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살이가 팍팍해지면서 빚 감당이 어렵게 되자 예·적금을 해지하고 심지어는 노후를 대비해 가입한 장기보험상품을 원금손실을 감수하면서 깨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시중금리상승세로 이같은 사태는 더욱 심화될 전망이며 서민경제가 갈수록 위기로 빠져들고 있음을 말해준다.
3일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바른미래당 이태규 의원에제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 동안 시중은행에서 개인이나 개인사업자가 중도 해지한 정기 예금과 적금 건수는 총 725만4622건, 금액은 52조2472억 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년 전의 같은 기간 에 비해 건수는 31.8%(175만927건) 금액은 20.6%(8조9115억원)가 늘어났다.
보험환급금도 대폭 늘어났다. 통상 빚이 늘거나 금리인상으로 원리금상환부담이 증가해 살림살이가 어려울 경우 예·적금을 우선적으로 해지하고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할 때에 보험계약을 깨는데 최근에 보험계약해지가 급증해 서민경제가 심각한 국면임을 알 수 있다.
손해보험사의 장기보험상품 해약 현황을 보면, 최근 1년(2017년 7월~2018년 6월) 동안 해약 건수는 402만9737건으로 1년 전보다 30만5064건(8.2%) 늘었다. 해약 환급금은 15조7851억원으로 3조2290억원(25.7%) 증가했다. 보험 해약 환급금은 4년 전(2013년 7월~2014년 6월) 9조9741억 원에서 3년 전 10조9940억원, 2년 전은 11조7517억원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은행 예·적금, 보험 해약 건수의 지속적 증가는 서민 경제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반영한다. 무엇보다도 경기부진 고용악화 등으로 소득증가가 가계부채 증가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 주요원인이다. 2009~2016년 한국의 가계 부채 증가 속도는 3.1%포인트로, 같은 기간 OECD 회원국 평균인 0.4%포인트의 7.8배에 달했다.
그러나 보니 자영업자나 금융취약계층을 빚을 내 빚을 갚는 악순환이 지속되면서 가계부채는 매월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돌려막기도 한계에 이르면서 예·적금이나 보험계약을 해지해 겨우 생활하는 서민들이 그만큼 늘어 생활의 질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이의원은 “은행 예·적금, 보험 해약 건수의 지속적 증가는 서민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자와 원금 손실을 보면서까지 예·적금이나 보험을 해지하는 이유는 장기간 지속된 저금리의 영향도 있지만, 가계소득에 비해 늘어난 빚 부담이 큰 것도 주요원인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한국의 올해 3월 말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5.2%로, 1년 전과 비교해 2.3%포인트 상승했다. 상승폭은 BIS가 집계한 43개 주요국 가운데 중국(3.7%포인트), 홍콩(3.5%포인트)에 이어 세 번째다.
국민 1인당 가계 빚(자영업자의 사업자 대출을 제외한 가계신용 기준)은 연내 3000만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기준 가계신용은 1493조1555억원이다. 올해 중위 추계상 인구 5163만5000명을 대입하면 국민 1인당 2892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