구축한 영역쌓기에 골몰했다.
이른바 ‘모피아(재무부+모피아)’와 ‘연피아(연구원+마피아)’ 간의 피할 수 없는 'KB목장의 결투‘였다는 것이다. 이 행장은 연구위원장과 교수직을 지내다 2011년 국민은행 부행장으로 임명돼 KB금융에 몸을 담았다. 재무부 출신인 임회장도 취임 때부터 ‘모피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KB금융 사태는 결과적으로 이들 세력 간의 충돌로 비화됐다는 것이다.
다른 금융지주의 경우 금융지주 회장이 내부에서 배출하면서 나름대로 정통성을 확보하고 은행장에 대해 권위를 세운다. 하지만 KB금융은 임 회장이나 이 행장이 모두 외부출신이라 이런 보이지 않는 통제장치조차 작동할 여지가 없었다. KB사태는 주인없는 금융지주체제가 관치금융과 결합해 낳은 최악의 파국인 것이다.
문제는 애매모호한 금융감독 당국의 태도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그동안 KB금융에 대한 징계 결정을 석 달이나 끌어 금융권의 혼란만 가중시켰다. 최 원장은 제재심의위원회 이후에도 KB금융 내분 사태가 가라앉지 않자 중징계라는 초강수를 뒀다. 그러면서 최 원장이 KB금융 경영진에 대한 징계를 차일피일 미루면서 결과를 번복, 사태만 꼬이게 했다는 지적이 많다.
여기서 필자는 옛 재무부 출신들의 끈끈한 모피아 인맥관계를 주목한다. 금융계의 모피아 인맥으로 분류되는 동갑내기 행정고시 선후배 임영록 KB금융회장과 최 원장 간의 관계다. 철저히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모피아식 의리’ 앞에서 선배인 임 회장 문제를 후배인 최 원장이 제대로 처리한다는 것이 애초부터 무리였을 지 모른다. 모피아 선후배 들 간의 '의리'는 동정-관망-대결-확전의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엉거주츰하는 사이에 1차전이었던 제재심에서 경징계를 이끌어냈던 임 회장은 이건호 국민은행장과의 화해에 실패하고 만다. 이 바람에 최 원장과의 두 번 째 싸움에서 '중징계'라는 카운터 펀치를 맞았다. 자존심이 상한 임 회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사퇴를 거부하고 권리구제 절차를 밟겠다고 나서면서 양자간 싸움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커졌다.
두 사람은 55년생 동갑내기지만 고시에서는 임 회장이 행시 20회 출신으로 최 원장이 25회로 5기수 차이가 난다. 충남 예산출신으로 서울고, 서울대 생물교육과를 졸업한 최 원장은 재무부 국고국·경제협력국·이재국,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 등을 거쳤고 공직의 후반기를 금융위원회에서 보내다 작년 금감원장에 취임했다.
반면 임 회장은 줄곧 기획재정부에서 공직생활을 했다. 강원 영월이 고향인 그는 경기고, 서울대 국어학과를 나왔고 2008년까지 기획재정부에서 경제협력국, 이재국, 금융실명제 실시단, 국고국, 경제협력국 등에서 일했다. 경력으로만 본다면 임 회장이 금융정책국장, 차관보, 정책홍보관리실장, 2차관까지 역임해 최 원장보다 화려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재무부 시절 두 사람은 매우 가까웠고 상당기간 친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당시 행시 합격자로는 드물게 서울대 사대 졸업생이어서 교감이 많았다는 후문이다.
두 사람은 작년 화려하게 금융계에 복귀했지만 미묘한 관계가 됐다 최 원장은 금융기관으로서는 저승사자 격인 금감원장에 취임했고, 어윤대 전 회장 아래에 있던 임 회장은 사장에서 당당하게 KB금융그룹 총수로 올라선 것이다. KB내분 사태를 둘러싸고 최 원장은 '강성' 이미지를 연출했다. 지난 5월 내분이 불거진 뒤 줄곧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한 제재'를 언급하며 임 회장과 이 행장에 대해 중징계 방침을 시사했다. 그러나 지난 달 21일 제재심의 결과는 정반대였다.
볼 만한 구경거리는 곧 열릴 금융위원회다. 최 원장은 금융위원으로 의결에 참여하게 된다. 모피아 선후배인 두 사람 간 에 공방을 거듭하는 치열한 논리대결이 예상된다. 또 한명의 모피아인 신제윤 위원장은 최 금감원장의 건의를 받아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의 중징계 조치에 대해 조만간 최종 결론을 내려야 한다. 흥미롭게도 모피아 들 간의 ‘희대의 싸움’을 또 다른 모피아 재판장(신제윤)이 주재,결론을 내리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현재 금융위 위원은 신제윤 위원장, 정찬우 부위원장, 주형환 기재부 1차관, 장병화 한국은행 부총재, 김주현 예금보험공사 사장 등 9명으로 구성되며 금감원장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들은 모두 서울대 출신이다. 한은출신 등 일부를 빼고는 모피아 출신들이 주축이다. 전체적으로 모피아가 모피아를 ‘단죄’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이처럼 모피아들을 총망라한 금융위 재판정에서 어떤 제대로 된 심판이 나올 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재판관들이 대부분 재무부와 기힉재정부, 금융위에서 동종교배를 한 순혈파란 점에서 재판구성 자체를 무효화하고 ‘제3의 심판정’에 맡겨야 한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금감원(제재심의위 포함)이나 금융위 재판은 이미 기소도 재판도 양형도 혼자서 원맨쇼를 하는 현대판 ‘원님재판’이라는 비난을 받았으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 행장과 임 회장에 대해 중징계를 내린 국민은행 주(主)전산기 교체 문제를 놓고 KB금융과 국민은행 내에서 벌어진 위법행위 논란이다. 특정 업체에 유리하게 보고서를 조작했다는 검사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또 다른 당사자인 임 회장은 이 조사결과에 불복, 법률적 소송을 시사하고 있다. 그렇지만 어떤 결과를 낳더라도 KB금융그룹과 국민은행은 이미 치명상을 입고 말았다. 한 때 리딩뱅크를 자신했던 국민은행의 영업이익은 하위권으로 떨어지고, 해외사업은 힘이 빠지는 등 후유증이 심화하고 있다.
이번 사태가 금융지주와 계열사 은행 간의 단순한 문제였다면 지휘계통상 상사가 인사권만 제대로 행사했더라면 바로 잡힐 일이었다. 하지만 서로 다른 뒷배경으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두 수장이 있었다. 그러니 화합이나 상명하복은 애초부터 기대하기도 힘들었다. 중징계-경징계-중징계를 오락가락하며 파국을 자초한 KB금융 내분을 돌이켜 보면 이른바 관치금융 및 낙하산 인사의 병폐를 여실히 알 수가 있다.
이번 KB사태를 계기로 후진국 수준에 머물고 있는 한국금융 현실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우리나라는 세계 10대 무역대국으로 올라섰지만 금융부문의 경쟁력만 놓고 보면 '우물 안 개구리' 신세다. 심하게 말하면 금융부문이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 이번에 한국 금융업계와 금융감독당국, 그리고 낙하산과 관치금융에 물들은 모피아를 비롯한 ‘구닥다리 세력(앙상레짐)’들이 뼈를 깎는 자성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임 회장과 이 행장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낸 권력 실세들이 뭔가 솔선수범해서 '원죄(原罪)적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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