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풍연 칼럼] 교육은 국가백년지대계라고 한다. 백년 앞을 내다보고 정책을 짜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우리 정부가 하는 것을 보면 100년은 고사하고, 10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 한마디에 정책이 급조된 느낌이 든다. 자사고, 외국어고, 국제고 일괄폐지가 그렇다. 이들 학교에 다니는 학생과 학보모 등은 하루 아침에 날벼락을 맞았다.
그 과정을 한 번 보자. 문 대통령은 지난 달 25일 열린 교육관계장관회의에서 자사고 외국어고 국제고를 교육 불평등의 주원인으로 꼽았다. 이를 시정하라는 지시였다. 그러자 교육부가 바빠지기 시작했다. 교육부는 7일 시행령 개정을 통한 자사고 일괄 폐지 계획을 밝히기 이틀 전 급조한 학생부종합전형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이들 특수고가 고교 서열화의 근원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과 같은 기조를 유지했다.
수십년 간 이어온 이들 학교의 정책이 불과 10여일 만에 바뀐 것이다. 무어라고 할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다는 말이 생각난다. 전광석화다. 졸속일 수밖에 없다. 제대로 가다듬을 수 있었겠는가. 우선 시간적으로 불가능하다. 학생부종합전형 실태조사는 졸속 그 자체다. 그것을 발표하는 교육부차관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논리가 빈약했기 때문이다.
전북 전주에 있는 상산고. 수험생의 필독서로 여겨지는 ‘수학의 정석’ 저자인 홍성대 이사장이 사재 수백억원을 내서 1980년 11월 26일 설립한 학교다. 홍 이사장은 학교를 설립한 이후에도 한 해 20억~30억원의 전입금을 학교에 투자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은 재정적 도움은 없다. 그럼에도 전국 최고의 학교로 만들었다. 순전히 홍 이사장의 열정과 지원 덕분이다. 그 결과는 서열화의 주범으로 찍혔다.
홍 이사장은 “정부 지원금을 받지 않고 개인 출연금으로 좋은 학교를 운영하겠다는데 이를 정부가 가로 막고 있는 것”이라며 “왜 사학을 했는지 후회스럽다”고 했다. 이어 “이런 여건에서 사학을 운영한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나 싶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지금 사회 분위기는 홍 이사장 같은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가고 있다.
홍 이사장에게 다른 목적이 있었으면 번듯한 대학을 설립하든지, 대학을 인수했을 것이다. 그 돈이면 충분했다고 본다. 그러나 고향에 좋은 학교를 만들어 보려고 자립형 사립고를 세웠던 것. 지역의 우수한 인재를 배출한 것도 사실이다. 전국적 명문고로 발돋움했다. 반면 전북교육청으로부터는 미움을 샀다. 지난 6월 자율형사립고 재지정 평가에서 전북교육청으로부터 기준 점수인 80점에 0.39점 못 미치는 79.61점을 받아 지정 취소 처분을 받았던 게 그것이다.
그 뒤 교육부의 부동의 결정을 받아 기사회생하는 듯 했으나 또 다시 더 큰 폐지 결정을 받기에 이르렀다. 무엇이 정상인지 묻고 싶다. 공정과 불공정이 헷갈리기도 한다. 정부의 근시안적 교육 정책에 교단이 흔들린다. 누굴 믿으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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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오풍연/poongyeon@naver.com
약력
서울신문 논설위원,제작국장, 법조대기자,문화홍보국장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대경대 초빙교수
현재 오풍연구소 대표
저서
‘새벽 찬가’ ,‘휴넷 오풍연 이사의 행복일기’ ,‘오풍연처럼’ ,‘새벽을 여는 남자’ ,‘남자의 속마음’ ,‘천천히 걷는 자의 행복’ 등 12권의 에세이집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