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코노미뉴스 정우람 기자] NH농협은행 손병환 행장이 취임 3개월 맞는다. 손 행장은 지난 3월 말 예상을 깨고 전임 이대훈 행장의 바통을 이어받았으나 그 어느 때보다 어깨가 무겁다. 갑작스러운 CEO 교체로 조직이 흔들리는 가운데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의 취임 이후 다시 부각되고 있는 지배구조 불안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전임자 못지 않은 성과를 창출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농협은행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히는 것은 조직 불안정이다.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의 취임 이후 갑작스럽게 중앙회 임원들과 계열사 대표들이 대거 교체되자 농협 내에 전체적으로 이 회장의 무리한 ‘친정 체제’ 구축이라는 비판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특히 농협은행의 경우 이대훈 전 농협은행장이 새 임기를 시작한 지 2개월 만에 자리를 떠나게 돼 그 파장이 다른 곳보다 큰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행장은 지난해 1조517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두며 역대 최고 실적을 경신했고 이를 바탕으로 농협은행 역사상 처음으로 3연임에 성공했다. 이전의 행장들은 농협의 전통에 따라 실적과 관계 없이 2년의 임기 만을 수행해 왔다.
3연임 확정 당시 업계 일각에서는 농협에도 성과 중심의 평가문화가 정착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으나 이 전 행장의 갑작스러운 사퇴로 다시 농협중앙회에 따른 지배구조의 불안정성이 노출됐다. 결과적으로 이 전 행장의 3연임은 차기 중앙회장 취임 때까지 임기를 유예한 것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던 것이다.
문제는 농협은행 비롯한 농협금융지주사 CEO 인사가 사실상 새로 취임한 농협중앙회장의 ‘전유물’
문제는 농협은행을 비롯한 농협금융지주 계열사들의 최고경영자(CEO)인사가 사실상 역대 농협중앙회장의 ‘전유물’이 돼 왔다는 점이다. 올해 들어서도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났다.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이 새로 취임하자, 이대훈 농협은행장을 비롯해 7명의 농협 계열사 대표가 자리에서 물러났다. 농협금융지주가 탄생한 지 8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농협은 ‘철밥통’ 또는 ‘철옹성’처럼 변화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손병환 행장은 영남권 출신이다. 경기 지역 출신인 이성희 신임 농협중앙회장이 당선되는 데 영남권 및 충청권은 결정적 지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진다. 따라서 이 회장이 영남권에 보내는 사실상 ‘보은(報恩)’인사라는게 농협 주변의 분석이다.
최근 농협금융지주가 자회사 CEO의 2년 임기를 보장해 책임경영체제를 강화하기로 한 것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다. 금융당국이 NH농협금융지주의 1년 단위 단기 인사방식을 놓고 문제점을 지적한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NH농협금융지주에 자회사 지배구조를 놓고 경영유의 및 개선사항을 통보했다. 금융감독원은 NH농협금융지주가 2017년부터 NH농협은행과 NH농협생명보험, NH농협손해보험, NH농협저축은행, NH농협캐피탈 등 5개 자회사의 대표이사를 선임할 때 임기를 1년으로 단축해 통보해 온 것은 잘못이라고 봤다.
금감원, NH농협금융지주에 자회사 지배구조 경영유의 및 개선사항 통보...농협중앙회장 의사가 변수
NH농협금융지주 자회사들의 중장기적 경영과 책임경영 체제 확립을 위해서는 최고경영자들의 임기를 합리적으로 만들 필요성가 있다는 지적은 계속 제기돼 왔다. 하지만 NH농협금융지주 자회사 최고경영자의 거취가 농협중앙회장의 의사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점이 문제다.
농협 내에서는 농협중앙회장이 새로 당선되면 인사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계열사 최고경영자들이 일괄적으로 사표를 내는 것이 관례다.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이 1월 취임한 뒤 이대훈 전 NH농협은행장을 비롯해 계열사 대표들과 중앙회 임원들이 3월 대규모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김병원 전 농협중앙회장도 2016년 취임한 뒤 농협중앙회 및 금융지주 계열사 임원들로부터 사표를 받았다.
문제는 또 있다. 앞으로 4년 뒤면 새로운 농협중앙회장이 선출된다. NH농협금융지주가 2년 임기를 보장하더라도 농협중앙회장 선거에 따라 다른 인물이 새로 회장이 선임된다면 취임 시기에 따라 계열사 대표가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농협금융지주가 잘 되려면 본래 설립 취지대로 운영돼야만 금융그룹으로 기능을 할 수 있다”면서 “농협중앙회장이 사리사욕을 버리고 금융그룹의 가치를 올려줘야 당당하게 다른 금융지주와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