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하는 가운데 우리나라 가구당 부채 규모가 처음으로 7000만원을 넘어섰다. 20·30대가 빚을 지고 부동산 투자에 많이 나서고 있다. 최극빈층의 빚부담이 다른 계층에 비해 커지는 한편 지니계수 같은 소득분배지표가 모두 악화됐다.
통계청·한국은행·금융감독원이 21일 발표한 '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가구 평균 부채는 7022만원이었다. 작년 6719만원보다 4.5% 늘어났다. 반면 가구당 자산은 3억8164만원으로 4.2% 증가했다. 작년 한 해 가구당 소득은 5010만원으로 2.6% 늘어나는 데 그쳤다. 빚이 소득이나 자산보다 더 빨리 늘어난 셈이다. 전체 가구 가운데 부채가 있는 가구 비중은 63.2%로 작년 조사 때보다 1.4%포인트 작아졌다.
가계 부채 증가가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떠올랐지만 5분위가 전체 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5.6%로 지난해보다 1.5%포인트 줄어든 반면 1~4분위는 부채 규모와 비중이 늘었다. 특히 비교적 여유 있는 4분위 부채 증가율이 8.1%로 전체 평균(4.5%)보다 두드러졌다. 이 역시 주택 마련 등 부동산 매매를 통해 담보대출 등 부채와 자산이 동시에 늘어난 결과라는 해석이다. 4분위는 '내 집 마련 목적'으로 집을 사들이면서 자산 구성 변화도 컸다.
가계 빚 위험도를 측정하는 지표인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지난해 116.5%에서 올해 121.4%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다만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비율은 지난해 26.6%에서 올해 25.0%로 내려섰다. 100만원을 쓸 수 있다면 이 중 25만원을 빚 갚는 데 쓴다는 얘기다. 정부가 가계부채에 대해 원금을 만기에 한꺼번에 갚는 '일시 상환 방식'에서 원금과 이자를 나눠 갚는 '분할 상환 방식'으로 유도하면서 대출 만기를 조정한 결과 원리금 상환비율이 다소 낮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는 주택 가격과 전세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한 가계가 많았던 영향이 고스란히 통계에 드러났다. 가계 자산에서 금융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0.7%포인트 줄어든 반면 실물 자산은 0.7%포인트 늘어났다. 특히 실물 자산 중에서는 거주주택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비중이 늘었다. 금융부채에서 주택담보대출 등 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년 전보다 0.3%포인트 늘어난 반면 전월세 등 임대보증금은 0.9%포인트 줄었다.
연령대 별로 보면 이른바 '에코세대'가 최근 2~3년 새 내 집 마련과 투자 목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끼고 부동산 시장에 진입한 영향이 두드러졌다. 에코세대란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 세대로 통상 20·30대를 말한다. 액수로만 보면 부채는 40대가 가구당 평균 8533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1년 전 대비 부채 증가율은 29세 이하 청년 가구(41.9%)와 30대 가구(16.1%)가 전체 연령대의 평균 증가율(4.5%)을 훌쩍 뛰어넘었다.
특히 29세 이하 금융자산 중 전월세 보증금은 2.7% 줄어든 반면 주택 등 부동산 실물자산은 무려 46.2% 늘어났다. 30대 역시 전월세 보증금이 8.8% 늘기는 했지만 부동산 실물 자산은 13.7% 늘었다.
소득 분위별로 보면 최극빈층으로 통하는 1분위(하위 20%)와 고소득층으로 꼽히는 5분위(상위 20%)의 살림살이가 다소 엇갈렸다.자산은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에서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올해 1분위 자산은 1억3073만원으로 지난해보다 9.4% 증가해 전체 평균 증가율(4.2%)의 두 배를 넘어섰다.
한은 관계자는 "고령화와 빠른 은퇴 추세를 감안할 때 자산이 많은 60대가 퇴직하는 경우 별다른 소득이 없어 1분위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1분위 계층의 자산이 늘었다기보다는 자산이 많은 50·60대에서 은퇴하면서 소득이 없어진 영향이 크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