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코노미뉴스 김태일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국 기업들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중국 통신장비 제조업체 화웨이와 동영상 공유 서비스 틱톡을 연일 때리다 최근에는 중국의 대표적 모바일 메신저 위챗에 대한 제재마저 시사한 데 이어 이번엔 ‘회계’ 문제를 건드리며 제재 대상을 확대하는 모양새다.
로이터 통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재무부 관리들이 미국 증시에서 주식을 거래하면서 회계감사 자료를 미국 규제당국에 공개하지 않는 중국 기업들의 상장을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6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의 워킹그룹(실무를 담당하는 협의단)은 SEC에 2022년 1월까지 회계감사 자료를 미 규제당국에 제출하지 않는 중국 기업을 상장폐지 하도록 권고했다고도 전했다.
이 지침이 적용되면 미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시장에 상장돼 있는 중국 기업들은 정해진 기한까지 미국 상장회사회계감독위원회(PCAOB)에 회계감사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상장 예정 기업도 기업공개 전 이 지침을 따라야 한다.
여태껏 미국 회계 기준을 지키지 않았던 중국 기업들을 일괄적으로 미국 증시에서 내보내겠다는 사실상 ‘최후통첩’이다. 미국이 ‘중국 때리기’의 수위를 점차 높이면서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날로 경색되는 분위기다.
다만 이번 조처가 갑작스럽게 단행된 것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규제에서 비껴서 있는 중국 기업들로부터 미국 투자자들을 보호할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이번 방안 역시 지난 6월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을 시작으로 마련됐다. 앞서 5월 미 의회가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중국 제재 법안과도 그 내용이 유사하다. 해당 법안은 중국 기업이 미국의 회계감사 및 규제를 따르지 않으면 미국 증시 상장을 막는다는 게 요지다.
미국 국무부는 미국과 중국이 2013년 맺은 양해각서(MOU)인 ‘강제집행 협력 합의’도 조만간 폐지한다는 방침이다.
해당 양해각서에 따라 중국 기업은 미국 증시 진입이 수월해졌다. 중국 기업이 미국의 회계 관련 규정 준수 의무가 면제됐기 때문이다. 중국의 회계 규정만 따르면 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조사를 받아야 할 중국 기업에 대해 PCAOB가 직접 조사를 실시할 수 없고,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CSRC)로부터 자체 조사 내용을 통보받을 수만 있게 된 점이다.
이 탓에 양해각서가 중국 기업이 미국 회계 규칙과 공시 규정을 면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미국 내 비판이 일었다. PCAOB가 중국 회계 법인들을 조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CSRC가 자국법이나 이익을 이유로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사례도 잇따랐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들에 ‘깜깜이 회계’를 허용하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문제제기도 나왔다.
중국 기업의 불투명 회계 문제는 앞서 지난 4월 루이싱커피의 회계부정 의혹 사건을 계기로 불거졌다. 회사 특별위원회 조사 결과, 루이싱커피는 지난해 2~4분기 허위 거래에 따른 매출액 규모가 22억위안(약 38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3분기 매출액이 29억2900억위안(약 5000억원)인 만큼 절반이 훌쩍 넘는 매출이 조작된 셈이다. 관련자들은 정직·휴직 처분을 받았고, 루이싱커피는 결국 나스닥에서 상장폐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