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남의 에듀컬처] 어느덧 연말, ‘송년회’ 시즌이 시작됐다. 송년회 문화도 이제 많이 바뀌어가는 느낌이다. 음주 중심의 기존 송년회에서 이색 송년회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그동안 ‘먹고 마시자’ 일변도의 송년회가 많은 문제를 낳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특히 송년회에 대한 문화적 인식이 많이 바뀐 젊은 세대 사이에서 그랬다. 이 때문에 많은 이가 송년회를 통해 진정한 성찰과 조직 결속력을 다지려 하고 있다.
이색 송년회는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관람형으로 영화, 연극, 뮤지컬, 콘서트 관람이나 스포츠 경기 관람처럼 문화콘텐츠를 즐기면서 송년회를 하는 유형이다. 저녁식사에 문화공연을 곁들인 송년회도 선보이고 있다.
다음으로 시연형이 있다. 이 유형은 구성원이 직접 공연을 준비하거나 이벤트를 선보이며 송년회를 한다. 체험형 송년회도 있다. 함께하는 체험을 통해 팀원 간 결속력을 다지는 유형이다. 공포체험이나 암흑체험 같은 미션형 체험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소비를 통한 송년보다 주변 이웃을 돌아보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봉사활동형 송년회도 있다. 여기에는 재능기부를 통한 활동도 포함된다.
‘착한 송년회’는 매우 바람직한 사회적 현상
송년회는 지금 문화 이행기에 있다. 기존 송년회와 새로운 송년회 문화의 중첩기에 속한다. 때론 혼란스럽기도 하다. 기존 송년회에 색다른 송년회를 접목하거나, 적극적으로 이색 송년회를 했다가 다시 기존 송년회로 돌아가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이런 다양한 송년회 풍경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일본 사람들은 연말을 친구나 친지들과 어울리며 요란하고 떠들썩하게 보내는 풍습이 있었다. 이 풍습이 ‘망년회’로 정착됐다. 우리는 달랐다. 연말이 되면 시끄럽기는 커녕, 오히려 지나간 해를 반성하고 근신하면서 조용하게 보냈다. 일본 사람들은 ‘망년(忘年)’이었지만, 우리는 ‘수세(守歲)’였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망년회라는 게 없었다. 그런 용어 자체가 없었다.
우리는 새해의 첫날인 설날도 ‘신일(愼日)’이라고 했다. 설날 역시 근신하며 보내는 날이었다. 새해가 되면 첫 쥐의 날(子日)과 돼지의 날(亥日)에는 특히 근신했다. 쥐나 멧돼지 따위가 농작물을 해치지 말아달라고 기원하는 날이었다.
이처럼 연말을 조용하게 보냈던 우리가 망년회를 알게된 것은 일제 때였다. 일본 사람들의 망년회는 점차 우리에게도 퍼지게 됐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일본식 표현이 불편했던지 이름만 ‘송년회’로 변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착한 송년회’는 매우 바람직한 사회적 현상이다. 유난히 사건·사고가 많았고, 경제적으로도 힘든 시기였던게 올해여서 더욱 그렇다. 먹고 즐기는 것보다 좀 더 뜻 깊은 송년회를 한다는 것은 배려와 나눔의 실천이나 마찬가지다.
저마다 선 자리에서 마음 다잡고 맞서는 게 중요
이같은 일을 하는 사람도 따로 있는 건 아니다. 꼭 내세우고 결심하지 않아도 가능하다. 보통사람들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직장이나 단체, 조직이 추진하면 더욱 확실히 할 수 있다. 실천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한 해를 보낸다는 의미가 저마다 다르겠지만 각자의 마음 속에 담긴 지난 해의 아쉬움과 새해에 대한 희망은 모두 같을 것이다. 잔에 술을 채우듯 지난 해의 모자람은 또 채우면 되고, 건배사를 외치듯 희망은 더욱 힘차게 솟아오르게 하는 것이 송년회의 진정한 풍경이 아닌가 싶다.
송년회에서 많이 나오는 얘기 중의 하나가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이다. 어렵고 고된 일로 한 해를 보내며 애썼다는 뜻인데 참 따뜻한 격려의 말인 것 같다. 되돌아보면 세상일이 어찌 고되고 힘들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어려움을 극복하며 아픈 마음을 다스리고 살다보면 좋은 일도 생기고 기쁨도 배가되는 것 같다. 그래서 송년의 의미가 더욱 크다.
내년은 더 힘들 것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닥친 국내외 여건이 어느 것 하나 녹록지 않아서다. 그런 때일수록 저마다 선 자리에서 마음을 다잡고 맞서는 게 중요하다.
어떻게든 견뎌내다 보면 어김없이 봄은 온다. 바라건데 이번 연말, 이번 송년회는 한 해가 가버린다고 아쉬워하기보다는 남아있는 시간들을 알차게 보내며 새로운 희망을 품는 그런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조석남 (mansc@naver.com)
- 한국골프대 부총장
- 전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 학장
- 전 서울미디어그룹 상무이사·편집국장
- 전 스포츠조선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