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공급 감축 이후 유럽 각국 가스 확보 경쟁 더욱 치열
[서울이코노미뉴스 정세화 기자] 최근 가스·전력 도매가격이 치솟으면서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의 부실 위험이 더욱 커지고 있고 이에 따라 공공요금 인상 여부에 대한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가스 도매가격은 가스공사가 전국 34개 도시가스사에 공급하는 가스가격이다. 전기 도매가격은 한전이 한국수력원자력 등에서 전기를 사들이는 가격이다.
5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가스공사의 9월분 가스 도매가격(열량단가)은 Gcal(기가칼로리)당 14만4634원으로 지난달보다 13.8% 상승했다. 이는 지난해 동월의 2.4배 수준이며, 2년 전인 2020년 9월 대비로는 4.3배에 달한다.
가스 도매가격은 6월 7만7000원에서 7월 9만1000원, 8월 12만7000원에 이어 9월 14만원 수준으로 계속 급상승 하고 있다.
특히 최근 러시아가 유럽으로 향하는 천연가스 공급을 감축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유럽 각국의 가스 확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가스 가격이 치솟고 있는 것이다.
가스 도매가격이 오르면서 전력 도매가격도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전력 도매가격에는 여러 에너지원 중 가스 가격이 가장 크게 반영된다.
한전이 발전사에서 전력을 사 올 때 적용되는 전력 도매가격(SMP·계통한계가격)은 이달 2일(육지 기준) kWh(킬로와트시)당 245.42원을 기록해 사상 최고였다.
최근 증권사들이 전망하는 한전의 올해 연간 영업손실 규모는 평균 28조8423억원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30조원을 훌쩍 넘길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한다. 한전은 이미 상반기에 14조3천33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상태다.
또 가스공사가 원료를 비싸게 들여왔지만 저렴하게 팔면서 누적된 손실(미수금)은 6월 말 현재 5조1000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말만 해도 미수금은 1조8000억원 정도였다. 7월 이후에도 가스 가격이 계속 상승한 것을 고려하면 미수금 규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도시가스 요금은 발전 원료인 액화천연가스(LNG)의 수입단가인 원료비(기준원료비+정산단가)와 도소매 공급비로 구성되는데 연료비에 연동되는 기준원료비의 경우 현재 원료 구매비의 절반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가스공사와 한전은 눈덩이처럼 커지는 부실을 해결하기 위해 8000억원 규모의 영구채 발행과 부동산 자산 재평가를 통한 7조원 규모의 자본확충 계획을 정부에 각각 제출했으나 부실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전은 부동산 자산 재평가를 통한 자본 확충과 함께 석탄발전 가동 확대, 한전기술 지분 매각, 자동이체 요금할인 폐지 등 14조원 규모의 '2022~2026년 재정건전화계획'을 기획재정부에 최근 제출했다.
한전과 가스공사의 적자를 줄이려면 연료비가 오른 만큼 전기와 가스의 판매 가격을 인상해야 하지만 최근의 물가 상황을 고려하면 마냥 올릴 수만은 없다는 것이 정부 고민이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전기·가스·수도의 물가상승률은 전월과 똑같은 15.7%를 기록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이는 관련 조사가 시작된 2010년 1월 이후 최고치다.
특히 수도를 제외한 지난달 전기료와 도시가스 상승률은 18.2%와 18.4%에 달했는데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7%인 것을 고려하면 3.2배나 높은 수준이다.
이처럼 공공요금의 물가 상승률이 높은 상황이어서 가스공사와 한전의 부실을 줄이기 위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가스·전기요금 인상은 쉽지 않은 현실이다.
더욱이 다음 달 도시가스 요금 중 정산단가와 전기요금 중 기준연료비의 동시 인상이 예정돼 있어 10월에는 두 공공요금의 물가 상승률이 20%를 넘을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가스·전기요금을 통한 가스공사와 한전의 부실을 해소하기 위해 소폭의 공공요금 인상이 수년에 걸쳐 진행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