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방산 수직계열화 전략…HD현대重,이지스 등 수상함 실적 앞서
향후 수출시장 선점 두고 '기싸움' 해석도
[연합뉴스] 국내 특수선 시장의 '양강'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갈등이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사업을 두고 격화하고 있다.
지난달 방위사업청의 행정지도로 촉발된 양측의 갈등은 한화오션이 지난 4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HD현대중공업을 고발하면서 더욱 커지고 있다.
두 조선업체의 갈등은 재계 순위 7위인 한화그룹과 9위인 HD현대 간의 싸움으로도 번져가는 모습이다.
여기에다 김동관 한화 부회장(41)과 정기선 HD현대 부회장(42)이 비슷한 연배에 절친한 사이로 알려지면서, 이번 사태가 부회장들의 경영능력을 판가름하는 시험대처럼 여기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군함 시장의 특수성과 조선산업의 경쟁구도 등 복합적인 배경도 그 밑에 깔려있다.
◇왜 방사청은 기밀유출에 행정지도를 내렸나
11일 방산·조선업계에 따르면 KDDX는 선체와 이지스 체계를 모두 국내 기술로 건조하는 첫 국산 구축함 사업이다.
오는 2030년까지 미니 이지스함(6000t급) 총 6척을 발주하게 된다. 사업비만 총 7조8000억원이 투입된다.
KDDX는 개념설계, 기본설계, 상세설계 및 초도함 건조, 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된다.
개념설계는 한화오션이, 기본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맡은 가운데 상세설계와 초도함 건조를 수행할 기업을 선정하는 입찰이 올해 하반기 진행된다.
일반적으로 기본설계를 한 업체가 상세설계와 초도함 건조를 맡지만, KDDX는 기본설계 업체 선정과정에서 기밀유출 문제가 발생했다.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은 2013∼2015년 해군본부 함정기술처에서 한화오션의 전신인 대우조선해양이 만든 KDDX 보고서 등을 취득, 회사 내부망에 공유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방사청은 2025년 11월까지의 군함 입찰에서 HD현대중공업에 보안감점 1.8점을 주는 징계를 내렸다. 별도로 HD현대중공업의 KDDX 입찰제한 여부를 판단하는 계약심의위원회를 지난달 열었다.
방사청은 '청렴계약 위반'에 해당하는 임원 개입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징계 없는 행정지도, 즉 HD현대중공업의 KDDX 입찰참여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한화오션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HD현대중공업을 고발한 것이 사태의 전말이다.
방사청의 결정에 대해선 해석이 분분하다.
먼저 국가 안보를 위해서는 해상전력의 핵심인 수상함 건조를 특정조선업체가 독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주장이 있다. 언제라도 전시체제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무기체계를 적시 조달할 의무가 있는 방사청은 수상함 기본설계를 맡은 기업을 입찰에서 배제할 경우 납기지연을 야기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반면, 기밀유출이 중대한 범법행위인 만큼 2∼3년의 입찰제한을 두거나 과징금 부여 등의 징계가 필요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장이 충남대 국방연구소 연구위원은 "사태를 묵과한다면 이러한 반칙이 향후 방산업계에서 횡행할 수 있다"며 "아예 입찰을 제한해 더 큰 논란을 야기하기보다 두 조선업체가
경쟁을 통해 수주하는 것이 맞다고 방사청이 판단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화,방산 수직계열화 전략…HD현대重,이지스함 등 수상함 실적 앞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특수선과 관련한 이해관계도 갈등심화의 배경 중 하나이다.
국내 대표 방산그룹인 한화는 지난해 조선 '빅3' 중 하나인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을 인수하며 특수선 경쟁력에 주목했다.
한화오션은 한국형 구축함 KDX-I의 상세설계와 초도함 건조를 맡았고, KDX-II·III의 후속함도 건조했다. 잠수함 분야에서는 장보고-Ⅰ·Ⅱ·Ⅲ를 모두 수주했다.
이런 점에서 방산부품을 생산하는 한화시스템 등과 한화오션을 수직계열화해 시너지를 도모하겠다는 한화그룹의 구상은 당연한 전략이라고 업계는 입을 모은다.
그룹 미래전략이 달린 분야에서 불공정 행위를 좌시할 수 없다는 판단이 이례적으로 한화오션의 강한 대응을 끌어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반해 세계 1위 조선업체인 HD한국조선해양의 계열사 HD현대중공업 입장에서도 특수선은 놓칠 수 없는 분야다.
HD현대중공업은 현재까지 102척의 수상함을 건조하며 실적면에서 한화오션을 앞서고 있다.
아울러 수상함 연구개발 엔지니어를 180명 이상 동원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조선소다. '전투체계 통합 및 운영시험 능력팀'(ITT)도 운용 중이다.
이밖에도 한국 최초의 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함'을 포함해 국내에서 건조됐거나 건조예정인 이지스함 6대 중 5대를 수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HD현대중공업은 기밀유출에 따른 보안 감점으로 지난해 울산급 배치-Ⅲ 수주전에서 한화오션에 고배를 마셨다.
국내 특수선 수주잔고도 내년 1월께에는 이지스함 배치-Ⅲ 1척만 남게 된다. 그만큼 이번 KDDX 참여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한 함정 전문가는 "HD현대중공업이나 한화오션이나 특수선 매출비중은 10% 정도에 불과하지만, 회사 전략면에서 군함은 상징적인 사업이라 놓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누가 군함 수출시장 잡나…'기싸움' 해석도
이번 사태가 향후 특수선 수출을 고려한 두 업계의 '기싸움'이라는 시각도 있다.
올해 KDDX와 울산급 배치-Ⅳ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업체 선정이 남아있지만, 국내 특수선 시장은 점차 축소되는 추세라는 게 업계의 일반적 전망이다.
그런 면에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향후 수출시장 선점에 도움이 될 KDDX 수주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미국과 필리핀 등이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물량을 해외에 발주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수출경쟁은 더욱 심화하는 모습이다.
HD현대중공업은 1987년 뉴질랜드 군수지원함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4척의 함정을 수출했다. 국내 업체 중 최다 수출실적이다.
아울러 필리핀으로부터 호위함 2척, 초계함 2척, 원해경비함 6척 등 해군 수상함을 모두 수주하기도 했다.
한화오션도 1998년부터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영국, 노르웨이, 태국 등 6개국에 호위함, 훈련함, 군수지원함, 잠수함 등 총 12척을 수출했다.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중국에 수주물량이 추월당한 상황에서 조선업계의 미래전략은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회사로 거듭나거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대체하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으로 요약된다"며 "함정은 창출되는 시장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국내보단 해외시장인데, KDDX사업으로 해외에 내세울 수 있는 실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