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환승 칼럼] 완벽(完璧)이란 흠이 없는 옥을 의미하며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초나라 화씨가 발견한 옥에서 유래한다. 이 옥으로 진시황은 황제를 상징하는 전국옥새를 만들었고 원나라까지 전해지다 명(明)에 의해 몽골 초원으로 돌아간 원의 순제(順帝)가 가지고 가서 실종되었다니 어느 초원에 묻혀 있을 것이다.
“옥에도 티가 있다”고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고 완전한 것도 없다. 그래서 불교의 삼법인에는 “제행무상(諸行無常) 즉 모든 것은 변한다”이 있다. 부처님과 비슷한 시기인 기원전 6세기의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도 만물유전(萬物流轉), 즉 “모든 것은 흐르며 정지하고 있는 것은 없다(All is flux, nothing stays still)”고 했다.
쉬운 말로 “같은 강물에 두번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완전하고 완벽한 것이 없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단지 끝없이 완전한 것을 추구할 수는 있으며, 인간의 신체 한계를 넘기 위해서 선수들은 올림픽 기록을 경신하고 기네스북에 신기록을 남기기 위해 노력한다.
미국 소설가 헨리 제임스는 “훌륭함(excellence)에 완벽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으니 훌륭한 것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AI에게 “완전하고 완벽한 것들의 모음”과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완전한 것”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더니 아래와 같이 그려주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이 물체들은 인간이 그동안 “완전”과 “완벽”이란 단어와 결합되어 많이 사용한 대상이다. 해바라기와 유니콘, 나비와 꽃들이 흥미롭다.
완벽한 것을 싫어하는 인간
오늘날 언어습관의 특징은 딱 부러지게 “~입니다”로 답하지 않고 “ ~같아요” 또는 “~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마치 제품가격 2,000원을 1,999원으로 표시하듯, 몇 %는 남겨놓아서 회피의 여지를 남긴다.
겸양의 표현이어서인지 또는 자기확신을 꺼리는 것인지, 완곡한 표현은 구설수를 막을 수 있는 좋은 처세술의 하나이긴 하다.
세상을 설계한 신도 완벽하지 않아서 몇가지 실수(?)를 했다. 하나는 일년이 365.2425일로 소수로 만들어지는 바람에 4년마다 윤년을 두고, 100년과 400년마다 윤년을 두지 않는 방법으로 조절해야만 한다.
두번째는 원주율로 원주율 값은 3.14159.....의 무리수라는 것이다. 2016년 스위스에서 105일동안 계산해서 소수점 이하 22조 4591억 5771만 8361자리까지 계산을 해도 끝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원주율 계산은 프랑스와 스위스, 일본의 국가간 경쟁이 되어 지금도 어느 국가의 누군가는 이 자리수 기록을 깨려고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세번째는 지구도 자전축에 23.5도 기울어져 낮과 밤의 길이 차이와 계절의 변화를 주고 있다. 게다가 자전축이 21.5도에서 24.5도 사이를 26,000년의 주기로 변화하는 세차운동도 있으며, 그 결과 지구는 더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을 맞이한다고 한다.
어차피 오차는 있게 마련이고 우리의 일상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므로, 매사 완전하게 정확한 것을 추구하지 말라는 신의 뜻일 수도 있다.
아직 완전하지 않은 AI는 인류에게 불행 중 다행
130개국의 언어를 번역해주는 AI는 현재 번역가들의 직업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미국 대형 출판사들은 국내 출판사와 계약요구사항을 AI가 번역하지 않는 조건으로 계약한다고 한다.
한편 아직 번역에 있어서 미흡한 점이 많다. 영화 기생충의 대사인 “김칫국 마시는 김에 말씀드리자면”과 같은 부분은 아직 AI 번역이 충분하지 않다. 표현 뿐아니라 영어에 없는 한국어 단어(‘소복소복’과 같은 의태어 들)의 경우는 의역을 하는 수 밖에 없으며 번역가의 전문경험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글을 훌륭한 수준으로 작성하기에 일본의 작가 쿠단 리에가 얼마 전에 170회 아쿠타가와 문학상을 받았는데, AI가 작성한 글을 5% 정도 그대로 사용해서 화제가 되었다.
그러므로 AI는 현재 번역의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일 뿐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지 못하므로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AI가 완벽하다면 진짜 인간은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을 것이다.
만일 완전에 가까운 천재형 인간이 오래 살기까지 하면 후세들은 살기 어렵다. 위대한 예술가들이 오래도록 살면서 많은 컨텐츠들을 창작해 놓았다면 후세의 예술가들은 설자리가 상당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1,300개의 특허를 발명한 에디슨이 모든 걸 다 발명해 놓지 않아서 후세의 발명가들에게도 남은 역할이 있는 것이다.
“첫 술에 배부르랴”는 말이 있다. 시작부터 완제품은 없으며 GPT도 3.0에서 발표되었고, 지금의 버전은 4.0일 뿐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즈도 3.1 버전부터 많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전기자동차도 1881년에 프랑스 트루베에 의해서 개발되었지만 100년이 더 지난 1996년에서야 GM의 EV1 모델로 상용화가 본격 시작되었다.
지금은 인간과 AI의 공진화 단계
자동차가 있어도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여전히 걸으며 트래킹을 하며, 기아를 변속하는 편리한 오토기어가 나왔지만 수동기어만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고의로 전기와 스마트폰 등 문명을 거부하고 옛 방식을 지키려는 사람들까지 있기 마련이다. 세상이 다 디지털로 바뀌어 웨어러블과 인공장기 등으로 갑옷을 입듯 무장은 할지언정, 인간의 몸은 영원히 아날로그로 근본적인 것은 변할 수 없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로봇 조리사가 도입되어 라면과 우동 등 13종의 요리를 시간당 200인분을 조리할 수 있다고 한다. 줄서서 기다려야 하는 일은 감소될 것이고 심야에 휴게소에 들어가도 음식 서비스가 가능해질 것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해보고 싶은 일 중의 하나가 한강변에 가서 무인 라면 조리기가 끓여주는 것을 먹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개발과 서비스가 시작되는 단계의 현재 조리 로봇들이 아직은 인간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있어서 완전 무인화는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생산공장에서는 제품생산을 로봇들이 차지하고 사람은 생산재료와 완제품의 출고만 담당하도록 역할이 바뀐지 오래다.
인간은 지구를 지배한 이후로 진화의 압박을 받지않아 왔으나 AI로봇의 등장은 새로운 인류의 진화를 요구하고 있다.
쉐프는 인간이고 조리사는 로봇의 형태가 될는지 모르지만 인간과 로봇의 협업을 통한 공진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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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용환승(hsyong@ewha.ac.kr)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졸업, 대학원 공학박사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연구원,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전문위원
한국정보과학회 부회장, 한국소프트웨어감정평가학회 회장
현 이화여자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