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의 중소기업에 대한 ‘갑질’을 바로 잡아야할 공정거래위원회가 오히려 대기업의 ‘도우미’라는 인식을 갖게 할 정도로 중소기업들의 하도급 피해를 구제하는데 미온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롯데피해자연합회를 비롯한 영세상공인들은 ‘경제검찰’이라는 공정위가 심사를 철저하게 하지 않고 질질 끄는 경우가 많아 숱한 중소기업들이 문을 닫거나 도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면서 ‘갑질근절’에 미온적인 공정위를 성토하고 나섰다.롯데피해자연합회는 롯데그룹 계열사들로부터 ‘갑질’을 당해 고사 위기에 몰리거나 도산했다고 주장하는 납품업체들로 구성됐다.
롯데그룹 계열사들의 ‘갑의 횡포’를 견디지 못해 심각한 경영난에 빠진 피해기업들로 구성된 '롯데피해자연합회'는 16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집회를 갖고 그동안 정부와 공정위, 국회 등에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롯데에서 당한 피해를 구제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심한경우 10여년 동안 어떤 해결책도 나오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그동안 장기간에 걸쳐 롯데의 갑질에서 발생한 피해 보상 투쟁을 해왔으나 롯데의 자본력과 로비력 등 우월한 대응력에 밀려 지금까지도 공정당국으로부터 피해구제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막강한 재력과 로비력, 인맥을 통해 정부기관까지 거미줄 같은 연계망을 구축한 대재벌의 힘 앞에 이들의 절망감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들의 하도급 피해구제에 마냥 시간을 끄는 경우가 빈번했다. 하도급 피해구제를 신청한 후 어떻게 돼가느냐는 피해업체들의 문의에 번번이 “검토 중” 이란 답변만 돌아왔다. 피해업체들은 억울한 마음에 직접 관련법을 공부해가며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뚜렷한 설명도 없이 각하 처리되기 일쑤였다.
공정위는 만성적인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공정당국의 피해조정이 한시가 급한데도 공정위는 마냥 느긋한 입장을 보여왔다. 재조사 기간에 대해 “언제 결론이 날지 말할 수 없다”는 답변만을 반복하는 ASR(자동응답서비스)에 피해중소기업들은 애간장이 탄다.
부당하도급에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의 고충을 해결하는데 공정위가 이처럼 소극적인 자세를 보인데 반해 롯데를 포함한 대기업에는 없이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예컨데 공정위가 가습기살균제 ‘가습기메이트’를 팔면서 기만적인 광고를 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은 애경산업·SK케미칼에 대해 지난해 8월 심의절차종료 처분을 내려 소비자들로부터 강한 질타를 받은 것을 대표적인 본보기로 들었다.
롯데피해자연합회 소속 심재민 전 가나안RPC 대표는 이날 시위에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사라져야할 정부기관은 공정거래위원회입니다.”라고 외쳤다. 이들은 “중소기업을 짓 밟아 떼 돈 버는 롯데도 롯데의 천박한 기업윤리도 문제지만 재벌 편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더 밉습니다”고 비난했다.
피해업체들이 성날 정도로 실제 롯데로부터 당한 피해는 거대규모에 달하나 공정위의 조사와 심판으로 구제받은 케이스는 매우 적다고 이 연합회는 털어놓았다. 대표적인 피해업체로는 신화(롯데마트 전 납품업체), 가나안RPC(롯데상사 전 납품업체), 아하엠텍(롯데건설 전 협력업체), 성선청과(롯데슈퍼 전 납품업체), 프루베(전 롯데마트 납품업체) 등을 들수 있다.
아하엠텍의 경우를 보자. 아하엠텍은 지난 2007년 롯데건설의 하청을 받아 현대제철 화성 일관제철소 건설에 착수했는데 공사가 진행되면서 추가공사 및 물량증가가 있었다. 아하엠텍은 이 추가공사 대금을 147억 원으로 추산했고, 롯데건설은 53억 원으로 견적을 내면서 분쟁이 생겨 공정위가 조사를 진행했다.
공정위 실무부서는 심사보고서를 통해 롯데건설이 하도급법을 위반했다며 아하엠텍에 하도급대금 결정금액 약 113억 원과 시정명령, 과징금 32억 3600만 원을 부과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공정위는 2011년 소회의를 열고 롯데건설에 대해 무혐의 처리했다. 안동권 사장은 공정위의 이같은 결정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고 분노했다.
심지어 이미 대기업의 처벌이 결정된 사항도 어쩐일 인지 심사 연기되는 일도 발생한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롯데마트의 육가공업체 신화에 대한 ‘삼겹살 갑질 논란’과 관련한 제재여부와 수위를 지난해 9월 13일 결정키로 했다가 재심사로 결론을 내렸다.
김상조 위원장이 대기업들이 영세상공인을 희생시키면서 자신의 배만 불리는 불공정거래를 발본색원하겠다고 나섰고 보면 공정위가 '과연 필요한 정부기관인가’라는 비난을 롯데피해업체들로부터 듣지 않기 위해서는 롯데의 횡포로 죽어가는 피해업체들의 절규에 귀를 기울여 신속히 해결책을 내놓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