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새해를 맞으면 업권 별로 신년인사회가 열린다. 금융권도 마찬가지다. 지난 3일 전국은행연합회 등 6개 금융업권별 협회 주관으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금융권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2018년 범금융 신년인사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금융당국 관계자와 국회의원, 금융협회 및 금융회사 대표 등 1,100여 명이 참석했다.
다만 예년과 다른 분위기가 연출돼 관심을 모았다. 금융노조위원장이 경제부총리 등 금융당국자, 정치인 등과 함께 주요 자리에 위치해 금융노조의 영향력을 실감케 했다. 허권 금융노조위원장이 김동연 부총리, 김용태 국회 정무위원장,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최흥식 금융감독원장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그는 2015년, 2016년 신년인사회 당시에는 뒷줄에 위치했고, 지난해에는 불참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노동계와 근로자들의 목소리가 어느 정부 때보다 커진 가운데 앞으로 노동이사제 도입 등 현안을 놓고 금융노조가 한층 영향력을 강화할 것으로 읽히는 장면이다.
이날 행사에는 윤종규 KB-조용병 신한-김정태 하나-김용환 NH농협금융 회장 등 지주사 회장과 행장, 계열사 사장들이 대부분 참석했다. 기자들의 포커스는 단연 지배구조 논란 속에 3연임 도전을 노리는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한데 모아졌다. 김 회장은 기자들의 연임 도전 여부를 묻는 질문 공세에 행사 내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신년인사회 중간에 행사장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은 회장추천위원회에서 회장을 제외할지에 대해 "현재까지는 지배구조 상 별다른 문제가 없다"며 "기회가 되면 앞으로 논의해 볼 것"이라고 간단히 답했다. 글로벌 전략에 대해서는 "그동안 벌려놓은 일이 많아 마무리하기 바쁘다"며 "플랫폼이 있는 동남아 지역부터 할 것"이라고 답하고는 자리를 떴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부회장직을 신설과 관련 "더이상 부회장직을 신설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KB금융은 최근 계열사인 KB부동산신탁에 부회장직을 신설하고 '친노' 인사로 알려진 김정민 전 사장을 선임했다. 이 때문에 최근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관련 압박에 떨던 KB금융이 부회장직을 신설해 문재인 정부 인사를 앉힌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금융권 CE0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지만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비서진들의 ‘철통경호’ 속에서 입,퇴장하며 기자들과의 소통을 사실상 거부했다. 이 뿐 만이 아니라 민감한 질문에는 아예 함구하며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른바 금융계 거물들의 ‘언론기피 증후군’이었다. 3연임 도전 여부를 궁금했던 김정태 회장은 행사장 전부터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의식한 듯 마치 청와대 경호원을 연상케 하는 비서진과 홍보실직원들에 둘러싸여서 롯데호텔에 들어왔다가 기자들의 잇단 질문공세를 뿌리치고 묵묵부답으로 행사장을 빠져 나갔다.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 산하 민간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는 금융권의 신뢰 회복을 위한 전방위적인 혁신과 소통을 위한 권고안을 내놨다. 윤석헌 위원장은 “그동안 금융당국 안팎에서는 소통이 부족한 정책, 관행이라는 명목 하에 유지된 비효율적이고 불투명한 행정절차와 영업 관행, 전문성에 기댄 현실 안주, 국민들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인사 등이 문제가 돼 금융권이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고 꼬집었다.
그런데도 몇몇 금융권 CEO는 아직도 철통경호 의전 속에서 자기 만의 성(城)에 갇혀서 소통과는 담을 쌓고 지내는 느낌이다. 자신이 금융지주 회장추천위원회 위원으로 들어가 셀프추천하고 그대로 회장이 되는 정치판의 ‘체육관대통령’ 흉내를 그대로 모방하는가 하면, 금융지주회사 지배구조를 사실상 멋대로 주물럭거리면서 ‘금융권 황제’로 군림하는 것이다.
새해 우리나라 금융권은 금융소비자 보호, 금융회사 건전성 확보, 금융 공공성 유지 등 금융의 공적 가치를 확보하기 위한 중차대한 과제들이 널려있다. 결국 금융권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전방위 혁신과 소통이 올해의 화두가 될 것이다.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 ‘최순실 치맛바람’에 휩싸여 국내외에서 온갖 특혜와 도에 넘친 지원을 아끼지 않다가 특검수사까지 받았던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올해 무엇보다도 언론과의 소통에 나서는 것이 급선무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