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에 이어 한화생명도 금융감독원의 즉시연금 지급 권고를 거부하자 체면을 구긴 금감원이 금융소비자들의 즉시연금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반격카드’를 준비하고 있다.
10일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이래 금융소비자보호 중심의 금융정책을 천명해온 금감원은 최근 불거진 삼성생명 즉시연금 미지급 논란이 자살보험금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제기되자 삼성생명을 비롯한 생보사들에 즉시연금을 지급할 것을 권고했다.
삼성생명은 물론 한화생명 등이 일시에 목돈을 예치한 후 곧바로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즉시연금’ 보험금을 가입자들에게 약관대로 지급하지 않아 파문이 확산되자 금감원이 즉시연금을 지급토록 하는데 팔소매를 걷어 부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삼성생명에 이어 한화생명도 지급권고를 거부하자 금감원은 소비자 피해를 이대로 방치할 수 는 없는 노릇이라면서 삼성생명 등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금감원은 추후 삼성생명은 물론 한화생명의 검사 차례가 돌아오면 즉시연금 관련 자료를 집중적으로 파헤쳐 지급거부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는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이 약관대로 주지 않은 미지급금 규모를 정확히 알 수 없다”며 “추후 검사 일정이 돌아오면 모든 자료를 받아 약관에 어긋나는 미지급금 규모를 정확히 매긴 뒤 법 위반 여부에 대해선 엄중 제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헌 금감원장도 지난달 “순서에 따라 검사를 나가는 종전 방식이 아니라 소비자 보호 원칙을 어긴 금융사만을 정해 종합검사를 실시하겠다”고 강조해 지급권고를 거부한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에 대한 금감원의 종합검사가 곧 실시될 가능성도 높다.
금감원은 이들이 지급거부를 선언하고 나선 것은 소비자보호보다는 자사이익에만 너무 집착한데서 비롯됐다고 보고 홈페이지에 별도의 즉시연금 분쟁조정신청 접수 공간을 마련하기로 했다.
금감원 인터넷 홈페이지 메인에 즉시연금 분쟁조정 접수 공간을 별도로 만들어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의 즉시연금 가입자의 분쟁조정 신청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기로 했다. 또 유사 피해자의 신청을 받은 분쟁조정 신청 건은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에 한꺼번에 상정해 일괄구제받도록 할 방침이다. 기존에는 피해자들이 개별로 분쟁조정 절차를 밟아 구제받았다.
금감원은 지난해 말 금융소비자 권익 제고 자문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해 여러 금융소비자에게 똑같거나 비슷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 '다수 피해자 일괄구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은 금감원의 권고대로 즉시연금을 지급할 경우 엄청난 손실이 예상되기 때문에 일단은 금감원의 권고를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 두 생보사는 당장 금감원의 권고를 그대로 수용해 대형손실을 감수하기보다는 일단은 법원의 판단에 맡겨보자는 속셈인 것으로 보인다.
한화생명은 금감원에 보낸 의견서에서 약관에 대한 법리적이고 추가적인 해석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불수용 사유를 밝혔다.한화생명은 "분조위 결정에 따라 '약관대로' 보험금을 줄 경우 즉시형(연금이 즉시 지급)이 아닌 거치형(일정기간 후 지급) 가입자는 결과적으로 손해를 본다"고 지적했다.이는 분조위의 지급 결정이 '보험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으로, 삼성생명이 금감원의 '일괄지급 권고'를 거부했을 때와 비슷한 논리다.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의 지급권고에는 상당한 위험부담이 예상된다. 즉시연금 미지급 논란의 경우 고객에 대한 상품 설명이 미흡했던 부분이 추후 금감원 조사 결과 사실로 드러나게되면 과징금이 추가로 부과될 수 있다. 이 경우 삼성과 한화생명은 임원문책부터 최고 해임권고, 회사에는 영업 일부 정지 등도 감수해야한다.
또 즉시연금 상품을 가장 많이 판 삼성생명은 과징금 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 금감원은 소멸시효가 지났어도 약관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면 이 역시 똑같이 징계한다는 방침이다. 보험사는 미지급금을 돌려줘야 징계 수위를 낮출 수 있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삼성생명의 경우 지난 2001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가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미지급금 4300억원을 주지 않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현재 삼성생명은 이중 370억원만 일부 가입자들에게 지급하고 금감원이 권고한 일괄 지급에 대해선 한 발 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