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서 칼럼]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공항 갑질’ 논란은 이제 진정 국면으로 들어선 것 같다. 김 의원이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 사과를 했고, 국회 국토교통위원 문제는 그만두는 것으로 정리가 됐다.
김포공항에서 신분증을 꺼내 보여 달라는 공항 보안요원의 요구를 거부하며 폭언을 퍼부어 파문을 일으킨 것이 20일 저녁. 그리고 사건이 보도된 게 22일 아침. 그 날 이후 김 의원은 고립무원이나 다름없는 처지에서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그처럼 험한 욕을 바가지로 먹은 것은 난생 처음이었을 것이다. 역지사지해 보면 그가 겪었을 곤혹스러움과 자괴심, 자책감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할수록 얼마나 한심하며, 스스로가 미웠을까. 더구나 상대는 ‘아들뻘인’ 새내기 직원이었으니…
그런데 아물어가는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것 같지만, 한 가지 대목 “야! 공사 사장에게 전화해”에 대해서는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공항에서 보좌진에게 했다는, 너무나 ‘국회의원스러운’ 소리다. 공·사 영역을 가리지 않고 걸핏하면 최고책임자부터 불러내려는 국회의 고질적인 행태와 일맥상통한다.
김 의원은 옥신각신 와중에서 직접 한국공항공사 사장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고, 실제로 통화를 했다.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보안요원의 사진을 찍었다. 공항공사는 김 의원이 소속한 국토교통위 피감기관이다. 본인의 위세도 과시하면서, ‘사장에게 얘기해 혼을 내주겠다. 각오해라’고 위협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김 의원은 이를 처음 보도한 매체와 통화에서 “공사 사장에게 직접 전화했고 바로 통화가 되지 않았지만 나중에 전화가 왔기에 ‘규정도 없이 근무자들이 고객에게 갑질을 하는데 정확하게 조사해서 조치하시라’고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치’를 당한 건 결과적으로 김 의원. 처참하게 되치기를 당한 모양새가 됐다. 소란을 피운데 따른 비난은 어쩔 수 없다 손 치더라도, 공사 사장을 찾으며 윽박지르지만 않았더라면 사태가 그렇게 확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해당 공항 직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사장님한테 전화를 한다니 너무 당황해서 규정책자를 제대로 읽기도 힘든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대기업 총수, 대표 걸핏하면 증인으로 불러 호통 치며 ‘갑질’
그러면 김 의원은 그 상황에서 왜 사장을 떠올렸을까. ‘국회의원이어서’가 정답일 듯싶다. 상당수 국회의원들은 피감기관 사장을 불러내는 것은 일도 아니고, 사장과 직거래를 해야 골치 아픈 문제도 쉽게 풀린다고 여기고 있다. 국회의 감시 영역 밖인 민간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문제만 생기면 불러내려고 한다. 높은 사람의 뜻이 경우에 따라서는 법이나 규정보다도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사회 풍토 때문일 수도 있다.
국정감사 철만 되면 대기업 총수나 대표를 증인으로 불러 호통을 치거나 모욕을 주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실무자를 불러도 될 사안인데, 굳이 최고 경영자를 증인명단에 넣는다. 그러나 막상 국감장에 출석하면 장시간 앉혀놓고 질문을 전혀 하지 않거나, 대답할 시간마저 주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렇다면 왜? 국회의원 본인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이를 디딤돌 삼아 ‘차후 활용’ 가능성을 열어두려는 의도 때문으로 여겨진다.
김 의원은 지난 6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초선의원이다. 기자로 치면 ‘수습’ 딱지를 뗄까 말까 하는 시기. 그렇지만 지난 번 국감을 통해 국회의원의 위세를 충분히 실감했을 것이다. 피감기관이 본인을 어떻게 대접하는지도 두루 경험했다. 의원의 호통에 최고책임자가 머리를 조아리고, 그 책임자의 지시에 조직원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야! 공사 사장에게 전화해”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수습은 수습. 사실 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채 엄한 사람을 난도질하는 기사를 썼다가, 감당키 어려운 오보 사태에 몰린 수습기자의 처지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책임이 수습기자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못 가르치고, 그런 기사를 그대로 내보낸 신문사가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김정호 사건’ 배후에는 고압적인 ‘국회 갑질’ 폐습 자리 잡아
김 의원이 행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그 배경에는 “야, 사장 나와”식의 고압적인 ‘국회 갑질’ 폐습이 자리 잡고 있다. 당연히 국회 쪽에도 책임이 있다.
김 의원 사건이 터진 이후 야당은 ‘자격 미달’ ‘반칙왕’ ‘특권과 반칙’ 등 표현으로 일제히 비난하면서 국회 윤리위 제소를 주장했다. 하지만 국회 윤리특위가 제대로 작동한 적이 있는지 가물가물하다. 윤리위원들이 모두 국회의원들로만 구성돼 ‘자기 식구 감싸기’로 일관하다보니 ‘종이호랑이’라는 비아냥을 들은 지 오래다.
‘국회 갑질’과 관련해 이런 사례도 있다. 지난 해 여야는 증인신청 사유와 신청의원 명단을 공개하는 ‘국감 증인 실명제’를 도입했다. 기업인에 대한 마구잡이식 증인채택을 막겠다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거기까지.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다보니 똑 같은 일이 올 국감에서도 이어졌다.
결국 행동과 실천의 문제다. 최소한 윤리특위만이라도 제 기능을 하도록 외부인사들에게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국감 증인 실명제’도 제대로 지켜지도록 규정을 손질해야 한다. 말만 앞세운 ‘유명무실’ 정치, 고질병처럼 끈질긴 ‘국회 갑질’ 악습이 지금처럼 이어지는 한 제2, 제3의 ‘김정호 사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정치가 민심 속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플랭크톤처럼 표류하는 것도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말만 앞세우기 때문이다.
<필자 소개>
김명서(clickmouth@hanmail.net)
-전 서울신문 정치부장, 사회부장, 논설위원
-전 서울신문 편집담당 상무
-전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