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비상’에도 책상서만 죽친 잼버리 현장 공직자들
‘초비상’에도 책상서만 죽친 잼버리 현장 공직자들
  • 김명서
  • 승인 2023.08.19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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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 안 한 예멘‧시리아에 숙소 배정…“1주일 내내 접촉 시도조차 안한 듯”

[김명서 칼럼] <예멘‧시리아 255명, 입국도 안했는데 숙소 배정>. 지난 9일자 서울이코노미뉴스가 보도한 새만금 세계잼버리대회 관련 기사의 큰 제목이다. 작은 제목은 <잼버리조직위의 ‘황당 시츄에이션’…8일 밤 늦게서야 사실 확인>이었다. 워낙 잼버리 파행과 관련한 큰 뉴스가 쏟아지다보니 ‘일과성’으로 지나갔지만 왜 ‘국제적 망신’이라고 칭할 지경에까지 갔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조직위 관련 담당자들의 행태는 아직도 이해가 어려울 만큼 ‘어이상실’ 그 자체였다.

경위는 이랬다. 태풍 ‘카눈’의 한반도 상륙이 확실해지자 정부는 지난 7일 모든 잼버리 대원들을 새만금 야영장에서 8일 철수시키기로 결정했다. 조직위는 이에 예멘대원 175명의 숙소를 충남 홍성에 있는 혜전대 기숙사로 정하고 대학 측에 이를 통보했다. 대학 측은 곧바로 기숙사 청소 상태를 점검하는 등 대원맞이에 나섰다. 8일에는 환영 현수막도 내걸고 200만원을 들여 뷔페음식도 마련했다. 하지만 도착해야 할 예멘대원들은 저녁 늦게까지 감감 무소식이었다. 대학 측이 조직위에 인솔자 연락처 등을 물어봤지만 “답변해줄 수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고 한다. 대학 측은 결국 밤 9시가 넘어서야 예멘대원들이 입국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충남도를 통해 알게 됐다. 홍성군수와 혜전대 총장 등 대기 중이던 관계자들은 그제서야 귀가했고, 뷔페음식은 폐기됐다.

경기도 고양시 NH인재원에 배치됐던 시리아대원 80명도 입국하지 않은 사실이 오후 늦게 확인됐다. 조직위 측은 밤10시가 넘어서야 인재원 측에 “숙박을 따로 제공할 필요가 없다”고 취소 통보를 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정확한 후속 보도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다만 조직위가 실제 인원을 파악하지 않고 참가 희망국 자료만 보고 숙소를 배정해 생긴 일일 것이라는 추정 정도만 보도됐다.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냥 상식적으로 철수 상황만 따져보자. 예멘대원 175명을 이동시키려면 적어도 버스 5대는 동원하려 했을 것이다. 우리 측 인솔 담당자도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예멘 측에는 몇 시에 어디로 가면 어떤 버스들이 대기할 것이라고 당연히 미리 통보해야 했을 것이다. 결과를 놓고 보면 조직위는 예멘 측과 어떠한 접촉 시도조차 없었다. 잼버리 시작 이후 1주일 동안 입국과 관련한 서류 점검은 물론 폭염 속 잼버리가 ‘생존게임’이라는 아우성이 나오는 중에도 국가별 현장 점검은 없었다고 봐야 할 것같다. 

입국서류 점검은 물론 현장 점검 흔적 없어…“무사안일의 극치”

당시는 초비상 상황이었다. 대회 개막 직후 온열질환자들이 대거 발생했고, 대원들이 위생 불량 화장실, 부족한 샤워시설, 비위생적인 음식에 시달린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급기야 한덕수 국무총리가 직접 현장을 지키며 안전 점검과 대응 방안을 챙기는 등 동분서주했다. 야영지의 화장실을 직접 청소하며 질타하기도 했다. 휴가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현장의 문제점들을 정부 모든 부처가 총력을 다해 즉각 해결해 달라”고 지시를 내렸다. 이에 군부대는 물론 민간에서도 인력과 장비, 물품 지원에 나서는 등 그야말로 ‘총력 대응 체제’가 가동됐다.

상황이 이 지경이라면 담당 공무원은 긴장 수위를 높여 평소보다 더 꼼꼼히 현장을 챙기는 것이 일반적 행태일 것이다. 설사 그 전까지 게으름을 피워 부실이 생겼다 하더라도 이를 만회하거나 그 흔적을 없애기 위해 이리저리 뛰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예멘‧시리아’ 담당은 달랐다. 야영장 철수 방침이 정해진 상황에서도 현장 한 번 안 가보고 책상만 지켰다. 뒷일은 아예 머릿속에 없는 ‘무사안일의 극치’라고 아니할 수 없다.

어디 이들 뿐이겠는가. 조직위, 그리고 내부 구성원들 자체가 대회를 제대로 치러보겠다는 책임감이나 치열함은 기대 이하였던 것 같다. 부지 선정과 조성, 기반시설 구축 등 중요한 대목에서 ‘잿밥에만 맘이 있었다’는 사실은 여러가지로 확연히 드러난 상태다. 

‘프레잼버리’ 취소됐으면 자체 ‘야영체험’으로 문제점 사전 점검했어야 

개인적으로는 조직위 구성원들이 미리 새만금 현지 ‘야영체험’을 했더라면 문제의 상당 부분이 사전 차단됐을 것이라고 본다. 폭염 속에, 벌레가 우글거리는 상황에서도 이에 맞서는 다양한 대응책이 나왔을 것이다. 1년 전 열릴 예정이던 ‘프레잼버리’가 취소됐기 때문에 누군가는 거론했을 법한 데 그랬다는 얘기는 없다. 대신 들리는 얘기는 잼버리를 구실 삼아 외유성 해외출장을 100차례 가까이 다녀왔다는 것뿐이다.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상당수 공직자들이 ‘신분보장’에 안주한 채 ‘배째라’식의 근무행태를 보인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나왔다. ‘사후책임’의 위험을 회피하겠다는 ‘보신주의’의 만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특히 이번 잼버리 조직위의 경우는 중앙정부 공무원과 야당 출신이 단체장인 지자체 파견 공무원이 뒤섞이다보니 서로 미루고 제 역할을 하지 않은 사례가 잦았다고 한다,

진부할 수도 있지만 공무원들의 이러한 ‘복지부동’에 대해서는 ‘신상필벌(信賞必罰)’의 확립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선거에 의한 권력교체에 따라 빈발하고 있는 공직사회의 ‘줄서기’ 행태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의욕적으로 일을 해보려다 발생한 문제, 즉 ‘설거지를 하려다 접시를 깨트리는’ 행위는 면책 대상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하고 있다. 업무를 태만히 해 피해를 일으킨 행위는 반드시 문책하는 풍토를 확실히 다지는 일의 당위성은 말할 것도 없다.

한 때는 ‘복지안동’(伏地眼動)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땅에 납작 엎드려 눈치만 살피는 공직자의 행태를 비꼬는 조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낙지부동’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낙지처럼 찰싹 붙어 꼼짝 않는다는 뜻이다. ‘예멘·시리아 사건’ 담당이 바로 그랬다. 감사원이 잼버리 파행에 대한 본격적인 감사에 들어갔다. 책임소재를 낱낱이 파헤쳐 문제 공직자들이 정말 “악”소리를 지를 만큼 엄중한 문책을 받도록 했으면 한다. 새만금 잼버리가 공직사회를 확실히 다잡는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계기가 된다면 황당하고도 어처구니없는 일의 반복으로 생긴 국가적 상처도 상당 부분 가실 것이다.

<필자 소개>

김명서(clickmouth@hanmail.net)

-서울이코노미뉴스 부회장

-전 서울이코노미뉴스 대표, 주필

-전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실장

-전 서울신문 편집담당 상무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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