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서 칼럼] 지난 해 6.13 지방선거에서는 곳곳에서 드론(무인항공기)이 출현했다. 상당수 기초단체장 후보들이 드론을 4차 산업혁명 관련 공약으로 내세운 것이다. 드론 전용 경기장 건립 ,국제 드론대회 유치, 드론 복합단지 건설 등 공약 내용은 비슷했다.
배경은 이랬다. 모 정당 몇몇 후보의 공약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지인에게서 들은 얘기다.
당시 선거의 핵심 주제어는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를 빼놓고 미래와 비전을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듯한 분위기였다. 여기에는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간 바둑 맞대결의 여파도 컸다. 그러다보니 광역, 기초단체를 가리지 않고 선거 캠프마다 4차 산업혁명에 편승할 만한 공약 개발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 등을 뒤져 각종 자료와 문건을 섭렵하며 그럴싸한 ‘물건’ 찾기에 골몰했다고 한다.
그러나 기대했던 ‘작품’ 은 찾지 못했고, 그렇게 해서 내린 결론이 ‘속빈 강정’. 우리 4차 산업혁명의 현주소가 그랬다고 한다. 대통령직속 제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제시한 ‘청사진’마저도 각종 정책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했을 뿐, 구체적인 전략과 계획은 기대 이하였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내겠다는 확실한 ‘그림’이 안 보였고, 그러나보니 공약으로 내세울 만한 대상도 마뜩치 않았다고 한다.
몇몇 광역단체장 후보가 내세웠던 4차 산업혁명 단지 조성, 융합 신산업단지 조성등은 그런대로 성공작으로 평가받았다. 구체성에 상관없이 미래의 먹거리와 일자리로 인식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초자치단체 수준에서는 이 같은 공약마저도 언감생심.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이다보니 정부의 예비타당성 검사를 거쳐야 하는 등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치단체 자체 예산으로 추진할 만한 사업을 찾을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드론 공약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공약마저도 ‘첨단’이나 ‘미래’와는 사실상 거리가 멀었다. 가장 많이 등장한 공약이 드론 전용 경기장 건립일 정도로 공약 대다수가 시설 설치나 행사 유치 등 ‘아날로그’ 수준에 머물고 말았다. 후보들의 상상력 빈곤을 탓할 일은 아니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결과물이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을 만큼 4차 산업혁명 대비 상황은 그야말로 허허벌판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규제혁신 위해 과감한 네거티브 전략 절실
이러한 현실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비슷한 진단을 내리고 있다.
정재승 KAIST 교수는 얼마 전 신문칼럼을 통해 2016년 1월에 선언된 4차 산업혁명이 “이 땅에선 그 전조조차 보이지 않는다”면서 “지금 한반도는 고요한 혁명의 무풍지대”라고 꼬집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토할 정도로 많이 썼지만, 대부분 공허한 선언이자 레토릭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강조한 것이 규제혁신. “현재 상황은 규제를 한 두개 없앤다고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과감한 네거티브 전략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꼭 필요한 규제만 빼고는 모두 풀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태유 서울대 교수(산업공학)의 견해도 마찬가지. 4차 산업혁명은 김태유를 빼놓고 얘기하면 안된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은 정부가 정책과 제도를 통해 적극적으로 견인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규제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전문가들로 바꿔 규제를 근본적으로 혁파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민간을 능가하는 프로급 공무원들을 활용하면 시행 3년 안에 효과를 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규제를 권한과 동일시하는 공무원 인식이 문제
다른 전문가들의 지적까지 종합해보면 가장 시급한 과제는 규제 혁신으로 집약된다. 그리고 여기에는 정부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규제 개혁을 선도해야 할 공무원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는 익히 알려진 대로다.
규제를 공무원의 권한과 동일시해 막무가내로 지키려고 하는 것이 그 하나고, 사후 책임 문제에 대한 위험을 회피하겠다는 ‘보신주의’가 또 다른 이유다. 일부 시민단체의 규제 완화 반대 목소리를 핑계 삼아 개혁의 흉내만 낸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새해 들어서도 4차 산업혁명과 규제혁신에 대한 목소리는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대개는 이미 나왔던 정책과 구상들을 되풀이한 것일 뿐 새로운 내용은 거의 없다. 4차 산업혁명을 강조하는 것은 신산업, 신기술에 우리의 흥망성쇠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처럼 허송세월을 반복한다면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드론 경기장이 선거공약 미래첨단 항목의 대표주자로 등장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 드론마저도 중국이 세계 시장의 65%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규제에 묶여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중국은 저만치 앞서 가고 있다. 중국은 얼마 전 무인 달 탐사선 창어 4호를 달 뒷면에 착륙시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우리는 이미 기술력에서 일본과 중국의 샌드위치 신세라고 한다.
현재의 상황이 계속된다면 내년 총선에서도 드론 공약이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우버, 에어비앤비, 카풀, 원격의료 등 다른 종목들은 가능성이 희박하다. 참고로 지난 번 드론 관련 공약은 대부분 ‘말풍선’에 그치고 말았다.
<필자 소개>
김명서(clickmouth@hanmail.net)
-전 서울신문 정치부장, 사회부장, 논설위원
-전 서울신문 편집담당 상무
-전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