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코노미뉴스 정진교 기자] (사)전국퇴직금융인협회(회장 안기천)는 고공행진 중인 대출 연체율과 태연자약한 정부의 낙관론을 경계하고, 지금처럼 경제가 불안정할수록 정부가 연체 관리에 사전적·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했다.
전국퇴직금융인협회는 20일 부설 금융시장연구원이 내놓은 ‘대출 연체율 상승과 효율적 대응방안’을 통해서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 3고(高) 위기의 와중에서 늘어난 빚에 높은 금리가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함을 우려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 협회 안기천 회장은 “연체율 상승 피해는 금융회사만 겪는 게 아니다”며 “대출 의존도가 높은 서민과 자영업자에 더 큰 타격을 줘 그러잖아도 힘든 취약계층을 더 힘들게 한다”고 밝혔다.
이어 연체율을 낮추려다 차주를 망하게 하는 건 소의 뿔을 바로잡으려다가 소를 죽이는 거나 다름없다고 비유했다. '연체살인(延滯殺人)'을 '교각살우(矯角殺牛)'보다 지독한 악행으로 진단한 것이다.
이 협회는 “은행에서 빌려 쓴 돈을 제때 갚기가 어렵고 추가로 돈을 꾸기도 힘들다”며 “이로 인해 대출 연체율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고 심각하게 진단했다. 실제로 국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올해 1분기 말 단순 평균 대출 연체율이 0.32%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0.27%)는 물론 전 분기(0.29%) 보다 올랐다.
협회는 연체율 상승에는 부문별 구분이 없는 현상에 특히 주목했다. 가계대출 연체율이 지난해 1분기 말과 4분기 말에 각 0.24%, 0.26%에서 올해 1분기 말 0.28%로 뛰었다. 지난 2월 말에는 0.32%까지 오르기도 했다. 기업 부문은 상황이 더 나빴다. 기업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1분기 말 0.30%에서 4분기 말 0.31%로 소폭 상승한 뒤 올해 1분기 말 0.35%로 올랐다.
같은 기간 중소기업은 각 0.34%, 0.37%, 0.41%로, 대기업은 각 0.03%, 0.05%, 0.07%로 연체율이 모두 오름세였다. 올해 2월 말 기준 중소기업은 0.55%, 대기업은 0.13%, 기업 전체로는 0.47%의 높은 연체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은행들이 부실 채권을 상각하거나 매각하는 방식으로 자산 건전성 유지를 위해 안간힘을 쓰나, 고정이하여신(NPL) 비율은 오히려 높아지는 양상이다.
금융브리핑 보고서는 금융당국의 태연자약함도 경계했다. 금융감독원이 국내 은행의 연체율을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보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전과 비교하면 연체율이 낮고 손실흡수 능력도 크게 개선된 걸 근거로 든 점을 꼬집었다.
2010∼2019년의 장기 평균 연체율 0.78%에 비하면 연체율이 여전히 낮은 수준이며, 향후 금리 인하가 가시화될 경우 연체율이 하락할 거라는 낙관론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금융인협회는 연체율 상승은 강 건너 불이 아니며 그러기에는 현 경제 상황이 취악함을 지적했다. 금리 인하 시기가 예상보다 늦어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고금리, 고물가로 인한 경기 침체의 골이 더욱 깊어질 수 있음을 우려했다.
한국은행 역시 고물가와 고환율, 고금리의 우려에 통화정책을 새로 짜려는 판이라며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리지 못하고 지금의 고금리 기조를 이어갈 경우 경기가 계속 뒷걸음치며 연체율이 더 치솟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협회는 치솟는 연체율에 신경을 쓰는 정부의 태도 변화도 언급했다. 연체율이 7%대까지 급등한 새마을금고에 대한 정책개입 카드를 고려하는 부분이다. 한국자산관리공사를 통해 2,000억 원 규모의 부실 채권 매입을 추진하려는 것으로 지난해 1조 원가량에 이어 추가 매입을 고려하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금융브리핑 보고서는 지금처럼 경제가 불안정할수록 정부가 연체 관리에 사전적·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했다. 손실흡수 능력을 보여주는 대손충당금 적립률이 작년 말 기준 214%로, 2017년 말 대비 두 배가 넘는 은행권은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판단할 수 있으나 제2금융권의 사정은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새마을금고나 저축은행은 PF 대출 부실의 여파가 크고 연체율이 급등, 특별 관리가 시급함을 강조한 것이다.
금융시장연구원장 권의종 박사는 “금융에서 연체 관리만큼 어려운 게 없다”며 “대출이 한 번 연체에 빠지면 이를 정상화하는 작업이 말처럼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30일 이상 연체 중인 차주가 1년 뒤에도 연체 중일 확률을 48.7%, 90일 이상 연체 중인 차주가 1년 뒤에도 90일 이상 연체를 보유할 확률은 52.1%, 120일 이상 연체 중인 차주가 1년 뒤 120일 이상 연체 중일 확률이 54.2%"라는 한국금융연구원 분석을 근거로 들었다. 손을 늦게 써 연체 기간이 길어질수록 회복이 더디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금융시장연구원은 취약 차주에 대한 채무조정 활성화도 시급하며 그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크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구체적인 역할로는 ▲금융회사가 부실 채권의 상각과 매각을 통한 자산 건전성 강화 유도 ▲대손충당금 적립 확대 등 손실흡수 능력 확충 지도 ▲대출 문턱이 높아지지 않도록 수시 점검 방안 등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