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호 칼럼] 총선이후 유권자들의 마음이 조울증(躁鬱症)에 걸린 듯 싶다.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집단 증후군 현상이다. 성공한 정당을 열성적으로 지지했던 유권자들은 승리감을 넘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듯한 조증((躁症)에 가까운 심리상태에 빠졌고, 실패한 정당에 열성적이었던 쪽에서는 좌절감을 넘어 우울증(憂鬱症)에 가까운 패닉상태에 빠졌다.
TV뉴스도 보지 않고, 동호회 활동에도 참석하지 않고, 이민 가고 싶다고 말하는 사례도 가까이서 목격하게 된다. 심지어는 삶의 의욕을 잃고 무력해지며 자살 충동까지 느낀다고 한다. 조증이나 우울증이나 모두가 극한 감정이 조절되지 않고 있다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적 병리현상이 분명하다.
개인의 행복이나 사회안정에 치명적인 증상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병리현상의 근원이 되고 있는 극단적 느낌과 감정이란 것의 정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한마디로 느낌과 감정은 나의 정체성이 아니다. 내 영혼이 사용하는 한 때의 소모품이다. 느낌과 감정은 생겼다 사라지는 바람 같은 것으로, 시간과 공간과 환경에 따라 쉽게 변하는 것~!. 그 변화무쌍한 감정과 느낌에 내 영혼이 휘둘리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결단코 감정자체가 내 주인이 될 수 없다.
인생이라는 캠퍼스에 그림을 그려내는 재료 물감처럼, 감정과 느낌은 내가 아니라 ‘내 것’이다. 그러니 믿을 수 없는 감정놀이에 함몰되지 말아야 한다. 우울한 감정과 느낌은 대부분 스트레스성 에너지의 발현이다. 생각은 감정을 낳고 감정의 고리는 불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온갖 망상이 그 긍정적 생명활동을 가로막는다. 우리의 뇌는 한 순간엔 한가지 씩만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극한 망상을 급하게 막는 응급 처방은 몸의 운동이다. 땀이 나도록 절을 하는 수행도 바로 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호흡이 가쁠 정도로 달리기를 하거나, 땀에 젖을 정도로 운동을 한 직후, 가장 편안한 자세에서 깊은 호흡을 하면서 내 몸의 변화를 느껴보라.
감정자체도 시간 흐르거나, 환경 바뀌면 반드시 변하고 소멸
내 의지와 무관하게 작동하고 있는 호흡~, 내가 애쓰지 않아도 줄기차게 뛰고 있는 심장박동~, 몸에서 발현되는 열기~, 평소에 없었던 것 같던 나의 움직이는 실존을 더욱 확연히 느낄 수가 있다. 온갖 상념의 잡동사니가 사라지고, 나의 생명현상을 경이롭게 느끼는 것에서 출발하여 무차별적으로 분출하는 감정과 분리할 수 있을 때에 우리는 감정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될 수 있다.
우리가 겪고 있는 감정들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니다. 타고난 유전적 바탕이 어떤 사건을 만나면서 형성되는 반응들이다. 그래서 똑 같은 외부환경에 대해서 사람마다 반응이 다를 뿐만 아니라 그 감정자체도 시간이 흐르거나, 환경이 바뀌면 반드시 변하고 소멸된다.
우리의 뇌는 어떤 정보에 대해서 진실여부와 관계없이 느끼는 대로만 반응하기에, 진실과 왜곡된 감정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깊은 명상가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제시하는 방법 중 하나가 나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감정을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서(觀), 감정이 배제된 상태에서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 이다.
그것을 나와 별개의 현상으로 알아차려 인식하게 되는 순간,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기능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균형을 잡아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자기 자신이 순간적 혹은 지속적으로 받아오던 고통의 늪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필자인 나 자신의 경우도, 지난날 이 '감정컨트롤' 이 부족할 때, 팩트보다 과도하게 마음의 고통을 겪어 왔었기에 이 문제에 관한 연구서적이나 관련된 문헌을 찾아 비교적 깊은 고뇌와 함께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그 해법을 찾아왔다. 선각자들이 제시한 그 원리와 해법들을 실제로 나 자신에게 하나하나 적용하면서 크게 도움이 되고 있음을 알기에 그 중의 일부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승리에 도취되어 있는 상황이나 패배에 함몰되어 있는 상황이나 이 또한 분명히 지나간다. 한 순간을 영원과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옛날 페르시아 지방의 전승이야기에서 나왔다고 전해지는 지혜의 언어,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This too shall pass)”를 깊이 묵상해 보기를 권한다.
지혜의 말씀...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 출구를 함께 고민해야
내가 승리했을 때에도 교만하지 않고, 실패했을 때에도 좌절하지 않을 수 있는 지혜의 말씀이다. 이긴 자의 방종이나 진자의 방황이나 한 때에 불과한 것임을 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싫든 좋든 이 지구에서 살아야 하고, 우리 국민은 싫든 좋든 우리 나라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한다.
아직까지 이민 가서 지구보다 잘 살 수 있는 행성은 발견되지 않았고, 우리 국민이 어느 나라에 이민을 간다 해도 거기에서는 힘없고 외로운 이방인에 불과하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공존 공영의 답을 찾아야 한다.
인류의 역사는 내맘대로만 되어지지 않는다. 역사는 양 극단의 반복과 교차점에서 새로운 삶의 지대를 창조해왔다. 바닷물과 민물이 교차하는 지점에 영향이 풍부한 갯벌이 생겨 어류영양의 보고가 되었다. 양 극단의 경계선에서 창조의 단초가 열렸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 출구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감정덩어리로 점철된 반목보다는 함께 잘 살 수 있는 디테일을 찾아보자. 특히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정치인들에게 이 부분에서 대승적 역할을 기대한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대립형 보다는 화합형, 사이다 발언형 보다는 민생 해결형으로 정치기조를 전환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선거가 끝난 이후에 까지도 온 나라를 계속 전투모드로 가져가는 것은 옳지 않다. 나라가 정신적 내전상태로 지속되어진다면 우리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누가 문제인가?”에 매몰되면 대립만 생기고, “무엇이 문제인가?”에 집중하면 해결방법을 찾는다. 도무지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은 위기의 상황에서도 기회를 포착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이 정치의 묘미이며 정치인의 사명이다.
세상은 불평등하다. 그러나 많이 가진 자는 그만큼 세상에 대해서 더 많은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공정과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 승자도 패자도 공정과 안정을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할 합당한 도리는 분명히 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불문하고, 이 대승적 도리를 저버리는 않는 정치인에게 응원과 성원의 박수를 보내고자 한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사)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한국공감소통연구소 대표/더뉴스24 주필
전 HCN지속협 대표회장
전 ㈜ 한림MS 기획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