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코노미뉴스 김태일 기자] #1 공항 면세점에서 일하는 ㄱ씨는 최근 회사로부터 권고사직과 무급휴직 중에서 선택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회사를 나갈 수는 없으니 사실상 무급휴직 처분이다. ㄱ씨가 두 선택지 모두를 거부하자 면세점은 왕복 3시간 거리의 지방 물류센터로 발령을 내버렸다.
#2 직장인 ㄴ씨는 회사로부터 실업급여 지급을 챙겨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퇴사를 결정했다. 하지만 회사는 정부지원금을 수령하고 있는 상태라 자진 사퇴가 아닌 권고 사직을 시킬 수 없다고 말을 바꿔 결국 실업급여를 못받게 했다.
#3 직장인 ㄷ씨는 코로나19를 빌미로 무급휴직 동의서에 서명을 강요했다. ㄷ씨가 거절하자 회사는 곧 폐점될 매장으로 인사발령을 냈다. 해고와 다름없는 처분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이처럼 무급휴직이 표준이 돼가는 모양새다. 부당하게 해고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4월 사업체노동력조사결과에 따르면, 무급휴직자가 포함된 ‘기타이직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만명 증가한 15만8000명을 기록했다. 174%가 는 셈이다.
문제는 무급휴직 과정이 대부분 탈법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노동건강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비정규직 없는세상만들기 등으로 구성된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달부터 이달 초까지 제보 받은 무급휴직·자진퇴사 사례를 7일 공개했다. 위 세 가지 사례가 대표적이다.
근로기준법은 휴업 기간 동안 평균임금의 70%까지 노동자에게 휴업수당을 지급하도록 규정한다. 그 미만을 주기 위해서는 사업주가 부득이한 사유를 제시해 노동위원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하지만 코로나19를 이유로 이 절차는 생략되고, 사실상 강요의 형식으로 노동자 동의를 얻어내 무급휴직을 실시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심지어 코로나19 국면에서는 휴업수당의 90%를 정부가 고용유지지원금으로 보전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나머지 10%조차 주기 싫어 무급휴직 체제로 전환해버리는 사업주들이 많다는 게 직장갑질119의 설명이다. 그마저도 초단시간 및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등은 혜택에서 제외돼 있어 고용안전 사각지대 놓인 이들의 처지는 더욱 열악하다.
더 큰 문제는 현실적으로 노동자에게 무급휴직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당한 사유가 없는 전보·전배·전근·전직 등의 인사발령은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하지만 ㄱ씨의 경우처럼 무엇을 골라도 손해 보는 식으로 선택지를 주고, 이를 거부하면 무급휴직 처분을 내리는 행태가 만연해 있다.
이뿐만 아니다. 노동자를 해고해 놓고 정부의 인건비 지원은 그대로 타내기 위해 노동자의 자진퇴사로 꾸미는 경우도 상당수였다. 회사의 권고사직으로 노동자를 해고하면 정부 지원금이 끊기기 때문이다. 이 경우 노동자는 고용보험을 들었어도 실업급여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직장갑질 119는 “노동자들은 언제 해고되고 채용되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며 만연한 ‘깜깜이 해고’를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연결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정부가 고용보험 밖 1401만 취업자 중 최대 848만명으로 추산되는 임금노동자를 고용보험 임시가입자로 편입해 고용유지지원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