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자객으로 널리 알려진 닌자(忍者)는 원래 일본말이다. 시노비노모노(忍の者, 참는 자)로도 불린다. 자객 말고도 탐정, 첩자, 또는 도둑으로 활동한다. 은신과 암살, 교란, 추리 등의 달인으로 자신의 모습을 숨기기 위해 복면을 쓰거나 옷을 바꿔 입는다. 수리검, 바람총 등을 사용한다.
서기 538년에 출현한 닌자들은 쇼토쿠 태자(聖德太子)가 외가인 소가씨(蘇我氏)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동원됐다. 이후 전국시대 영웅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에 의해 학살당하기도 했다. 현대 금융시장에서 닌자 론(Ninja Loan) 역시 1,500년전 닌자들이 그랬듯이 금융시장 교란의 주범이다. 닌자 론은 ‘일자리나 자산, 수입이 없는(No Income, No Job or Asset) 고위험 채무자에게 이뤄진 대출’을 뜻한다.
닌자론은 심사과정에서 다른 서류절차 없이 연봉만 밝히면 대출이 승인된다. 대출액를 늘리면 약정금리와 상환액을 손쉽게 낮출 수 있다. 또 10년 후에 원금을 일시불로 상환하는 조건으로 10년간 이자만 상환하며, 초기 이자가 매우 낮다. 그러나 이자율은 2년 후 재산정돼 차입자들은 매월 총소득의 50% 이상을 쏟아부어야 한다. 워싱턴포스트(WP)는 닌자 론이 지난 2005년부터 시작된 미국 주택시장 붐의 주원인이었다고 회고한다. 닌자 론을 통해 미국 가계의 주택소유 비중은 69%까지 올라갔다. 모기지 시장도 지난 4년 만에 9조5천억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동시에 닌자론은 금융시장 쓰나미를 몰고 온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의 시발점이었다. 광범위한 금융시장 불안의 진앙지이기도 했다. 미국의 주택압류 비율은 지난 몇 년 동안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원인은 금융기관들이 신용 기준을 대폭 완화해 닌자론을 남발한 가운데 이에 연계해 각종 파생상품을 다투어 발행한 데 있다. 결과적으로 태생부터 상환이 어려웠던 닌자 론이 연체되자 모기지발 신용경색이 다른 분야에까지 도미노처럼 확산됐다. 미국의 경제를 혼란과 위기에 빠뜨린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는 닌자 론이 주범이었던 셈이다.
올들어 우리 정부가 발표한 공유형 모기지 확대와 우리은행의 초저리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바라보는 시장의 우려가 깊다. 보편적 대출서비스를 펴겠다는 정부당국의 의지가 흡사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부른 ‘닌자론의 공포’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미국 금융기관은 지난 2003년 조지부시 대통령이 '오너십 소사이어티'를 내세우며 내집마련을 장려하자 이에 부응해 신용등급 만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밀어준 닌자론을 남발했다. 미국 가계는 닌자론에 힘입어 주택 소유 비중을 69%까지 끌어올렸다.
모기지 시장도 10조 달러 가까이 성장했다. 이후 가계의 상환능력이 고갈되자 모기지 부실이 본격화됐다. 결국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라는 최악의 금융위기를 초래했다.지금 국내 사정도 당시 미국과 유사하다. 국토부는 올해 업무계획을 공개하며 금융지원 확대로 무주택 가구의 내집 마련을 지원하겠다며 드라이브를 걸었다. 신혼부부나 사회초년생의 주택담보대출 접근성을 높이고 수도권과 지방의 차별이 없는 보편적인 대출서비스를 가능하게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우리은행은 여기에 화답해 조달금리를 밑도는 1%대 초저금리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출시하겠다고 약속했다. 무주택자이면 소득제한도 없고 강남 고가 중대형 주택도 대출 대상에 포함된다. 대출금리도 코픽스 금리에서 1%포인트 낮추는 형태여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대로 낮추면 사실상 무이자로 주택시장에 자금을 공급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해 매수심리 촉진 정책을 내놓으며 가계부채 증가속도는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 관한 고민은 가중될 전망이다.
문제는 정부의 주택구매 드라이브에 금융기관이 화답하는 모습이 부시 정부가 집권하던 2000년대 중반 미국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지금 한국경제는 정책 목표를 재점검해야 할 정도로 위기국면이라는 진단이다. 올해 정부가 최근 내놓은 수익 공유형 1%대 금리 대출 상품은 주택가격이 떨어질 경우 대출자와 은행, 국민경제 모두에 폭탄이 될 수 있는 미끼상품이 될 수 있다.수익 공유형 모기지란 소득에 상관없이 1%대의 초저금리로 주택담보대출을 내주고 7년이 지난 뒤 집 값이 오르면 그 이익을 대출자와 은행이 나눠 갖는 상품이다.
집 값이 오르면 별 탈이 없겠지만 문제는 주택가격이 떨어졌을 경우다. 대출자의 경우 7년 뒤 중간정산 때 가격 하락에 따른 손실 모두를 책임져야 한다. 특히 7년 뒤 일반대출로 전환할 때, 가격이 하락한 주택은 담보능력이 떨어져 대출자에겐 재앙이 될 수 있다. 은행의 입장에서도 주택가격이 적정 수준 이상 오르지 않을 경우 손실을 보전할 방법이 없다. 7년동안 대출금리가 조달금리보다 낮은 1%대이기 때문이다.정부는 이 경우 '대한주택보증'을 통해 손실 보전을 해 준다는 방침이다. 결국 국민의 돈으로 메워주겠다는 것이다.
국민경제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아슬아슬한 가계부채가 급증할 위험성이 있다. 수익공유형 모기지는 주택가격이 떨어지면 모두 망하는 구조이다. 잘못하면 국민에겐 미끼상품 유인, 은행에는 약탈적 대출 조장, 국민경제엔 가계부채 폭탄이 될 수도 있다. 집 값이 이미 대세 하락기에 접어든 상황에서 7년 뒤 가격이 상승할 수 있을 지 조차 불투명하다. 수익 공유형 모기지 상품은 자칫 모두에게 위해를 가하는 국민경제의 '폭탄'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와 불확실성에 대해서는 여당 안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이 초저금리 주택담보대출과 관련해 “좋은 정책 아이디어도 탄탄한 재정적 뒷받침과 미래 예측성이 없으면 피해와 고통은 국민의 몫”이라며 철저한 검토를 요구했다. 집값이 떨어질 때 은행의 원금을 보장하기 위해서 공적기관인 대한주택보증이 보증을 서야 한다는 것이 문제다. 따라서 앞으로 집값하락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한 판단이 선행돼야 한다. 과거 대한주택보증의 전신인 주택사업공제조합의 경우엔 재정이 어려워 정부 예산이 투입된 적이 있다.
정부의 대책은 연봉 1억원 이상의 고소득자가 집을 살 때도 1%대의 초금리로 대출을 해 주겠다는 얘기다. 이는 기존의 주택기금을 이용한 공유형 모기지론과 비교하면 아주 파격적인 조건이다. 일부에서는 파격 정도가 아니라 아예 ‘놀라서 자빠질 만한 조건’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이번 대출 조건은 어마어마한 특혜가 아닐 수 없다. 정부가 이런 상품을 내놓은 것은 결국 부자들더러 집을 사라고 하는 것이다. 집을 빨리빨리 사서 집 회전율도 높여주고 그래서 집값을 좀 떠받쳐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소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한테는 지금처럼 전월세 살지 말고 그냥 집을 빨리 사라, 이렇게 유도하는 정책이라는 해석이다.
한마디로 ‘부자의, 부자에 의한, 강남을 위한 정책’이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이번 정책을 ‘부자 모기지’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렇다면 경기활성화를 위한 정책이라고 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취임 후 정부는 대출규제 완화에 이어 재건축 연한도 풀고 여러 가지 집값을 띄울 만한 정책들을 모두 내놨다. 그러나 주택거래는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집값이 너무 높아서 사람들이 집을 사지 못하고 또 집값이 앞으로 떨어질까봐 겁이 나서 집을 사지 못하고 있다. 이도 저도 안되니까 정부가 이제는 여유있는 사람들의 등을 떠밀면서 빨리 집을 사라고 내미는 격이다. 정부로서는 막장에 몰려서 ‘최후의 카드’를 불쑥 뽑아든 셈이다.
옛날 우리의 조상들은 먼길을 걸어온 나그네가 물 한그릇을 청해도 물사발에 나뭇잎 한 장을 띄워서 건네주는 지혜를 발휘했다. 목이 마려워서 물을 급하게 벌컥벌컥 들이마시다가 급체할 수도 있는 까닭이다. 부동산을 비롯한 경제문제가 심각한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경제팀이 급하다고 미국에서 이미 실패한 닌자 론까지 들여와서 국민들에게 마구잡이로 나눠주는 것 같은 인상이 들어서 걱정스럽기만 하다. 도대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는 지 말이다.