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喪思哀(상에는 슬픔을 생각해야)’…아직은 추모와 위로가 먼저다
‘喪思哀(상에는 슬픔을 생각해야)’…아직은 추모와 위로가 먼저다
  • 김명서
  • 승인 2022.11.20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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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의 정치화’는 자칫 ‘정치의 참사화’ 부를 것이라는 경고 새겨들어야

[김명서 칼럼] 어차피 불가항력의 수순이었던가. ‘이태원 참사’는 어느덧 정치적 다툼의 깊은 수렁 속에 빠지고 말았다. 거짓‧왜곡 주장과 구호가 난무하는 가운데 생때같은 숱한 젊은이들의 죽음에 대한 아픔은 뒷전으로 밀렸다. 공동체적 추모 분위기도 옅어지면서 책임 공유와 치유 노력, 그에 맞춘 대책 등이 공론의 중심에서 사라졌다.

‘재난의 정쟁화’를 주도하는 세력에게 참사 발생 직후부터 이어진 우려와 경고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국가적 참사는 갈등을 증폭시켜 분노의 에너지를 극대화하는 절호의 기회이고 수단인 것처럼 보인다. 목적은 ‘정권 퇴진’ 등 정치적 이익 쟁취다.

이번 주말에도 서울 도심에서는 “퇴진이 추모다”라고 외치는 진보단체들의 촛불집회가 열렸다. 집회는 1주일 전과 비슷한 형태로 진행됐고, 앞으로도 주말마다 계속할 것이라고 한다. 참사 전부터 주장해온 '김건희 특검·윤석열 퇴진‘에다가 참사와 관련한 윤 대통령의 책임 문제를 덧씌웠다. 추모는 수단이고 퇴진이 목적인 것처럼 보인다.

‘재난 정쟁화’의 중심은 민주당이다. 이미 국정조사와 특검 도입을 요구하는 범국민 서명운동에 나선 상태다, 의석수 절대 다수당으로서 국회에서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을 장외로 끌고 나간 것이다. 이태원 참사를 빌미로  전방위적 정권 흔들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이태원 참사를 제2의 세월호로 만들어가려는 듯한 모습을 보여 왔다. 대중적 분노를 자극해서 정권에 치명상을 주고 지지 기반을 더욱 다지겠다는 의도 때문이다. 

“어떻게 이름 없는 곳에 분향?…문상객이 상주 나무라는 격”

참사 초기부터 민주당 내부에서는 ‘제2의 세월호 사태’로 규정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이어 희생자 전체 명단과 사진을 공개해 추모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재명 대표는 “어떻게 이름도, 얼굴도 없는 곳에, 온 국민이 분향하고 애도하는가”라며 이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유족의 동의 없는 개인 정보 공개는 불법이라는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대표의 언급에 대해 한 언론인은 문상객이 상주 나무라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국민의힘은 “국민적 슬품을 이용해 정치적 셈법만을 따지는 저열한 행태에 소름이 끼칠 정도”라고 비난했다.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죽음의 정치 이제 그만 하시라”라고 SNS에 올린 짧은 글로 모든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지적할 필요 없이 이태원 참사와 세월호 사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차이가 많다. 무엇보다 세월호 사태는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변질된 탓에 다수인들에게 불편함의 대상이 돼 버린지 오래다. 일부 정치인과 시민단체의 전유물처럼 다뤄지면서 아예 건드리지 말아야 할 금기어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애도는 특정 진영의 배타적 특권이 됐고, 그렇지 않은 쪽은 추모할 권리마저 박탈당하고 아예 ‘가해자’ 취급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일까. 한 친야 성향 인터넷 매체가 얼마 전 저지른 희생자 명단 공개의 ‘역풍’이 만만치 않다. 대표적으로는 민주당에 대한 여론조사 지지율의 답보 또는 하락 추세가 꼽힌다. 대형 재난재해 사고가 발생하면 여당 지지율은 추락하고 야당은 상승하는 것이 통상적인 추세였지만 이번에는 양상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여론의 반발이 심상치 않다고 여긴 듯 민주당의 한 의원은 “유가족의 슬픔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 태도는 있어서는 안 된다”면서 당 지도부의 입장 표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내부 균열 조짐마저 불거짖고 있는 것이다.

여론 악화에는 참사의 정쟁화로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덮으려는 정치적 계산이 담겨 있다는 여권의 공격이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여당은 이 대표가 자신의 정치적 몰락을 막기 위해 비극적 죽음을 악용하고 있다고 맹공을 퍼부어왔다. 희생자 명단 공개 주장 등이 “애도(哀悼)가 아니라 정치적 이익을 위한 매도(賣渡)”라고 몰아붙였다.

희생자 명단 공개는 유족 고통 도지게 하는 ‘비수 꽂기’

역풍은 죽음에 대한 예의와 공감을 소홀히 한 데 대한 반작용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것 같다.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어느 사회에서나 산 사람이 죽은 이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기본질서라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유교적 전통 때문인지 그 정도가 심했다. 머나 먼 옛날 얘기이긴 하지만 한겨울에도 삼베옷을 입고 사는 등 산 사람들의 일상이 잠식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사회적 참사를 특정 목적 달성에 악용하는 것은 우리네 마음속에 뿌리내린  본질적 규범을 건드리는 비인간적 행위다. 특히 희생자 명단 공개는 이를 원치 않는 유족들에게는 참담한 슬픔과 고통을 다시 도지게 하는 비수 꽂기와 다름없다.

논어에는 ‘祭思敬 喪思哀 其可已矣(제사경 상사애 기가이의)’라는 문구가 나온다. 선비가 반드시 지켜야 덕목들이다. ‘제사에는 공경을 생각하고, 상에는 슬픔을 생각하라, 그 정도면 된다’라는 뜻이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날이 지난 달 29일. 이제 3주밖에 지나지 않았다. 49재가 다음달 17일이다. 아직은 인간애와 측은지심을 우선해야 할 시기다.

더 이상 비극을 정쟁에 이용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비극의 의미를 축소하는 일도 없어야겠지만, 참사를 정치적으로 악용해 갈등을 부추기는 일은 멈춰야 한다. 지금은 가신 분을 추모하고 남은 사람을 위로하며,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참사의 정치화’는 자칫 ‘정치의 참사화’를 부를 것이라는 경고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필자 소개>

김명서(clickmouth@hanmail.net)

-서울이코노미뉴스 부회장

-전 서울이코노미뉴스 대표, 주필

-전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실장

-전 서울신문 편집담당 상무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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