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남의 에듀컬처] 언어는 우리의 생각, 감정, 아이디어를 전달하고 소통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 중 하나이다. 그러나 언어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 이상이며, 우리의 품격과 인격을 반영한다. 따라서 언어의 품격은 우리가 어떻게 표현하고 상대방과 대화하며 세상과 소통하는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옛 말에 ‘삼사일언(三思一言)’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말하기 전에 세 번을 심사숙고하라는 말로, 말 한마디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강조하는 것이다. 또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속담은 언어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얘기한다.
인류는 항상 유머에 높은 가치를 부여해왔다. 서구 문명의 뿌리인 고대 그리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서기 5세기경 고대의 농담을 모아놓은 책 ‘필로겔로스’가 출간됐다. 그 책 곳곳에 인간관계에 웃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써놓았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유머는 여러 생물 가운데 인간만이 지난 고유한 특성이기도 하다. 유독 발달한 전전두엽 덕분에 인간이 높은 언어 능력과 함께 유머를 얻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서양 사람들은 유머를 좋아하고 즐긴다. 특히 심각할 수 있는 정치계에서 한 번씩 폭소를 터뜨리는 유머나 조크가 애용된다. 선거 때 라이벌을 대하는 유머들로 인해 즐거운 축제가 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정치인만큼 유머를 활용한 이들도 드물다. 미국 대통령 링컨이 대표적이다. 어느 날 링컨은 상대 당 의원에게 “이중인격자”라는 공격을 당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링컨은 이렇게 응수했다. “나에게 두 얼굴이 있다면 왜 하필 이렇게 못생긴 얼굴로 남들 앞에 나타나겠어요.”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농담’이 나를 높여 남에게 이기는 기술이라면, ‘유머’는 나를 낮춰 세상에 이기는 기술”이라고 했다. 결국 선거에서 이긴 링컨의 유머는 이 말에 딱 맞는 사례가 아닐까.
우리 정치권은 어떤가. 연일 남을 헐뜯고 깎아내리는 날 선 말들이 오간다. 아무리 죽기살기식 정쟁을 펼친다 해도 정치인들의 언사에 유머가 녹아 있으면 국민들이 덜 짜증날 텐데 말이다.
정치는 상대와 겨루는 갈등조정 행위다. 갈등은 경쟁을 내포하고 있다. 갈등과 경쟁 탓에 정치는 종종 극단으로 치달린다. 이런 정치에 있어 유머는 윤활유다. 갈등희석, 당당한 경쟁 등을 부추기는 활력소다.
지금 진행중인 4·10 총선에서도 ‘유머’가 아니라 ‘독설’과 ‘욕설’이 난무하고 있다. 온라인 상에서는 모욕적 언사와 잔인할 정도로 심한 막말이 넘쳐나고 있다. 뉴미디어 시대에 새롭고 강력한 선거운동 수단으로 등장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인터넷 댓글에서는 상대 후보와 반대하는 정당을 직설적으로 비난하는 욕설이 쏟아진다.
남녀노소를 막론한 소통과 공감의 순기능 도구로 존재했던 SNS가 이번 선거에선 진보와 보수 등 이념·계층·계급 간 무차별적 독설과 비방 글들이 숱하게 떠다니는 ‘적의(敵意)의 바다’로 변질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인 중 자신의 유머 감각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이 많다. 자신이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웃으니까 착각하는 경우인데, 지위가 높은 사람의 언행에 더 과도하게 반응해주는 것은 일종의 생존전략일 뿐이다.
우리에겐 ‘진정으로 우리를 유쾌하게 만드는 멋진 지도자’가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여야 지도자들의 변화도 필수적인 ‘시대의 요구’이다. 이제 ‘투쟁의 이미지’ 만으론 국민들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상대를 포용할 수 있는 아량과 유머 감각, 두둑한 배짱, 그리고 짜증을 주지 않는 온화한 인상이 중요하다.
더 이상 ‘농담’과 ‘디스’(존경을 의미하는 ‘respect’의 반대말인 ‘disrespect’의 줄임말. 다른 사람을 폄하·공격하는 행위)를 혼동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농담’은 웃음을 주지만, ‘디스’는 상처를 준다. 상대 정적을 비판할 때는 품격 있는 언어와 어휘를 선택하고, 직유법보다 은유법으로 하고, 직설법보다 비유나 유추로 공략해야 한다. 유머와 해학이 있는 정치 지도자의 말은 ‘여유와 배려의 정치’로 이어진다.
자신과 소속 정당은 무조건 ‘선(善)’이고, 상대는 ‘악(惡)’이다. 이런 폭언의 정치는 폭력과 힘의 정치로 이어질 개연성이 유머의 정치와 여유의 정치보다 높다. 폭언의 정치를 끊어야만 폭력과 힘의 정치가 사라진다.
폭언의 정치가 없어져야만 상대를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의 기초를 놓을 수 있다. 국민은 꿈과 희망이 있는 말, 배려와 상생이 있는 정치, 여유와 유머가 있는 정치인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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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조석남 (mansc@naver.com)
- 한국골프대 부총장
- 전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 학장
- 전 서울미디어그룹 상무이사·편집국장
- 전 스포츠조선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