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일류 기업이라서 그런가. 삼성증권(사장 구성훈) 직원들의 ‘손놀림’은 ‘빛’보다 빨랐다. 잘못 입고된 2784만4444주 중 가운데 501만2000주(0.18%)가 팔렸다. 전날 삼성증권 종가(3만9800원) 기준으로 1995억원가량이 팔린 셈이다. ‘기회’는 ‘찬스’라고 했다. 직원들은 어느 때 보다도 기민했다.
시세 차익을 노리고 일부 직원들이 폭풍 매도에 나서자 삼성증권 주가는 6일 오전 11% 가까이 급락했다. 갑작스러운 주가 급락으로 일시적으로 거래를 제한하는 정적 변동성 완화장치(VI)가 발동되기도 했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담당 직원의 입력 실수로 돈으로 지급되어야 할 배당금이 주식으로 입고됐다"며 "일부 직원들이 입고된 주식을 매도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과연 삼성증권 직원들은 '주식'으로 들어온 배당금이 사측의 실수 혹은 시스템상 오류라는 점을 정말로 몰랐을까. 삼성증권의 배당일은 6일, 주당 현금 배당금은 1000원으로 정해져 있었다. 우리사주는 배당일과 주당 배당금이 사전에 공시되는 보통주와 같다. 따라서 우리사주 직원들이 이 사실을 몰랐을 리 없을 것이다. 삼성증권 직원들이 실수로 배당금이 주식으로 들어온 걸 알면서도 주식을 팔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야말로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 아닐까.
삼성증권 주가가 한창 곤두박질치고 있을 때, 인터넷에는 삼성증권 우리사주 직원의 것으로 추정되는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잔액 캡처본이 돌아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배당으로 들어온 주식을 되팔아 수백억원 대의 시세차익을 얻었다는 것이다. 1주를 가진 직원이 주당 1000원의 현금을 주식 1000주로 받았다면 전날 삼성증권의 종가(3만9800원) 기준으로 3980만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현금으로 받기로 한 배당금이 주식으로 들어올 경우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뭔가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회사의 실수를 틈타 본인의 사리사욕을 취하기 위해 직원들이 무책임한 행동을 한 꼴이나 다름이 없다"고 말했다.
법조계도 직원들의 ‘직무유기’를 문제삼고 있다. 한 법무법인의 변호사는 "한맥 사태와 달리 직원들이 의도적으로 주식을 판 것이기 때문에 횡령죄에 해당한다"면서도 "시세가 급락하면서 손실을 회피하기 위해 판 일반 투자자들이 배상금을 받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라고 밝혔다. 이어 "금융당국은 부분 검사를 진행할 것으로 보이며, 해당 직원들이 갖고 있지 않은 주식을 판 것이기 때문에 공매도 여부도 따져볼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개인투자자들은 주가가 급락하면서 공포감으로 주식을 처분, 손실이 발생한 만큼 회사 측 보상을 주장한다. 한 개인투자자는 "삼성증권은 직원 실수로 없는 주식이 생겨나서 기존 주주들이 손해를 입은 것을 똑바로 처리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집단으로 소송을 준비할 것"이라고 지적했다.다른 투자자도 "증권사 직원들은 시스템상 잘못됐다고 생각했을 텐데 이를 팔아 현금화하려 했다는 점이 황당하다"고 꼬집었다
결과적으로 삼성증권은 모럴해저드 논란을 피할 길이 없게 됐다. 일부 직원들이 주식이 잘못 입고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도해 주가 급락을 야기했다는 점에서다.삼성증권 관계자는 "주식을 판 직원들은 주식을 판 돈으로 다시 주식을 사서 메워야 한다"며 "매도 물량이 많을 경우 회사가 위임하거나 회사가 주식을 빌려 서서히 복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성증권은 일단 시장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직원들이 매도한 주식을 회수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일등회사 삼성증권은 이번 일로 대외신뢰도는 물론 내부관리에 실패한 기업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오너인 이재용 부회장 구속사건으로 나사가 빠진 것이 아니라면 삼성증권은 이제라도 직원들 정신교육부터 다시 시켜야 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