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관측 "채권단,금호측 거부" "현산 '노딜' 명분 쌓기"
[서울이코노미뉴스 윤석현 기자]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에 재실사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채권단과 금호산업측이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현산의 재실사 요구를 '노딜(인수 무산) 명분 쌓기'로 보는 한편 채권단과 금호산업이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바라보고 있다.
27일 금융권과 재계에 따르면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은 구체적인 언급은 피한 채 채권단인 산업은행의 반응을 바라보고 있다. 현산이 전날 보도자료에서 "계약상 진술 및 보장이 중요한 면에서 진실, 정확하지 않고 명백한 확약 위반 등 거래종결의 선행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인수를 포기하는 과정과 벌써 겹쳐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은 그동안 딜 클로징(종료)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산업은행은 현산의 입장표명에 마뜩치 않아 하면서도 이날 대책회의를 열고 현산의 재실사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논의했다. 일단 검토하며 재협상 여지를 열어둔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채권단과 금호산업이 현산의 재실사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현재 코로나로 항공업계가 직격탄을 맞으며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상황이 한층 열악해진 만큼, 현산이 재실사를 통해 인수가치를 재산정할 경우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올해 1분기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6280%로, 전 분기(1387%)의 4.5배에 달한다. 부채는 전 분기 12조5951억원에서 13조2041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자본 잠식도 심각한 상태다.
채권단은 무엇보다 재협상을 위한 새로운 조건을 내놓으라는 요구에 현산이 응하지 않다가 재실사 카드를 꺼내 든 것에 불편한 기색이다. 채권단은 해외 국가들의 기업결합심사 승인 등 거래종결의 선행조건이 충족됐다는 입장이기에 현산 측의 재실사 요구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현산의 요구대로 8월 중순부터 12주 동안 재실사에 들어가면 구주 매각 대금으로 그룹 재건에 나서야 하는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은 '희망고문' 속에서 연말까지 버텨야 한다. 재실사 이후 현산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나선다면 다행이지만, 인수 대금을 깎거나 정부의 추가 지원을 받아내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재실사 후 끝내 발을 뺄 여지가 크다.
현산의 재실사 요구가 결국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계약 무산시 예상되는 2500억원 규모의 계약금 반환 소송에 대비한 명분을 쌓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현산이 그동안 태스크포스를 꾸려 아시아나항공 본사에 상주시켰던 점을 고려하면 재실사 요구는 사실상 딜을 깨기 위한 명분 쌓기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채권단은 재실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결국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게 고민의 핵심이다. 현산의 재실사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사실상 현산에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 명분을 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채권단은 일단 협상 주체들과 다각적인 대책을 모색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계약 파기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감안하며 대책을 숙의하고 있다. 산은 최대현 기업금융부문 부행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인수협상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대비책을 가져갈 수밖에 없다"며 "협의가 진전이 안됐는데 '플랜B'는 언급하기는 어려우나 인수를 포기하면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모든 부분을 열어놓고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결국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무산되면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 관리체제 아래 놓일 것으로 관측된다. 이 경우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의 영구채 8000억원을 출자 전환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한동안 채권단 관리체제가 유지되다가 시장상황이 좋아지면 재매각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통매각 대상이었던 자회사 에어부산과 에어서울 등의 분리 매각도 대안으로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