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3년 금융실명제 실시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계좌 자산이 27개 계좌, 61억8000만원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에 따라 이 회장에게 부과될 과징금은 자산의 50%인 30억9000만원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차명계좌 자산 대부분은 삼성그룹 계열사, 주로 삼성전자 주식으로 현 시세는 2369억원(2월 26일 현재 삼성전자 주가 236만9000원 기준)나 된다. 과징금이 실명제 시행 당시인 1993년 8월 기준으로 부과되는 탓이다. 이에 따라 구체적인 과징금 액수를 놓고 형평성 문제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현 주가로 기준으로 과징금을 물려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5일 금융감독원의 '이건희 차명계좌 확인 태스크포스(TF)'는 지난달 19일부터 2주간 4개 증권사의 본점과 문서보관소, 한국예탁결제원, 코스콤 등에 대해 1993년 8월 12일 실명제 시행 전에 개설된 이 회장의 차명계좌 자산을 검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알렸다.
금감원에 따르면 과징금 부과 대상인 차명계좌 27개의 1993년 8월12일 당시 잔액은 61억8000만원으로 밝혀졌다. 금감원에 따르면 27개 계좌의 자산 구성은 대부분 주식, 그중에서도 삼성전자 주식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27개 계좌 대부분 삼성계열사 주식을 보유했다. 삼성생명은 없었다"고 말했다. 1993년 8월12일 27개 계좌에 있던 삼성계열사 주식은 당시 61억8000만원이었지만 2018년 2월 말 기준 2365억원에 달한다.
금융실명법은 실명제 시행 이전의 비실명자산에 대해서는 90%의 차등과세와 함께 실명제 실시일(1993년 8월) 당시 가액의 50%를 과징금으로 징수하도록 하고 있다. 금감원이 밝혀낸 잔액 정보에 따라 이 회장에게 부과될 과징금이 30억9000만원인 이유다.
향후 과징금은 늘어날 수도 있다. 원승연 금감원 부원장은 "삼성증권이 보유한 계좌에 대한 자산총액 검증이 추가로 필요하다"며 "이번 주까지 검사 기간을 연장해 검사를 계속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이 회장의 차명계좌를 보유한 증권사는 신한금융투자와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 삼성증권 등 4개사다. 금감원 관계자는 "4개 증권사 모두 계좌별 보유자산의 세부명세를 따로 보관하고 있었다"며 "예탁결제원 주주명부로도 거래명세 등 관련 정보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앞서 4개 증권사는 지난해 11월 이뤄진 금융당국의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 실태조사에서는 "당시 계좌정보를 담은 원장은 10년이라는 보관 기간이 지나 삭제했다"며 이번 검사결과와 배치되는 진술을 했다.
당국은 증권사들에 따로 책임을 묻지는 않을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해 점검 당시 증권사들은 현재 운용 중인 주전산 기기에서 관련 자료를 찾은 뒤 없다고 보고했지만 이번 검사에서는 백업센터나 문서 보관서 등을 (회사와) 함께 확인했다"며 "증권사들이 고의로 허위보고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에 협조도 잘 됐는데 이전 보고 내용에 대한 책임을 묻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27개 계좌는 잔액이 없는 '깡통 계좌'다. 이 회장 측이 삼성계열사 주식을 찾아갔기 때문이다. 당국은 이번 조사에서 이 회장이 언제, 어떤 형태로 해당 계좌에서 주식을 찾아갔는지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금감원은 앞으로 금융위원회, 국세청 등 관계기관과 협력을 통해 과징금 부과 절차가 이른 시일 내 진행되도록 협력할 예정이다.
현행 금융실명제법은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에 따라 금융 실명제를 전격 시행한 1993년 8월 12일 이전에 만든 차명 계좌 명의를 금융실명제법을 정식 도입한 1997년 12월 31일 이전까지 실명으로 바꾸지 않았다면 차명 계좌 잔액의 50%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잔액 산정 기준일은 긴급 명령을 시행한 1993년 8월 12일이다.
이 회장은 금융 실명제 시행 전 4개 증권사에 차명·가명 등으로 계좌 27개를 개설했다. 이후 1993년 8~10월 사이 계좌 명의를 모두 삼성 임직원 실명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지난달 13일 법제처가 “이런 계좌도 사실상 차명 계좌인 만큼 모두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유권 해석하면서 금감원이 뒤늦게 해당 계좌 내 잔액 파악에 나섰다.
한 금융전문가는 “금융실명법에 따라 차명계좌의 5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데, 부과 시점은 법 시행 당일"이라며 "과징금은 61억 원의 50%인 30억 원 정도로 현재 2천억 원대인 자산에 비해 턱없이 적은 액수”라고 설명했다. 이어 “금융실명제 이후에 개설한 이 회장의 1천2백여 개 차명계좌에는 아예 과징금을 부과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른 전문가는 “금융위가 과징금 액수와 대상을 확대하도록 금융실명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함에 따라 법이 개정되면 이건희 회장은 최대 2조 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받게 될 가능성도 있다”면서 “국회가 법개정 시 현 주가를 반영해서 현실에 맞는 과징금을 물리는 방안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의 차명계좌에는 대부분 삼성전자 주식이 담겨있었다. 삼성전자 주가는 93년 3만 8천6백 원에서 현재 226만 원으로 올랐고, 차명계좌 자산도 지금 가치로 따지면 2천억 원이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