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난민’을 위한 나라는 없다
‘노후난민’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정기석
  • 승인 2023.11.0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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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석 칼럼] 한국의 노인들은 가난하다. 한국은 세계 10대 교역국으로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지만 노인들의 사정은 그렇지 않다. 그것도 OECD(경제협력개빌기구) 국가 중 가장 가난한 편에 속한다. 주관적 감정이나 불만이 아니라 통계로 나타난 객관적인 사실이다.

통계청의 '2022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고용률은 2021년 기준 34.1% 수준이다. OECD 평균인 14.7%의 2배 이상으로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실질 은퇴연령도 72세로 OECD 회원국 중에 가장 높다 가장 길게 열심히 일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66세 이상 고령자의 상대적 빈곤율이 43.2%로 OECD 회원국 중 노인빈곤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공적연금에 투입되는 정부지출이 적은 게 근본적 이유라고 할 수 있다. OECD의 '한눈에 보는 연금 2021 OECD'(Pensions at a Glance 2021)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 정부가 공적연금에 투입한 재정은 전체 정부 지출의 9.4%로 전체 회원국 중 아이슬란드(6.2%) 다음으로 낮다.

OECD 회원국들은 평균적으로 전체 정부 지출의 18.4%를 투입, 한국의 약 2배 수준이다. 한국의 GDP 대비 공적연금 지출은 2.8%로 OECD 평균(7.7%)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노인빈곤율은 노인자살률로 연결

2022년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현황을 살펴봐도 한국의 노인빈곤 상황은 심각하다. 2022년 기초생활보장급여 일반수급자 10명 중 4명에 해당하는 39.7%가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로 밝혀졌다. 노인인구의 비율은 2017년 28.9%에서 불과 5년만에 10% 가까이 가파르게 증가한 셈이다.

가구 유형별 수급자 분포에서도 노인가구는 32.2%로 가장 많다. 장애인가구 13.8%, 모자가구 10.6%, 부자가구 2.9% 등 취약계층 가구 전체 59.5%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수급자의 29.4%가 월소득이 아예 없는 '0'원이다. 40만 원 이하는 60.9%에 달한다.

이같은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곧 노인자살률로 직결,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로 불거지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2019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46.6명 수준이다. 이는 OECD 평균 17.2명의 2.7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보건복지부의 '2020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이 자살을 생각하는 주된 이유는 건강(23.7%)과 경제적 어려움(23.0%)이었다. 외로움(18.4%)이나 배우자 또는 가족 사망(13.8%)보다 비중이 컸다.

한국의 ‘노인난민’과 일본의 ‘노후난민’

한국사회의 전조 증상을 먼저 나타내는 일본도 상황이 좋지 않다. 종신고용제도는 무너지고 노후를 대비할 자금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게 일본 50대의 현실이다. 일본에서는 기본적인 노후 자금도 준비되지 않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노후난민'으로 부른다.

종신고용의 종말은 이미 일본 경제가 급성장했던 80년대부터 예견되었다. 은퇴 후에는 고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아르바이트와 같은 한시적인 일을 하는 '중년의 프리터족'을 양산하고 있다. 단기적인 비정규직이라도 구하려고 넷카페에서 머무는 이른바 '넷카페 난민'도 등장했다. 일을 열심히 해도 빈곤층에서 벗어날 수 없는 '워킹푸어'가 일상화된 건 물론이다.

일본의 ‘노후난민’은 이미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이미 ‘노인난민’이 속출하고 있다. 고령화로 수명은 늘어났지만 가족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사회적 부양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노인을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자식들과 떨어져, 사회로부터 격리 또는 고립되어 독거노인으로 살아가는 처지가 난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의미다.

최근 국가인권위는 빈곤 때문에 쉬지 못하고 일할 수밖에 없는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더 지급해야 한다고 보건복지부장관에게 권고했다. 현행 기초연금제도는 65세 이상 노인의 소득하위 70%에 해당하는 모든 사람에게 월 30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고령층 소득 격차 확대에 기인한 소득 불평등을 고려하지 않은 지급방식으로서 노인층 내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서 취약계층을 표적화해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하고 있다. 소득하위 노인에게 더 많은 기초연금액이 지급될 수 있도록 소득수준에 따라 기초연금액을 차등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기초연금 등 공적연금 재설계해야

아울러,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산정할 때 기초연금 수급액을 소득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도 권고했다. 현행 기초연금제도와 기초생활보장제도는 65세 이상 기초생활보장급여 수급자가 기초연금을 받게되면 그 금액만큼 기초생활보장급여에서 공제돼 사실상 기초연금을 못 받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인권위는 빈곤으로 자살하는 65세 노인 자살률이 OECD 평균보다 3배 가까이 높고, 상대적 빈곤율 1위라는 심각한 상황을 반영했다고 권고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번 권고를 계기로 노년의 끝자락에서 다른 방안을 모색하기가 어려운 빈곤노인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더욱 두텁게 보장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참여연대는 공공부조제인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통한 보호, 기초연금, 농지·주택연금 등 공적연금 확충, 노인 일자리 확충 , 50대 중고령층 노동시장 연장 및 직업전환 교육 등의 대안을 꾸준히 제시하고 있다. 지금 ‘노후난민’을 위한 나라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된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정기석(tourmali@hanmail.net)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 연구위원

경상국립대 창업대학원 6차산업학과 비전임교원

前 국회정책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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