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서 칼럼] “2030엑스포 유치 가능성? 사우디 95%, 부산 5%”
두 달 전쯤 대기업 고위 책임자에게서 들은 말이다. 한마디로 엑스포 부산 유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중남미 3개국에서 엑스포 유치를 위해 기업 차원의 지원 활동을 펼치고 귀국한 지 며칠 안 된 상태였다. 관련 장관 등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 부산 지지를 부탁하고, 그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주고 받기식’ 회동을 주로 가졌다고 밝혔다. 바닥 사정에 밝은 민간기업 쪽 얘기니까 가능성 5%라지만 사실에 근접한 전망치로 받아들였다.
당시 엑스포 유치전은 부산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이탈리아 로마 등 3곳으로 압축됐지만 사우디가 단연 유력하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었다. 막대한 오일머니를 앞세워 선제적으로 유치 활동에 나선 게 제대로 먹혔다는 것이다.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 182개국 가운데 70~80개국이 이미 사우디 편에 섰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우리가 뒤늦게 추격전에 나섰지만 사우디의 자금 공세에는 역부족 상태라고 대기업 책임자는 전했다.
승산 없는 게임에 왜 민간기업이 끼어들었느냐는 물음에는 “윤 대통령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사안 자체가 경제적 기대 효과가 큰 데다, 윤 대통령이 앞장서서 강하게 밀어붙이니까 기업들도 가능성에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동참하게 됐다”는 것이다. 부산 엑스포는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그랬던 판세가 이달 들어 확 달라진 것 같다. 분위기 변화는 지난 7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무력 충돌이 발발한 이후 더욱 뚜렷해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들 입에서 유치 가능성이 커졌음을 내비치는 발언이 잇따라 나왔다.
“충분히 승산 있는 게임”…한 총리 등의 희망적 발언 잇따라
박형준 부산시장은 지난 12일 “비관적으로 보던 분들도 이제는 50대 50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낙관적인 분들은 더 희망적인 이야기를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이미 사우디를 추월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95대 5라는 대기업 고위 관계자의 비관적 전망이 두 달 남짓 만에 50대 50, 또는 그 이상으로 바뀌었다는 해석도 가능해진 것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지난 17일 국무회의에서 BIE 본부가 있는 프랑스 등 4개국 순방 성과를 설명하면서 “경쟁국에 비해 유치활동이 늦게 시작됐지만 민관 지원 노력과 국민적 성원에 힘입어 지지세가 높아지고 있다”고 긍정적 전망을 내놓았다. 같은 날 산업통상자원부의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도 기자간담회에서 “충분히 승산 있는 게임이라고 보고 전력투구하는 상황”이라며 한 총리 말을 뒷받침했다.
이러한 일련의 발언은 ‘신중론’으로 일관했던 종전 모습과는 판이했다. 공직자들의 속성에 비추어 유치 가능성에 대한 어느 정도의 확신이 없으면 나오기 힘든 발언이다. 유치를 자신하다가 실패했을 경우 그 실망감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거센 비난과 책임 추궁 등 ‘후폭풍’도 당연히 염두에 두어야 한다.
판세 변화에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무력충돌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거나 끼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사우디 실세 빈 살만 왕세자가 사태 발발 직후 팔레스타인 편에 서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게 결정적인 변수로 여겨지고 있다. 사우디를 지지했던 국가들 가운데 ‘친 이스라엘’ 국가 상당수가 지지를 철회할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반면 이슬람 국가들은 사우디 지지 쪽으로 더욱 응집할 개연성이 큰 것도 사실이다.
정부나 민간 쪽에서 나오는 최근 얘기를 종합하면 무엇보다 아프리카 국가 대부분이 한국 지지로 돌아섰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여기에다 그동안 ‘중립지대’이거나 ‘친 사우디’ 성향이 강했던 태평양 도서 국가들과 카리브해 국가들 다수가 한국을 지지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정부 쪽에서는 이‧팔 사태의 영향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엄청난 사상자를 유발한 ‘참혹한 사태’를 놓고 주판알을 튀기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칫 ‘역풍’을 맞을 소지도 크다.
그에 따른 신중함 때문일까. 아직도 상당수 사람들은 엑스포 부산 유치의 절박함에 적극 공감하지 않는 것 같다.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실상을 알렸다면 분위기는 진즉부터 보다 달궈졌을 것이다.
“한국경제 활력 넣는 중요 모멘텀”…‘자해적’ 언동 특히 경계해야
2030엑스포는 5년마다 열리는 등록엑스포, 그야말로 진짜 엑스포다. 1993년 대전엑스포, 2012년 여수엑스포 등 우리가 이미 개최했던 엑스포는 등록엑스포 사이에 열리는 중규모 박람회인 인정엑스포였다. 등록엑스포는 규모도 훨씬 크고 행사 기간도 긴만큼, 관람객 수나 경제적 효과도 크게 차이가 난다. KDI 등 전문기관들은 부산 엑스포가 열리면 경제적 효과가 61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부진의 늪 속에 빠져 든 한국경제에 새 기운을 불어 넣는 중요한 모멘텀이 될 것이라는 점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개최지는 다음 달 28일 파리 BIE 총회에서 결판난다. 한 곳이 1차 투표에서 3분의 2 이상을 득표하지 못하면 1‧2위가 다시 경쟁하는 결선투표를 치른다. 현재로선 이탈리아 로마가 1차 투표에서 탈락하고 한국과 사우디가 2차 투표에서 맞대결할 공산이 크다. 우리는 이탈리아를 지지했던 표를 최대한 끌어들여 과반을 차지한다는 전략이다.
이제 남은 기간은 38일. 마라톤도 선두 경쟁이 치열하면 마지막 스퍼트에서 1‧2위가 갈리는 것처럼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다. ‘굳히기’냐 ‘뒤집기’냐의 치열한 다툼이 진행 중이다. 우리가 이미 사우디를 추월해 ‘굳히기’에 들어갔기를 바라지만, 어떤 경우라도 결승선까지 온힘을 쏟아 부어야 할 상황이다. 살얼음판 승부에서는 관전자들의 자세도 중요하다. ‘올인’ 상태인 선수들을 힘 빠지고 맥 빠지게 하는 비이성적, 몰상식적인 자해적 언동을 무엇보다 삼가야 한다. 운명의 여신이 미소를 짓는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분위기는 괜찮은 것 같다. 그 운명의 여신이 마지막 순간에 찡그리는 일이 없도록 모두가 자중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특히 정치권 쪽에 강조하고 싶다.
<필자 소개>
-서울이코노미뉴스 부회장
-전 서울이코노미뉴스 대표, 주필
-전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실장
-전 서울신문 편집담당 상무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 편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