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서 칼럼] 꿩은 위험에 쫓기면 수풀에 머리를 처박는다. 눈앞이 캄캄하니 제대로 몸을 숨긴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TV 자연 다큐 프로에서도 간혹 나오는 꿩의 독특한 습성이다. ‘머리 박은 꿩’. 감추고 싶고, 안보고 싶은 상황에서 어리석게 도피하는 모습을 빗댈 때 힐난조로 쓰는 말이다.
포항 지열발전소 문제를 대하는 정부 쪽 모습이 그에 진배없다. 2017년 11월 16일에 발생한 규모 5.6의 포항 강진. 정부조사연구단은 지난 20일 1년 남짓 걸린 조사활동을 마무리하면서 그 원인으로 지열발전소를 지목했다. 천재가 아닌 인재, 즉 사람의 잘못 때문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면 책임은 지열발전소에 연루된 인적 구성원들이 질 수밖에 없다. 특히 사업 주체가 정부이니만큼 추궁의 화살이 관련 부처 쪽으로 쏠리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정부 쪽은 딴청을 부리고 있다. 지열발전소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을 피하며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경우에 나올 법한 의례적인 사과조차 없다. 마치 책임질 일이 없다는 투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5일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신청했다. 자체 조사는 신뢰성이 떨어질 테니 감사원에 책임소재를 가려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스스로 벌을 받겠다고 자청한듯하지만 실제는 요식행위에 가깝다. 포항 지열발전소와 관련한 감사는 지난 해 11월 포항시민들이 국민감사를 신청함에 따라 이미 예고된 수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사 결과를 기다릴 것도 없이 상식의 눈높이로 보더라도 정부의 잘못은 여러 대목에서 드러나 있는 상태다. 포항 지열발전소가 국책사업이라는 것에서부터 원초적 책임이 있다. 국책사업은 ‘국가가 그 목표를 설정하여 관리, 추진하는 대규모 연구개발 사업’을 일컫는다. 민간기업이 사업을 주관하더라도 이를 감독하고, 관리하는 것은 국가 몫이다. 궁극의 책임은 국가가 져야 한다.
포항 지진, 경고음 수 차례 반복에도 묵살-방조-태만으로 일관
그런데 실상은 어떠했는가. 지진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경고가 오랜 기간에 걸쳐 계속 반복됐지만 제대로 점검하고 적절하게 조치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묵살과 방조, 태만, 그리고 책임 회피의 흔적만 뚜렷할 뿐이다.
지열발전소가 시운전에 들어간 2016년 1월 이후가 특히 심각했다. 시추 구멍에 물을 주입하면서 크고 작은 지진이 63차례나 발생했지만, 별도의 원인 파악이나 대책 마련 없이 공사는 계속됐다. 특히 2016년 9월 12일에는 포항에 이웃한 경주에서 규모 5.1, 5.8의 강력한 지진이 잇따라 발생했다. 그리고 2017년 4월에는 지열발전소 인근 지역에서 규모 3.2의 심상치 않은 지진이 발생했다. 그렇다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공사를 중단하고 정밀조사에 나서야 했다. 그런데도 중단은커녕 물 주입은 2017년 9월까지 모두 5차례 이어졌다.
돌이켜보면 경주지진만으로도 온 나라가 술렁거렸다. 너나없이 정말 큰 지진이 들이닥칠 가능성을 걱정해야 할 만큼 충격이 컸다. 그렇지만 경주 지진은, 정부나 민간이나 불가역적인 자연 지진이겠거니 하며 그냥 넘어갔다.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는 포항의 지열발전소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 때라도 제대로 챙겨 봤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정부조사연구단의 총괄책임자를 맡았던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이강근 교수는 며칠 전 인터뷰에서 “2017년 4월 규모 3.2 지진이 발생한 이후라도 물 주입을 중단했더라면 비극은 막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정부의 무사안일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정부 관계자들이 지진 위험의 경고음을 간과한 이유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처음에는 묵살했고, 그 다음에는 “설마”했고, 막상 일이 터지니까 “나 몰라라” 했다는 추정은 가능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포항 지진이라는 엄청난 재난이 닥친 이후에는 진실 은폐를 시도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지열발전소를 원인으로 의심하는 목소리는 깔아뭉개고, 자연지진 쪽으로 몰고 가려 했다는 것이다. 지난 해 4월 국제 학술지에 포항 지진이 지열발전소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이진한 교수의 언론 인터뷰에도 그러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 교수는 “외국 학계에서는 자연지진이 소수의견이었는데, 국내에서는 대다수가 자연지진을 지지해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진을 잘 모르는 교수가 황당한 소리를 하고 있다는 정부 관계자와 연구자들의 비난도 들려왔다”고 털어놓았다. 완곡한 표현이지만 정부 쪽의 압박이 대단했음을 짐작케 한다.
지진 눈앞에 두고 태연하게 넘어간 ‘안전불감증’ 이해할 수 없어
이제 정부 쪽 관계자들의 잘못은 어떠한 변명을 하더라도 문책을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기에는 드러난 것도 너무 많고, 피해도 ‘감당 불가’라고 할 만큼 컸다.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는 지진을 앞에 두고, 어떻게 그처럼 흔들림 없이, 태연하게 넘어갈 수 있었는지, 그 담대함을 이해할 수 없다. ‘안전 불감증’ 정도로 진단내리기엔 그 피해가 너무 심각했다. 국민을 ‘실험 대상’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비난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정부 관계자들도 가능한 한 피하고, 감추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수풀에 머리를 처박은 꿩처럼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자기주문을 되새기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잘못이 드러나면 시인하기보다 덮고 가려는 게 공무원의 속성이라고 한다. 그러다보면 호미로 막을 일이 가래로도 막을 수 없도록 커지기도 한다. 포항 지진은 인재다. 여기에는 공직사회에 만연한 방임과 방조, 무책임과 직무유기, 책임회피 등이 뒤엉켜있다. 이를 그대로 두면 포항지진 이상의 엄청난 사태가 들이닥칠 수도 있다.
철저한 진상규명은 당연하고 그에 맞춰 엄중한 처벌이 가해져야 한다. 일벌백계란 바로 이럴 때 필요한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내팽개친 잘못을 저지르면 얼마나 가혹한 처벌이 가해지는지 분명하게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 꿩 잡는 게 매라고 했다. 우리 모두가 매의 날카로운 눈과 발톱이 되어 ‘책임 실종’에 대한 문책 과정을 감시하며 독려해야 한다.
‘권한 있는 곳에 책임 있다’. 공직사회에서 자주 쓰는 말이다. ‘피한다고 책임이 덮어지지 않는다’는 말 역시 그렇다. 포항지진을 반면교사로 삼아 거듭 되새겨야 할 금언이다.
<필자 소개>
김명서(clickmouth@hanmail.net)
-전 서울신문 정치부장, 사회부장, 논설위원
-전 서울신문 편집담당 상무
-전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실장
국민 생명 팽개친 잘못, 일벌백계로 엄중처벌 본때 보여주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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