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 동안 분노만 터뜨린 야당..좀 정직해져야
노무현 대통령 집권 당시 세간에서 제일 싸가지가 없다는 말은 많이 들었던 사람 가운데 한 명은 아마도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일 것이다. 일부 보수진영 인사들은 “만약 유시민이가 대통령이 된다면 곧바로 이민을 가겠다“는 극언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말이다.집권 말기인 2007년 노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고립무원의 상태였다. 노대통령의 복심(腹心)이자 ‘리틀 노무현’으로 불렸던 유시민 당시 장관 또한 온통 적으로 둘러싸인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상황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정치적으로도, 정책적으로도 우군이 없었다. 사방에서 ‘유시민을 쫓아내야 한다’는 목소리만 요란한 어수선한 시대였다.
그가 주도해 만든 열린우리당은 조만간 해체가 예고된 정당이었다. 정치적 스승인 노 대통령은 당적을 정리하기로 하는 등 집권 5년차의 역풍(逆風)이 대단했다. 유시민 본인의 푸념을 빌리면 ‘돌아갈 당도 없고 당에서 불러주지도 않는’ 정치적 고아와 같은 처지가 된 것이었다.
사실 ‘유시민’ 하면 얼굴부터 찡그리고 고개부터 돌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크게 보면 ‘안티(Anti)-유시민’ 대열에 여·야 또는 보수·진보의 구별은 없었던 분위기였다. 옛말에 재승박덕(才勝薄德)이라는 말이 있다. ‘똑똑하지만 싸가지 없는 사람’은 어디에 가도 쉽게 환영받기 어려운 법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당시 유시민의 ‘정치적 위기’라는 소식은 내심 희열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저 혼자 잘났다고 날뛰더니 그것 참 고소하군” 하는 것 같은 생각 말이다.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유시민은 새로운 위기를 맞는다. 2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한마음 한뜻으로 유시민에게 ‘국민불신임장’을 전달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자격과 신뢰를 상실했다며 국민의 이름으로 불신임한다는 내용이었다. ‘의료의 공공성과 건강보험보장성 강화를 위한 연대회의’라는 긴 명칭의 이 기구에는 빈곤 종교 장애인 여성 인권 노동 보건의료 등 진보적 성격의 단체가 거의 망라돼 있다. 진보사회에서 불신임의 딱지를 붙인 셈이다.
한때 노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진보만 사느냐"고 일갈하면서 진보진영과 대립각을 세운 적이 있었다. 이일로 유시민도 진보 사회와 충돌하는 또 하나의 전선을 형성하게 된 것이었다. 당시 시민단체가 불신임의 사유로 삼은 세가지 복지제도 개혁방안은 사실 유시민의 작품이었다.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개혁, 가난한 사람도 병원·약국에 갈 때 본인부담금을 내도록 하는 의료급여제도혁신, 의료산업화를 촉진하는 의료법개정안 등이 그것이다. 모두 기존의 복지혜택을 줄이는 이른바 ‘보수적 개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니러니하게도 그가 만든 이 제도들은 현재까지도 유지되면서 의료소외 계층으로부터 큰 찬사를 받고 있다. 이렇게 보면 유시민은 복지부장관 전후가 매우 차별적으로 대칭되는 인물이다. 개인적 감정에서 볼 때 국회의원 시절 한없이 싸가지가 없었던 반면 복지부장관 이후에는 180도 달라진 정치적 행태를 보였다. 그렇다면 감정이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지고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유시민이 복지부 장관이 된 뒤 1년여의 생활이 그랬다. 그는 국회의원 때와 너무도 달라져 있었다. ‘싸가지 없는 언사’로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일만 잘 챙긴다고 해 오히려 ‘화려한 변신’이라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그 뒤 정권이 바뀌고 ‘폐족(廢族)’이 되었다가 경기도지사 선거에 야권통합 후보를 나갔다가 낙방을 하고 정치에서 은퇴하고 말았다. 그러나 세상사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 현재 작가로 활동하는 그가 앞으로 언제 또 어떻게 변신할 지 누구도 모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유시민도 그렇지만 요즘 한국사회에서 진보가 별로 기를 펴지 못하는 것 같다.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실명 비판'의 영역을 개척한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과)의 도발적인 책 '싸가지 없는 진보'가 매우 화제다. 강 교수는 이 책에서 새정치민주연합과 그 지지자들의 '도덕적 우월감'과 '싸가지 없음'이 진보를 나락에 빠뜨렸다고 주장한다. 그러자 진중권 동양대 교수(교양학부)가 강 교수의 주장을 반박하고 나서는 등 '진보 싸가지론'이 한국 정치계의 관심있는 화두로 떠오른다.
강 교수의 주장의 핵심은 한마디로 '싸가지 있는 정치'를 해야 진보ㆍ개혁 세력이 집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한국의 진보는 유권자를 계몽 대상으로 보고 있다. 그런 탓에 무례함, 도덕적 우월감, 언행 불일치 등의 싸가지 없는 행동을 보인다. 예컨대 선거 결과가 안 좋게 나오면 '유권자가 욕망에 투항했다'는 식의 진단을 내놓는 식이다. 그는 진보가 선거에서 필패할 수 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상대에게 모멸감을 주는 행위나 담론에만 집중하는 탓이다. 진보가 선거에서 진 이유는 바로 이 '태도'에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대표적인 진보 논객인 진중권 교수는 강 교수가 상황을 안이하게 보고 있다고 반박한다. 그는 진보의 가장 큰 문제는 ‘태도’가 아니라 사회에 던질 ‘메시지’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싸가지가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싸가지가 있어도 그 좋은 싸가지로 대중에게 할 말이 없는 게 문제"라며 "노대통령과 리틀 노무현(유시민)이 싸가지가 있어 집권에 성공했나? 싸가지 없어 보이는 언행이 외려 유권자들에게 신선해 보였던 거다. 던지는 '메시지'만 있다면 싸가지 없음도 매력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진 교수는 "강 교수의 입론에 선뜻 동의하기 꺼려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 입론의 바탕에 구민주당 지지자가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이자, 친노의 아이콘이자, 싸가지 없음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유시민씨에 대해 품은 섭섭함과 노여움 같은 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그래서 논쟁을 해야 별 생산적 결과가 안 나올 것 같다. 구민주당을 지지했다가 몰락해야 했던 논객이 이 모든 위기의 책임을 간단히 친노세력의 싸가지 탓으로 돌려버림으로써 심리적 보상을 받으려는 무의식적 기제가 작동하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한국 정치를 보수와 진보로 나누는 이분법식 분류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해방 이후 70년 동안 한국 정치에 근본적으로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없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해방 후 김성수의 한민당을 시작으로 구 민주당, 그리고 계속해서 뿌리를 이어온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에 이르기까지 과연 서구의 진보정당이라고 할 만큼 이념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진보정당 냄새가 물씬 나지 않는다.
크게 볼 때 양대 보수정치 세력으로서 여야가 정권교대를 해오다가 최근에 와서야 이념적으로 혁신과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인들이 일부 야당에 들어오면서 언론과 정치권이 이를 편의상 보수와 진보를 나눠서 부르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오히려 기성 정치인들이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 대결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세력을 확장하고 정권유지에 이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는다. 선거 때마다 범보수 또는 범진보 세력의 대동단결을 각각 외치며 세력확장과 득표활동에 이들 이념을 끌여들이는 행태를 되풀이해 온 까닭이다.
현재 ‘싸가지 없다’는 흔히들 ‘예의 없다’거나 ‘겸손하지 않다’, ‘재수 없다’ 등 태도의 문제로 해석한다. 하지만 ‘싸가지 없다’의 본뜻은 훨씬 심각하다. ‘싸가지’는 ‘싹수’라는 의미의 강원도와 전라도의 방언이다. 싹수는 ‘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를 의미한다. 본질적으로 새싹과 관련 있는 말이다. 즉 ‘싸가지 없다’는 말은 씨를 심었는데 새싹이 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인생의 미래가 없고 전망도 없다는 뜻이다.
1980년대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필자는 신문사 정치부기자로 상당 기간 야당 출입을 한 적이 있다. 이른바 서슬퍼런 제 5공화국 때 야당 출입기자는 사회부기자보다 더 고된 시절이 있었다. ‘대통령 직선제 쟁취’같은 강경 구호를 건 야당지도자들의 시위현장을 따라다니다 보면 으레 경찰이 쏜 최루탄을 뒤집어쓰고 다니기 일쑤였다.
그때는 김영삼-김대중 양 김씨가 개헌투쟁을 선도하던 시절이었다.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해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양 김씨가 현역 의원은 아니었다. 그들은 국회 밖 즉, 장외(場外)에서 개헌투쟁을 원격 조종하며 선도했다. 그래서 국회 안에 설치한 개헌특위가 여야의 이견으로 공전할 때 밖으로 나와서 전국 각지를 돌며 직선제개헌을 호소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여당과 곳곳에서 충돌했다. 경찰이라는 공권력이 동원됐고, 여야의 개헌 합의 불발로 전두환 정권이 개헌에서 호헌으로 입장을 선회하자 ‘6.10 항쟁’이라는 대규모 시민봉기에 직면한다. 그럼에도 야당과 재야의 투쟁이 격화되자 노태우 여당 대표위원이 ‘6.29 선언’을 통해 직선제개헌 수용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장외투쟁의 효과를 입증한 대표적인 사례다. 국회가 장내에서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장외투쟁을 벌이는 것은 정상상적인 대의민주주의의 형태는 아니다. 우리 헌법은 대의민주주의를 표방한다. 따라서 장외투쟁과 같은 직접 민주주의 형태의 투쟁이나 민의전달 방식은 엄격한 의미에서 ‘위헌 논란’을 낳는다.
양 김씨가 주도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투쟁 또한 정상적인 대의민주주의의 방식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것이 국민적 호응을 받은 것은 당시 군사독재 정권의 철권통치 시대였고, 숨이 막힐 듯한 공포 분위기에서 자유민주주의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던 탓이다. 이로부터 세월이 많이 흘렀다. 1987년 직선제 개헌이 이뤄진 지도 벌써 27년이 지났다. 지금 어느 누구도 헌법이 잘못되어서 자유민주주의가 안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지금 한국은 나라 전체가 마치 세월호의 포로가 된 느낌이다. 국회는 세월호법에 발목이 잡혀서 마냥 ‘식물국회’ 상태이고, 국정은 사실상 마비상태다. 여야가 의안통과를 둘러싸고 날치기와 폭력을 방지하기 위해서 국회선진화법을 도입했다. 그래서 다행히 ‘동물국회’는 면했으나 5개월 동안 단 한 개의 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했다.
뿐만 아니다. 세월호법을 빌미로 야당은 장외투쟁에 빠져들었다. 지금은 여야간 의사일정 미합의로 정기국회가 정처없이 공전중이다. 시급한 경제관련 또는 민생법안 처리는 뒷전이다. 가히 정치자체가 실종상태다. 답답한 국민들은 “(이럴 바에야) 국회를 해산하라”는 주장마저 나온다(그러나 현행 헌법에선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이 없다).
이러한 시점에서 여당보다는 야당에 친근하고 진보적 인사인 강준만 교수가 제기한 '싸가지 논쟁'은 의미가 있다. 직접적으론 야당을 겨냥한 것이지만 사실 여야간에 공통적으로 적용해서 연구해볼 만한 주제다. 야당만 싸가지가 없는게 아니고 여당도 싸가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싸가지논쟁은 계속할 수 밖에 없는 좋은 테마다. 현재까지는 야당의 ‘싸가지 없음’이 부각되는 바람에 여당은 앉아서 반사이익을 얻었다는 해석이 옳을 것이다.
필자는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식으로 투쟁하는 우리 정치인들의 오랜 당리당파성이 문제라는 세간의 지적에 동의한다. 박영선 대표는 친노냐 비노냐의 ‘울타리 장벽’에 갇혀서 지도력 실종 상태에 있다. 토니 블레어가 영국 노동당을 이끌었던 '제3의 길(The Third Way)'같은 방식은 생각하지도 못하는 것 같다. 지금은 우파냐 좌파냐를 뛰어넘는 초당적인 이데올로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또 친노는 강경파로서 '싸가지없음'의 대명사로 변명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일부 국민들로부터 일방적으로 '빨갱이'로 매도를 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야당은 지난 6년 반 동안 이명박-박근혜 정권에 '분노의 외침'을 한 것 말고는 과연 뭘 했는가를 철저히 반성해야만 한다. 지난 2005년 이후 역대 선거에서 야당이 박근혜와 맞붙어 제대로 된 승부를 펼쳐서 승리를 한 적이 있는가. 또한 지난 대선을 질 수 없는 선거라며 올인을 했는데도 지고 말았다는 사실을 벌써 망각하고 있지는 않은 지 처절히 되돌아볼 일이다.
그리고 이제 야당은 좀 정직하고 솔직해져야 한다. 야당이 최근 몇 년간 해온 정치행태나 입법 정책활동을 보면 일관성과 진지함이 결여돼 있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야당에 대해 ‘그저 떠드는 것(shouting)’으로 바라본 게 아닌 것인 지를 스스로 따져야 한다. 필자는 결론적으로 '싸가지 없는 진보’가 하루빨리 ‘싸가지 있는 진보’로 바뀌기를 학수고대한다. 한국 정치에서 진보가 싸가지가 있어야만 보수도 따라서 싸가지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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